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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건축이 삶을 묻다] 파도소리 품은 미술관, 자연동굴 닮은 온천장

중앙일보 2020.07.31 00:32 종합 25면 지면보기

코로나19와 마음을 치유하는 건축

21세기 건축은 자연에 내재된 치유 기능을 주목한다. 2010년 개관한 일본 데시마 미술관의 외부. [사진 각 건축 사무소]

21세기 건축은 자연에 내재된 치유 기능을 주목한다. 2010년 개관한 일본 데시마 미술관의 외부.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재앙이다. 그간 우리가 누려온 수많은 혜택과 풍요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 단순한 사회적 재난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근본적으로 따져보는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자연을 끌어들인 건축 주목받아
돌과 나무, 물과 바람 활용 늘어
현대인의 우울증 달래주는 효과
생명과 죽음의 의미 돌아보게 해

2010년 개관한 일본 데시마 미술관의 내부 풍경. [사진 각 건축 사무소]

2010년 개관한 일본 데시마 미술관의 내부 풍경.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정신도 병들게 한다. 코로나 블루(우울증) 같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백신이 개발되면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겠지만 우리 마음의 생채기는 쉽지 아물지 않을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가장 기대는 곳이 자연이다. 시원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 푸르른 나무, 짧게나마 그 속에서 지내는 것은 코로나 블루 같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영국 슬럼가 되살린 마을공동체 정원
 
마을 중심에 정원을 꾸민 영국의 그랜비 윈터 가든. [사진 각 건축 사무소]

마을 중심에 정원을 꾸민 영국의 그랜비 윈터 가든.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코로나19 팬데믹(범유행) 시대, 건축도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사람을, 나아가 세상을 치유하는 집과 공공시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영국의 청년 건축가 그룹 어셈블 스튜디오가 2013년 시도한 ‘그랜비의 네거리’(Granby Four Streets) 프로젝트가 시사적이다. 영국 리버풀의 작은 마을 그랜비를 되살리는 작업이다. 낡고 오래된, 즉 슬럼화된 공공 주택단지를 수리하고, 더는 손을 댈 수 없는 곳은 ‘윈터 가든’이라는 마을 중심 공간으로 개조했다. 특히 윈터 가든이 주목된다. 낙후된 건물의 외벽만을 남겨 놓고 빛이 들어오는 천창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식물원 같은 공간을 구성했다. 365일 살아 있는 정원이자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일종의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공간 자체의 치유 기능을 구현한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젊은 건축가들은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했다. 관료 중심, 행정 위주의 기존 방식을 거부했다. 지역민들과 꾸준하게 소통하며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무게를 실었다. 주민들 커뮤니티(공동체) 형성에 주력했다. 주민들과 예술가가 함께 워크숍을 열고, 폐자재를 활용한 공예품을 만들고, 그 결과물을 판매하는 플랫폼(유통망)을 구축했다. 공예품 판매 수익금은 다양한 형태의 마을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했다. 이를테면 선순한 구조를 완성했다.
 
페터 춤토르

페터 춤토르

코로나19는 개발과 파괴의 현대문명에 대한 경고장과 같다. 이런 측면에서 ‘침묵의 건축가’ ‘은둔의 건축가’로 불리는 스위스 출신 페터 춤토르의 시적이고 고요한 작업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감각과 감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 ‘테르메 발스’(Therme Vals·1996)를 보자. 테르메 발스는 스위스 알프스의 소담한 산간 마을에 들어선 온천 시설이다. 춤토르는 이 지역에서 캐온 편마암 6만 개를 쌓아 경사진 언덕에 직방형 온천 공간을 만들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건물이 바위에 반쯤 잠겨 있는 구조다. 지붕의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다. 특히 모든 욕탕(Pool)을 낮은 계단식으로 설계해 방문객들은 몸을 천천히 물에 잠기면서 죽음을, 다시 물속에서 일어나면서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상징적 체험을 하게 된다. 켜켜이 쌓인 편마암 때문에 마치 자연 동굴에 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일상적인 목욕을 종교적 세례 의식처럼 끌어올린 것이다. 뜨거움과 차가움, 빛과 그림자 등 온천에서 느끼는 감각적 경험을 한 편의 서정시처럼 길어올린 탁월한 건축물이다.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클라우스 수사 채플 외부 풍경.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클라우스 수사 채플 외부 풍경.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춤토르의 또 다른 수작으로 꼽히는 ‘클라우스 수사 채플’(2007)도 빠뜨릴 수 없다. 독일 소도시 메헤르니히에 있는 작은 성당인데, 공간 자체의 분위기가 얼마나 성스러울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클라우스 수사 채플 내부 모습.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클라우스 수사 채플 내부 모습. [사진 각 건축 사무소]

춤토르는 이 지역 야산에서 채취한 원목 112개를 거푸집으로 사용해 기존에 없던 콘크리트의 질감을 얻어냈다. 더욱이 콘크리트가 굳은 후에 내부의 원목을 불태우고, 그 흔적을 영원히 남겨 두는 놀라운 기법을 실험했다. 건물 내부 벽체는 태워진 그을음으로 까맣게 됐고, 그 안에는 그윽한 나무 냄새도 남게 됐다. 천장에선 햇빛이 내려오고, 그 빛은 어두운 내부 벽에 부딪혀 별빛처럼 흩어진다. 공간의 정신성을 극대화한 셈이다.
  
스위스 작가 춤토르의 ‘침묵의 건축’  
 
장윤규 교수가 상상한 미래형 도시. 건물과 건물이 네트워크를 이룬다.

장윤규 교수가 상상한 미래형 도시. 건물과 건물이 네트워크를 이룬다.

춤토르는 200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 남양 성모성지에 200㎡(약 60평) 크기의 작은 건물을 짓고 있다. 그가 아시아 지역에 처음 선보이는 건축이다. 원래는 경당(작은 성당)을 지으려 했으나 한국의 전통문화를 반영한 ‘티 채플’(Tea Chapel)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워낙 작업 과정이 꼼꼼한 까닭에 완공 시기는 미정이나, 그의 남다른 영성이 또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지 기대된다.
 
공간은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비운 공간도 우리의 정신을 고양한다. 고통에 휩싸인 마음을 가라앉힌다. 일본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와 미술가 나이토 레이가 2010년 개관한 데시마(豊島) 미술관이 그렇다. 미술품 하나 없는 독특한 미술관이다. 타원형의 커다란 구멍 두 개만 있을 뿐이다. 지면 위를 흘러가다 멈춰버린, 속이 비어 있는 한 방울의 물을 연상시킨다. 가령 바닥 군데군데에 빗물이 고여 있는데, 산들바람의 방향에 따라 물방울이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곤 한다. 바다와 숲의 소리가 빈 곳을 통해 울려 퍼지고, 태양의 위치와 시간대에 따라 내부 풍경이 계속 달라진다. 주변의 자연 요소가 텅 빈 내부 공간으로 스며든다.
 
건축물은 불안과 죽음의 경험도 상기시킨다. 201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의 아픔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뉴욕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 정사각형 풀을 두 개 만들어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있다. 정사각형 풀은 도시의 거대한 구멍과 같다. 하늘을 비추는 얕은 공간에 물이 약 4층 높이로 떨어지면서 예전 테러의 폭력성, 그리고 눈앞의 부재와 상실을 반추하게 한다. 오직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이고 감각적인 체험이다. 신에게서 분리된 인간의 유한성을 절감하게 된다. 무모한 죽음을 반성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을 모색하는 자리가 된다.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좋든 싫든 비대면 문화가 새로운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를 떠나 존속할 수 없다. 절대 홀로 생존할 수 없다.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도시 전체를 엮어주는 치유의 네트워크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교류하는 도시의 커뮤니티를 그려봤다. 건물 옥상에 꽃과 나무가 자라고, 도로 건너편 건물과 건물이 연결된 그런 곳이다.
 
"일상이 곧 예술" 영국 젊은 건축가들의 도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은 2015년 파격적인 결정을 했다. 20대 건축가·디자이너 18명이 모인 어셈블(Assemble) 스튜디오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역대 최연소 수상, 최초의 단체 수상이다.
 
어셈블은 도시재생 단체다. 심사위원들은 예술과 디자인·건축의 공동작업이라는 관점을 극대화해 마을공동체의 대안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젠트리피케이션(도시 낙후 지역을 개발하면서 그곳 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과는 정반대 지점에서 도시재건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다.
 
어셈블은 디렉터 마리아 리소고르스카야를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도시환경의 변화를 시도해왔다. 버려진 주유소를 영화관으로 바꾼 ‘시네롤리엄’(The Cineroleum), 낙후된 리버풀 공공 주택단지를 되살린 ‘그랜비의 네거리’(Granby Four Streets) 등이 대표적이다.
 
어셈블은 예술이 지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작가 몇 명을 마을에 입주시키고,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거나 미술관을 세우는 그런 평범한 방식이 아니다. 젊고 영민한 멤버들이 지역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현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도시계획을 세운다. 미술과 디자인의 영역을 생활 공간으로 과감하게 넓혀가고 있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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