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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화목 강요당할 때 개인으로서의 삶은 희생”…‘가족입니다’ 권영일 PD

중앙일보 2020.07.31 12:00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마지막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삶을 찾았을 때, 비로소 편안하고 따뜻한 '최선의 가족'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송캡처]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마지막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삶을 찾았을 때, 비로소 편안하고 따뜻한 '최선의 가족'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송캡처]

 
“가족이 화목해야 한다는 신념이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희생하게 합니다. 각자 개별적인 삶이 존중받을 때 ‘최선의 가족’이 되는 거죠.”
 
호평 속에 지난 21일 종영한 tvN 드라마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가족입이다’의 권영일(38) PD는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를 이렇게 짚었다. 극 중 은희(한예리)의 대사 “‘우리’랑 ‘가족’이랑 붙어있으니까 화목을 강요당하는 기분인데요”를 인용하면서다. 효와 우애, 희생과 사랑을 강조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절대선으로 전달하는 기존 가족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메시지다. 서면인터뷰로 만난 권 PD는 “첫 단독 연출이라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인데 좋은 작품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그동안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슈츠’ 등을 공동 연출한 바 있다.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권영일 PD. [사진 tvN]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권영일 PD. [사진 tvN]

권 PD는 ‘가족입니다’의 대본을 처음 만난 순간도 생생히 기억했다. “각 캐릭터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 모든 이야기들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면서 “가족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러나 강한 울림으로 표현하는 글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봤다.  
 
영화 ‘접속’ ‘후아유’ 등의 김은정 작가가 쓴 ‘가족입니다’는 진숙(원미경)ㆍ상식(정진영) 부부의 졸혼 문제에서 시작해 큰딸 은주(추자현)의 출생의 비밀, 성소수자였던 사위 태형(김태훈)의 커밍아웃, 둘째딸 은희의 가슴아픈 연애사와 막내 지우(신재하)의 가출 등 자극적 소재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평범한 시청자들의 몰입과 감동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각 갈등 상황의 마무리를 “현 시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모습”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가족 여행을 제안한 상식에게 아내 진숙은 "우리 둘이 가요"라고 카톡을 보낸다. [방송캡처]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가족 여행을 제안한 상식에게 아내 진숙은 "우리 둘이 가요"라고 카톡을 보낸다. [방송캡처]

드라마 엔딩 장면도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색달랐다. 아버지 상식이 가족 카톡방에 ‘우리 가족 여행 갈까’라는 글을 올리자 삼남매는 자기들끼리의 카톡방에서 난감한 심정을 토로한다. 가족들의 무반응에 실망하고 있던 차 아내 진숙에게서 개인톡이 온다. ‘우리 둘이 가요’라고. 이 장면에 대해 권 PD는 “실제로도 부모님이 포함된 대화창과 형제들끼리의 대화창에서 나누는 대화는 다르지 않냐”면서 “우리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개인이 만나 가족이 된 뒤론 처음 다짐했던 마음들을 잊은 채  ‘살아내야 하는 삶’에 집중하게 되죠. 그러다 자식들이 품을 떠나고 자신들의 삶에도 더 이상의 변화가 없어질 즈음이 되면 결국 다시 둘이 되고요. 성인이 된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더 이상 모든 속내를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결국 곁에 남는 건 가족의 시작이었던,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한 여자와 한 남자. 이 둘이 되겠지요.  ‘우리 둘이 가요’라는 진숙의 말이 다시 돌고 돌아 만나는 우리 삶의 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회 진숙이 혼자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설정은 드라마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희생하고 얻는 ‘화목한 가족’의 허상을 짚어내면서다.  
“이럴 때 가족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가족 구성원 각자의 내면은 숨이 막혀오면서 자기 자신은 없는 삶이 됩니다. 드라마 막바지 진숙이 수십 년 동안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다른 가족들도 가족이 아닌 각자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일으켜 최고의 마음을 가진 상태가 됐을 때, 이들은 보다 편안하고 따뜻하게 다시 모일 수 있었지요.”  
 
권 PD는 또 “김은정 작가가 마지막 16부 대본에 배우ㆍ스태프들에게 전하는 말로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제일 먼저 최고로 위해주세요’라고 써주셨다. 아마 이 말 속에 우리 드라마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들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2회 방송. 기억을 잃은 아버지 상식 앞에서 삼남매가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이다. [방송캡처]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2회 방송. 기억을 잃은 아버지 상식 앞에서 삼남매가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이다. [방송캡처]

연출자로서 그가 가장 색다르게 표현해보려고 했던 장면은 드라마 2회 스물두 살 기억으로 돌아간 상식이 병원에서 진숙과 대면하는 순간이다. “졸혼을 선언한 진숙 앞에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상식이 앉아 있는 장면을 통해 젊은 시절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의 문을 여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서 “실제로 그 장면이 방송에서도 다시 옛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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