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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거명 안했는데 죄 되겠나” 이건 2차 가해자들의 착각

중앙일보 2020.07.31 05:00
2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박원순 아카이브(기록보관소) 설치 반대 및 성추행 은폐 가담자 수사 요청 기자회견'에서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및 바른인권여성연합 회원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박원순 아카이브(기록보관소) 설치 반대 및 성추행 은폐 가담자 수사 요청 기자회견'에서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및 바른인권여성연합 회원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사건 수사를 위해 클리앙·FM코리아·이토렌트·디시인사이드 등의 웹사이트 4곳을 압수수색했다. 29일 해당 사이트에서는 “‘2차 가해’가 무슨 법률용어라도 되냐” “어차피 피해자 이름 안 썼으니까 명예훼손죄 안걸린다” 같은 비아냥이 올라온다. 이 주장들은 사실일까. 전문가에게 물었다.
 

①2차 가해는 법률 용어가 아니다?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2차 가해는 형법에 명시된 죄명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엔 ‘2차 피해’라는 용어가 나온다. 이 법은 ‘여성폭력 사건처리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 피해’, ‘폭행, 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인한 피해’, ‘사업주로부터 당하는 불이익 조치’등을 2차 피해로 정의했다. 장윤미 변호사(대한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해당 법률로 2차 가해자를 처벌할 수는 없지만, 2차 피해를 막고자하는 선언적 의미가 담긴 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성범죄 양형기준에도 2차 가해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 대표)는 “성범죄 양형기준엔 ‘합의 시도 중 피해를 야기하면 가중처벌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며 “피해야기라는 표현이 실질적으로는 2차 가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혜미 변호사(법률사무소 오페스) 역시 “법정에서도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사용한다”고 말했다.
 

②어떤 처벌 받나?

경찰이 압수수색한 웹사이트에서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이들을 특정하면 모욕죄와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형법상 모욕죄에 해당할 경우 1년 이하 징역·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거짓사실로 명예를 훼손했을 때는 최대 7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이 적용된다.
 
경우에 따라 협박죄 적용도 가능하다. 송 변호사는 “피해자를 향해 ‘너 누군지 찾아낼 거다’ ‘찾아가서 해코지하겠다’등의 표현은 협박죄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협박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피해자 익명이면 특정성 성립 안 될까?

지난 10일 오전 9시 온라인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올라온 글. [온라인 캡쳐]

지난 10일 오전 9시 온라인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올라온 글. [온라인 캡쳐]

 
변호사들은 “피해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명예훼손·모욕죄가 성립된다”고 입을 모은다.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 중 ‘특정성’이 있지만, 이름이 곧 특정성을 뜻하는 건 아니다. 최 변호사는 “특정 직업군이나 단체를 이르는 ‘집단명칭’은 특정성이 없어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지만, 전체적인 맥락상 특정인을 지칭하는 거라면 죄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도 “익명 혹은 이니셜로 표기해도 죄가 성립된 판례가 있다”며 “‘박 전 시장의 비서’라는 단어 혹은 피해자를 추정할 수 있는 표현이라면 개인을 특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지난 2018년 “명예훼손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는데, 반드시 사람의 성명이나 단체의 명칭을 명시하는 정도로 특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④2차 가해 처벌 추세는?…강화되는 중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인 규명을 위한 서울시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인 19일 오후 서울 성북경찰서 앞. 뉴스1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인 규명을 위한 서울시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인 19일 오후 서울 성북경찰서 앞. 뉴스1

 
실제 2차 가해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는 추세다. 장 변호사는 “2차 가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법원에서도 2차 가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송 변호사도 “2차 가해의 경우 ‘죄질이 나쁘다’는 명목으로 가중처벌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배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17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개정안은 성폭력 피해자를 명예훼손·모욕했을 경우 기존 형량의 2분의 1을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신 변호사는 “어디까지 2차 가해로 볼지는 사회적으로 논의해볼 사안”이라며 “지나치게 처벌해 건전한 토론·토의까지 막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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