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데이 칼럼] “이번 생은 망했어요”

중앙선데이 2020.08.01 00:30 697호 31면 지면보기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나는 우리나라 헨리조지포럼에서 인정하는 ‘조지이스트’다. 어쩌면 한국 언론인 중 유일할지 모른다. 몇 년 전 헨리조지포럼이 추미애 의원실과 함께 열었던 국회 세미나에 패널로 초청하면서 국내 언론인 중 조지이스트로 볼 만한 사람이 소위 ‘조중동’기자인 나밖에 없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평범한 샐러리맨도 SKY 엘리트도
‘이번 생은 망했다’고 외치는 현실
부동산 약자도 정책 혜택 못 보는
의욕만 충만한 무능 이젠 멈출 때

한데 나의 출발점이 헨리 조지는 아니다. 문학소녀 시절 레프 톨스토이 광팬이었던 터라 톨스토이류의 조지이스트적 관점에 동조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불평등한 사회를 보며, 귀족들이 과점한 토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인간 착취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주인 자신이 농민에게 토지를 나눠주면서 작품마다 이런 생각을 녹여냈다.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 이전부터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의 피에르와 레빈을 통해 귀족들이 스스로 토지분배를 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헨리 조지를 알게 된 후엔 격렬한 공감을 표현하면서 러시아에 책을 번역해 소개하고, 『부활』에선 네흘류도프를 헨리 조지의 전사로 그려냈다.
 
나는 차별·불평등·불공정, 그리고 노동이 아닌 자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지대(地代)추구형 경제가 싫다. 내가 조지이스트적 칼럼을 몇 차례 쓴 것은 바로 차별과 불평등의 근원이 ‘누가 토지를 점유하느냐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해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토지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토지세 제도도 찬성한다.
 
당연히 15년 전 종부세 도입 당시도 찬성했다. 주위에도 “집 없는 사람들은 모두 월세·전세 등 주거비용을 부담하는데, 집 있는 사람은 집값 상승에 따른 이익만 누리는 현실은 불공정하다”고 역설하곤 했다. ‘똘똘한 집 한 채’가 없어서 부린 몽니가 아니다. 나는 집 보유세를 내느라 저축을 하고, 매년 하반기는 보유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나 근로소득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진 버티고, 안 되면 집을 팔자는 단순한 계산을 하고 있다. 톨스토이처럼 토지를 나눠주진 못해도 내가 낸 세금이 부동산 불평등을 해결해주기 바라서다.
 
선데이칼럼 8/1

선데이칼럼 8/1

이번 정권 들어 부동산 정책만 22번을 내놓았는데도 뛰어오르는 집값을 잡지 못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공평하게 고통스러워지는 현장을 보면서도 인내했다. 행복주택이니 청년주택이니, 부동산 약자층을 위한 대안을 많이 제시하고 있으니 ‘과도기적 고통’은 참아야 한다며 지켜본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 인내가 보상받지 못할 거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 한 젊은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홀어머니와 서울 변두리 지역의 빌라에 전세를 살면서 착실하게 직장을 다니는 전문대 출신 젊은이다. 신혼부부 행복주택 공고가 기억나서 집은 그걸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 연봉을 합치니 기준을 초과해 신청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곤 그들 또래에서 하는 말이 있단다. “괜찮은 지역 행복 주택은 강남 부모를 둔 백수 아들이나 받는 것.” 지금 20대에 결혼하는 사례는 적고, 어찌어찌 하다 보면 30대 중반에 결혼한단다. 착실히 일한다면 이 시기엔 정부가 요구하는 연봉 기준을 초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곁눈질 안 하고 열심히 일해 모은 돈 다 털고 무슨 짓을 해도 좋은 지역 행복주택 입주금은 마련할 수 없단다. 또 지금대로면 들어갈 집도 없다고 했다. 내가 모진 세금을 참는 건 이런 젊은이들이 발 뻗고 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인데, ‘현실을 모르는’ 정책은 그걸 무너뜨렸다.
 
SKY 이공계를 나와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에서 엘리트로 잘 나가는 엄친아가 있다. 그가 최근 엄마에게 “내 이번 생은 망했다”고 하더란다. 또래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그가 지방에 있는 엄마와 함께 살려고 집을 구하려다 답이 안 나오는 현실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결국 신도시까지 돌면서 집을 사보려고 선망의 직장을 나와 연봉을 더 많이 제시한 외국계 회사로 옮겼다. 그 몇 달 사이 집값이 또 올라 자기 형편으론 신도시 전세밖에 갈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한 말이란다.
 
어른 세대 힘든 건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착실한 샐러리맨 부동산 약자도 SKY 출신 엘리트 사원도 ‘이생망’을 외치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동산 가격이 이들을 ‘이생망’의 세계로 끌고 간다. 지금의 부동산 대책은 대출 조이고 감시하는 ‘채찍’ 일변도다. 사람은 채찍 앞에 굴복하는 존재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난 국회 토론회에서 나는 “부동산 정책이 부자를 응징하려는 것이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 자리의 패널들도 모두 동의했었다. 그런데 지금 부동산 대책에선 ‘응징’의 동기 외엔 발견할 수 없다. 미국처럼 집값이 비싼 나라에선 모기지를 통해 20~30년의 장기 계획을 가지고 집을 살 수 있도록 한다. 부동산 정책은 ‘사도록’ 해야지 ‘못 사도록’ 막을수록 가격이 날뛴다는 걸 스물두 번이나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이제 조급하게 23, 24, 25번째 정책을 서두르는 ‘의욕만 넘치는 무능’ ‘무지의 열정’을 멈출 때다. 잠시 에포케(epoche, 판단중지)의 시간을 갖고, 우리의 현실과 시장의 진정한 욕구에 먼저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