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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300만 배럴 또 위안화 거래…기축통화 ‘중국몽’ 꿈틀

중앙선데이 2020.08.01 00:21 697호 12면 지면보기
최근 국제 원유시장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원유값이 폭락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원유시장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7월 초 중국에 이라크산 원유 300만 배럴을 인도하면서 중국 통화인 ‘위안화’를 받았다. 세계 주요 석유회사 중 원유를 ‘달러화’가 아닌 위안으로 거래한 첫 사례다. 세계 5대 에너지 거래업체 중 한 곳인 머큐리아도 중국에 원유 300만 배럴을 인도하고 위안을 받을 예정이다. 세계 원유시장의 ‘패트로 달러 체제’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패트로 달러’ 체제 도전장
BP 이어 머큐리아도 결제키로
구매력 앞세워 석유 업체 압박
원유 결제가 통화 세계화 관문

정부 입김 강해 외환시장 불안
각국 위안 보유 비중 2%로 미약
안전자산 자리매김 ‘먼 길’ 분석도

그동안 원유시장은 달러 독주 체제였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를 비롯해 런던ICE선물거래소·싱가포르상품거래소(SMX)·두바이상업거래소(DME) 등 주요 선물시장은 모두 ‘배럴당 달러’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한다. 결제도 당연히 달러로 한다.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원유를 사는 나라는 베네수엘라·이란 등 미국의 금융 제재를 받고 있어 달러를 쓸 수 없는 나라뿐이다. 패트로 달러는 그만큼 견고했다. 그런데 중국이 자국 통화로 원유를 수입한 것이다. 패트로 위안 시대를 연 것이다.
  
코로나로 수요 감소 … 중국 ‘큰 손’ 부상
 
사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패트로 위안 시대를 준비해왔다. 1993년 원유 선물시장을 개장했지만 규모가 작고 변동성이 큰 탓에 1년여 만에 거래를 중단했다. 2018년엔 상하이선물거래소를 개장했지만 BP 등 세계 주요 회사는 원유 위안화 거래에 합류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이 컸던 만큼 위험 부담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이 같은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세계 각국이 수요 감소 등을 이유로 원유 수입을 줄이고 있는 반면 가장 먼저 경제 재개에 나선 중국은 원유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6월 기준 중국 원유 수입량은 하루 평균 1290만 배럴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입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4% 늘었다.
 
석유 소비량이 가장 많은 미국은 아직도 수요 둔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원유 수입국인 인도도 일부 지역이 재봉쇄에 들어가면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인도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5.3% 떨어졌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다른 나라보다 먼저 회복한 중국이 원유 수요 감소로 가격이 떨어진 상황을 이용해 원유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패트로 위안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세계 원유시장에서 중국이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 입김이 세진 영향이다. 구매력을 앞세워 주요 석유 업체를 대상으로 위안화 거래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FT는 “중국이 산유국의 구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산유국은 원유 수요를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보니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오래 전부터 패트로 위안에 공을 들인 이유는 원유시장의 결제 화폐가 기축통화(基軸通貨·나라 간 거래에서 사용하는 기본이 되는 통화)의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기업이 원유를 위안으로 거래하면 중장기적으로 위안화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패트로 위안을 발판으로 ‘위안의 국제화’를 이루겠다는 야심이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40여 개국의 중앙은행과 ‘위안화 스왑’ 계약을 하고, 위안화 국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위안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달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2015년엔 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여러 통화를 한꺼번에 담은 바구니)에 위안화를 포함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당시 위안화는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와 함께 SDR 바스켓을 구성하는 다섯 개 통화 중 하나가 됐다.
  
홍콩, 위안화 국제화 전진기지 기능 약화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하지만 전반적으로 위안화의 세계적 위상은 아직 낮은 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의 비중은 2% 정도에 그친다. 달러의 비중이 62%로 여전히 압도적이고, 유로가 20.1%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엔(5.8%)과 파운드(4.4%)도 위안화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위안화가 나라 간 결제에 사용되는 비중도 지난해 말 기준 1.94%로 엔화(3.46%)에도 못 미친다. 달러(42.22%)나 유로(31.69%)·파운드(6.96%)에는 크게 뒤진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패트로 위안에 더욱 공을 들이는 것이다. 중국 내부에선 최근 미국과의 갈등을 의식해 위안의 국제화를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달러를 이용해 금융시장에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만큼 달러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7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하고, 홍콩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국 당국자와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할 수 있게 하는 ‘홍콩자치법’에 서명하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홍콩에 역외 금융시장(비거주자 간 금융거래 시장)을 개설하고 중국 제품을 수출할 때 홍콩에서 위안 결제를 유도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조치에 따라 외국 기업이 홍콩을 대거 떠나면 홍콩의 위안 국제화 전진기지 기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스탠다드차터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딩솽은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 입장에서 희망사항이었던 위안화 국제화가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안의 세계화가 당장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외환시장은 중국 정부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금 입출금이 언제든 제한될 수 있으므로 위안이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전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연구원은 “현재 상황에서 중국이 국제통화를 갖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위안화가 국제 통화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과정은 아직 멀다”고 전망했다.
 
중국, 20여 기업과 디지털 위안화 막바지 테스트…달러 통제권 위협
중국 인민은행이 주요국 중앙은행으로는 세계 처음으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다. 알리페이 같은 모바일 결제가 일상생활에서 보편화한 데 힘입어, 국가가 보증하는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하는 것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지난 수십 년간 유지해온 미국 달러 중심의 통화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위안화의 세계화를 더 당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앞두고 테스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언론 FX168 등은 최근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가속화하기 위해 20개 이상 기업과 함께 테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협력 기업 중에는 공상·건설·농업·중국은행 등 4개 국유 기업과 함께 차이나텔레콤·차이나모바일·차이나유니콤 등 3대 통신사와 화웨이가 포함돼 있다. 인민은행은 6년간의 준비 끝에 ‘디지털 화폐-전자결제’(DCEP) 시스템을 시험 운영하고 있는데, 본격 출시에 앞서 테스트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인민은행은 현재 쑤저우·슝안·청두·선전 등 4개 지역에서 시험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현금처럼 사용한다. 중국에선 이미 알리페이·위챗페이 등 전자결제 기술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만, 인민은행의 디지털 위안화는 중앙은행의 화폐 기능과 결제 기능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훨씬 파급력이 크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투기 거래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는 암호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안정된 가치를 가진다.
 
디지털 위안화는 미국의 달러 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장이다. 지금은 달러 기축통화에 기반을 둔 미국 금융시스템을 통하지 않고는 무역 거래나 국제 투자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북한이나 이란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을 자국의 금융망에서 배제하거나 이들 국가와 제3국 기업의 거래까지 막는 제재의 채찍을 휘둘러 세계를 통제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의 디지털 화폐 기술이 확산되면, 중국과 거래하는 나라와 기업은 미국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위안화로 무역 결제를 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통제력이 약해지는 셈이어서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50여 개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연구 중이지만 미국은 중앙은행 차원의 디지털 화폐 발행 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다. 자체적으로 디지털 화폐 ‘리브라’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우리가 논쟁만 하는 동안 중국은 몇 달 안에 움직일 것”이라며 “미국이 혁신하지 않으면 우리 금융 리더십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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