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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계 청두 美총영사 부인, "성조기 내릴 땐 모두가 울었다"

중앙일보 2020.07.31 14:04
중국 청두 미 총영사 짐 멀리낙스(Jim Mullinax)와 그의 부인 촹쭈이(Chuang Tzu-i). [페이스북 캡쳐]

중국 청두 미 총영사 짐 멀리낙스(Jim Mullinax)와 그의 부인 촹쭈이(Chuang Tzu-i). [페이스북 캡쳐]

 
“‘고맙습니다. 청두 1985~2020’ 현수막을 못 건 게 아쉽다”

미 총영사 부인 대만계 촹쭈이 글 남겨
마지막 남은 23명....24시간 교대 근무
“35년 교류, 역사로...할 게 없었다”
지난 2월 코로나속 외교관 철수, 나치 비유 논란
주미 중국대사 “중·미 관계 회복돼야”


 
지난 27일 폐쇄된 중국 청두 미 총영사관 짐 멀리낙스(Jim Mullinax) 총영사의 부인이 남긴 글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대만 출신으로 14년 전 멀리낙스 총영사와 결혼한 촹쭈이(Chuang Tzu-i)가 페이스북을 통해 청두 미 영사관 폐쇄 뒷얘기를 전했다.
 
촹은 “21일 미국이 주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발표했을 때 청두에 남아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조기 귀국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청두 영사관 폐쇄가 결정됐을 때 ‘30여년간 공관에서 일해 온 100여 명의 현지 직원, 운전사, 경비원, 청소 아주머니들이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중국 청두 미 총영사의 부인 촹쭈이가 28일 총영사관 폐쇄 뒷 얘기와 소회를 남겼다. [페이스북 캡쳐]

중국 청두 미 총영사의 부인 촹쭈이가 28일 총영사관 폐쇄 뒷 얘기와 소회를 남겼다. [페이스북 캡쳐]

 
청두 총영사관 폐쇄 당시 공관에 남아있던 미국인은 외교관과 가족, 직원들까지 포함해 23명이었다. 이들은 지난 2월 청두를 떠난 뒤 5월 1일 워싱턴, 괌, 상하이를 거치는 41시간 비행 끝에 다시 청두로 돌아왔다.  
 
촹은 총영사관 폐쇄 전 72시간 동안 직원들이 거의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촹은 “그들이 24시간 교대 근무를 거듭한 끝에 겨우 월요일 새벽 국기를 내리고 공관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며 “남편은 뒷마당에 중ㆍ미 직원들이 함께 일군 채소밭을 철거해야 하는 것에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소개했다.
  
27일 새벽 6시 18분 청두 미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철거되고 있다. [주중 미대사관 웨이보 캡쳐]

27일 새벽 6시 18분 청두 미 총영사관에서 미국 국기가 철거되고 있다. [주중 미대사관 웨이보 캡쳐]

 
청두 미영사관에서 성조기가 내려진 건 27일 새벽 6시 18분(현지시간)이었다. 공개된 영상에선 보이지 않지만 촹은 “깃발을 내릴 때 많은 사람들이 울먹였다”며 “영사관 현관 앞에 급히 만든 ‘감사합니다. 청두 1985~2020’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왜 걸 수 없었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촹쭈이는 앞서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글로 중국인들의 비난을 산 바 있다. 그는 지난 1일 64만 명의 팔로워를 둔 웨이보 계정에 "2월 1일 중국 국무원이 갑자기 모든 외교관에 철수 명령을 내렸던 것을 기억한다"며 "급히 짐을 싸서 떠나는데 마치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이 나치를 피해 집을 떠났던 게 이렇지 않았을까"라고 썼다.
 
촹쭈이는 지난 1일 자신의 웨이보에 "2월 1일 중국 국무원 요구로 급히 청두를 떠나야 했을 때 마치 유대인이 나치를 피해 집을 떠나는 것 같았다"는 글을 올렸다. [촹쭈이 웨이보 캡쳐]

촹쭈이는 지난 1일 자신의 웨이보에 "2월 1일 중국 국무원 요구로 급히 청두를 떠나야 했을 때 마치 유대인이 나치를 피해 집을 떠나는 것 같았다"는 글을 올렸다. [촹쭈이 웨이보 캡쳐]

 
당시엔 문제가 없던 이 글은 24일 청두 미 총영사관 폐쇄가 결정된 이후 논란이 됐다. 중국 네티즌들은 촹을 “스파이”, “대만 독립주의자”라고 비난했고, "너의 남편과 부하들이 티베트와 신장(新疆)에 관해 스파이 짓을 해왔다는 것을 몰랐느냐"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촹은 청두 영사관을 나온 뒤 남긴 글을 통해 간결하지만 분명하게 답했다. "난 짐과 결혼한 것일 뿐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한 어떤 생각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촹은 “35년간의 교류가 이제 역사로만 남게 돼 버렸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며 “언젠가 비가 그치고 날이 개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주중 미대사관도 총영사관 폐쇄 다음 날인 28일 멀리낙스 청두 총영사의 2분 35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청두 영사관 폐쇄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8월 총영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 1일 청두시민들에게 남긴 인사였다. 

 
주중 미국대사관의 중국 웨이보 계정은 28일 짐 멀리낙스 청두 총영사의 전별 인사 영상을 올렸다. [웨이보 캡쳐]

주중 미국대사관의 중국 웨이보 계정은 28일 짐 멀리낙스 청두 총영사의 전별 인사 영상을 올렸다. [웨이보 캡쳐]

 
멀리낙스 총영사는 유창한 중국어로 “지난 3년간 활력으로 충만한 이 도시에서 일하게 돼 영광이었다”며 “미국과 중국 서남부지역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청두 총영사관 폐쇄로 이 말이 무용지물이 돼 버린 상황에서 영상은 역설적으로 미ㆍ중 갈등 격화의 책임을 중국 측에 돌리는 뉘앙스가 됐다.  
 
한편, 주미 중국대사는 30일 중국이 여전히 양국 관계의 회복을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을 통해 “중ㆍ미관계의 운명은 여전히 대화와 협력에 달려 있다”며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선의와 진심으로 중·미관계를 발전시키길 원한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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