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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심도 시속 200㎞ 열차…집값·안전 얽혀 ‘노선 투쟁’ 치열

중앙선데이 2020.08.01 00:43 697호 4면 지면보기

깊은 땅속 GTX, 깊은 갈등

경기도 파주의 GTX A노선 운정역 공사 현장. 전민규 기자

경기도 파주의 GTX A노선 운정역 공사 현장. 전민규 기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사는 김모(61)씨는 지난달 17일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쓴 탄원서를 반상회에 제출했다. 이르면 이달, 늦어도 다음 달 국토부가 최종 발표할 예정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 기본 계획에 따르면 이 노선이 아파트 단지 지하를 관통할 게 유력해서다. 김씨는 “1979년에 지어 가뜩이나 오래된 아파트인데 재건축 승인도 없이 지하로 초고속 열차가 지날 예정이라니 당혹스럽다”며 “지반이 약해져 대형 사고라도 나면 정부가 책임질 거냐”고 주장했다. 이 아파트 주민 4000여 명은 김씨처럼 C노선 관통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온라인 집단 민원 제기 등으로 강경 대응 중이다.
  

C노선 관통 유력 은마아파트
“지반 약해져 위험” 집단 민원
안양·과천시는 정차역 신경전

“발파 진동 등 특이점 정밀 점검
밀집 주거지 지날 땐 속도 낮춰야”
A노선 2023년, B·C 2026년 개통

“대안 선형 마련을” 공청회도 무산시켜
 
앞서 이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달 15일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청회도 ‘국토부가 대안 선형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면서 무산시켰다. 며칠 후인 같은 달 20일, 경기도 안양시청 앞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GTX C노선 정차역에 이 지역 인덕원역을 국토부가 추가해줄 것을 요구하는 주민 성명이 나왔다. 김의중 범시민추진위원장은 “입지가 탁월한 인덕원에 정차역을 만들지 않으면 인근 역에서 환승 때문에 15분가량 시간이 지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인근에 C노선 정차역으로 과천역을 두게 될 과천시는 인덕원 정차로 과천 내 GTX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며 안양시와 맞서고 있다.
 
‘꿈의 교통수단’으로 기대를 모으는 GTX 사업이 최근 속도를 내면서 사회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GTX가 지역별 주거 안정성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신중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주민들로선 기본 생활권을 추구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옳고 그름을 논하기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은마아파트와 C노선 논란에서 쟁점은 GTX 모든 노선에 적용되는 40m 이상 대심도(大深度) 공사와 향후 운행이 얼마나 안전하냐다. GTX는 지하 20m 안팎을 다니는 일반 수도권 지하철과 달리 대심도를 지나도록 설계했다. 대심도에 모든 철로를 직선으로 깔면 열차당 평균 시속 100㎞, 최고 시속 200㎞로 수도권 외곽과 서울 도심 주요 거점을 오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도권 교통난과 서울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는 게 GTX 사업의 최종 목표다. 예컨대 공사가 진행 중인 GTX A노선이 개통되면 경기도 일산 킨텍스역에서 서울역까지 16분이면 올 수 있다. 현재 버스와 지하철로 1시간 이상, 자가용으로 40분이 걸린다.
 
국내 건설 수준이나 공법의 신뢰성으로 봤을 때 대심도 공사가 지상 안전에 무리를 주진 않는다는 게 학계 분석이다. 김상환 전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장은 “대심도 터널을 뚫을 때 발파 작업을 해도 지상에선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왕십리역 구간이나 지난해 개통된 김포 도시철도처럼 대심도에서 열차가 무리 없이 오가고 있는 전례도 있다. 다만 김 전 학회장은 “주민 불안이 클 수 있는 만큼 발파 진동 등 특이사항을 한층 정밀하게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개통된 열차가 주거 밀집 지역을 지날 땐 속도를 다소 낮춰 운행하도록 하는 등 주민 피해 최소화를 위한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A노선 동탄역 인근 1년 새 집값 3억 뛰어
 
안양시와 과천시 간 갈등은 주민 편의성 문제뿐만 아니라 집값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달아오른 부동산시장에서 GTX 정차 호재가 있는 지역은 집값 상승폭이 특히 두드러졌다. 2023년에 GTX A노선이 들어설 예정인 동탄역 인근 한화꿈에그린은 1년 사이 집값이 3억원이나 뛰었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GTX 역세권 여부로 서울 접근성이 크게 달라져 집값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GTX가 정차하는 곳이 당장은 수혜 대상이지만, 주민들의 빈번한 서울행으로 장기적으로는 상권 위축도 예상된다”며 “지자체가 기업 유치와 학군 조성 등으로 지역 내 GTX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GTX 사업은 A노선 전 구간이 이미 착공해 2023년 개통을, B·C노선이 2022년 착공과 2026년 개통을 각각 목표로 하고 있다. 
 
3분 안에 갈아탈 시설·동선 갖춘 환승센터, GTX 성공 열쇠
버스·택시 등 환승 시간 줄여야
자가용 출퇴근족 수요도 대비를
국토부, 환승센터 시범사업 공모
서울·청량리·삼성역은 이미 구상 
 
GTX가 기대대로 서울 과밀화 해소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까. 환승센터를 얼마나 잘 갖추느냐가 중요한 열쇠다. GTX는 평균 시속 100㎞로 고속 운행해 열차가 정차하는 역 사이 거리가 멀다. 또 지하 40m 이상 깊이의 공간에서 열차가 드나들기 때문에 승객이 지상까지 걸어서 오가기 쉽지 않다. 역내 동선을 잘 짜지 않으면 승객들이 기존 교통수단인 버스나 택시 등의 환승에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역 하나당 환승에만 걸어서 10분 넘게 걸린다면 승객들로서는 아무리 빠른 GTX라도 갈아탈 필요성이 떨어진다. 이에 최근 국토교통부는 GTX가 통과할 30개 역사(驛舍)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3분 안에 환승할 수 있는 환승센터 건설에 나섰다.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지난 6월 2일 각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GTX 역사 환승센터 시범사업 공모에 나선다고 밝혔다. 역사 지하에 효율적인 환승 동선을 갖춘 환승센터를 꾸려서 지역별 교통 상황에 대응한다는 목표다.
 
서울역과 청량리역, 삼성역 등 3곳에서는 이미 환승센터 건설이 구상됐다. 나머지 27개 역사 가운데 지자체 공모를 통해 환승센터를 늘리기로 했다. 그중 GTX A노선 킨텍스역과 B노선의 여의도역, C노선 덕정역 등 14곳은 각 지자체에서 환승센터 구축에 긍정적이라 공모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다음 달 18일까지 사업 구상안을 접수, 평가를 거쳐 10월까지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관련 국비를 지원한다.
 
구상안은 지자체마다 자유로이 만들어 제출할 수 있다. 지역 특성에 맞게 출입구와 대합실 위치, 디자인 콘셉트 등을 정할 수 있다. 전기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 환승 아이디어에는 가점도 주기로 했다. 지종철 국토부 대광위 광역교통운영국장은 “지하에서 지상까지 단번에 버스 환승을 가능케 만든 지하철 신분당선 광교중앙역의 환승센터, 인근 다양한 상업시설과도 연결해 도심의 새 활력소로 만든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 환승센터 등이 벤치마킹할 만한 모범 사례”라며 “각 지자체와 협력해 GTX 편의성을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계획에 살을 붙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수도권 집값 폭등으로 더 외곽에 거주하면서 역사까지 승용차를 타고 와서 주차했다가 퇴근할 때 몰고 가려는 수요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며 “각 환승센터 구축 땐 대중교통 환승 수요뿐만 아니라 이런 자가용 환승 수요까지 고려해서 시설과 동선을 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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