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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로의 알고리즘여행] 전문가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다

중앙일보 2020.07.31 00:28 종합 29면 지면보기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똑똑한 학생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은 그냥 맡겨두면 잘 굴러갈까? 필자가 서울대에서 20여년간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해온 경험으로는 단연 NO다. 외부에서 서울대생들에게 갖는 잘못된 선입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학생들은 완성된 인력이 아니고 전문가가 되는 방향으로 훈련하는 초입에 있을 뿐이다.
 

과거, 도메인 지식만으로 충분
융합 시대엔 많은 경험 필요해
관점·통찰력은 시간의 축적물
관찰, 궁금해하는 습관 길러야

매년 기업에서 요청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로젝트는 보통 교수와 몇 명의 학생들이 팀을 이룬다. 서울대 학생들은 명민하다. 대개 수학적 기본이 잘되어 있고 복잡한 첨단 기법도 금방 익힌다. 그렇다고 명민하다는 사실이 일이 바로 되게 하지는 않는다. 프로젝트에서 한동안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면 천재적인 학생도 방향을 잃거나 막연함에 빠지기 일쑤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도메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대개 키맨이었지만 디지털과 빅데이터 환경에 접어들면서 융합의 시대가 되었다.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많이 경험하고 넓은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점점 힘이 강해진다. 우리 학생들이 이런 인재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훈련하려고 노력한다. 시대가 특정 도메인의 시야에 국한된 사람으로는 더 이상 트랜드에 맞출 수 없게 되었다. 각 학부의 커리큘럼에서 배우는 것도 한 분야의 도메인 지식이고 다른 분야와 풍부한 접점을 갖지 못하면 가치가 제한적이다.
 
오픈 소스의 시대라 웬만한 첨단 기법 소스는 어딘가에서 구할 수 있다. 한 프로젝트에서 열 개 정도의 오픈 소스를 가져오는 것은 예사다. 덕분에 옛날에 비해서 동일한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의 크기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일을 하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아이디어가 생긴다. 이럴 때 직접 코딩하는 대신 먼저 누군가가 이런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있지 않았는지를 논문·문서 등을 통해 먼저 알아본다. 대개 누군가가 비슷한 생각을 했고 소스가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걸 찾는 것도 훈련이다. 오픈 소스라고 해서 자동차 타이어처럼 척 장착되는 것이 아니니 주변 지식도 필요하다. 이런 것을 착상하고 찾는 것도 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능력 중 하나가 되었다.
 
알고리즘여행 7/31

알고리즘여행 7/31

20여년간 학생들과 일을 해본 결과 학생들은 얼핏 가장 단순해 보이는 곳에서 가장 약하다. 데이터를 보는 관점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이건 무얼 궁금해할 것인가와도 관계있다. 방대한 데이터 중 어떤 것을 취사선택할 것인가? 데이터의 어떤 부분이 훈련을 방해할 가능성은 없는가? 데이터에 노이즈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는가? 앞쪽 모델의 최적 결과가 뒤에서 이어지는 모듈의 결과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는가? 목적 함수는 우리 실정에 맞게 마사지를 할 필요가 없는가? 이런 게 쉽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경험을 덜 해서이거나 쉬운 일만 해서 그런 것이다. 부분들을 다루면서 궁금해하고,의심하고, 전체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프로세스가 여러 번 반복된다. 시스템과 데이터의 안으로 들어가서 현미경 보듯이 관찰하고 궁금함을 도출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학생들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신임교수 시절의 필자도 그랬다. 당시의 첨단 기법으로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지만, 기업과 학교에서 경험한 몇 건의 프로젝트 경험으로는 복잡한 프로젝트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풍부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의 프로젝트나 외부 강연을 생각해보면 품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뭐가 부족한지도 잘 몰랐다.
 
서울대 공대의 이정동 교수가 오래전에 동료 교수들과 인터뷰하고 관찰한 결과를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으로 냈는데, 핵심적인 결론이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는 시행착오의 누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통찰력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
 
전문가의 특징 중에 중요한 것을 두어 가지 들면, 힘이 빠져있는 것과 즉각적으로 골격을 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제대로 된 시행착오를 거친 흔적이다.
 
관점이 형성되지 않으면 AI 시스템이 말도 안 되는 문장으로 아무 소리나 내뱉고 있는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해도 믿게 된다. 학부를 마치면 다 안다고 기고만장하고, 석사를 마치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박사를 따면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다. 시행착오의 시간은 고통스럽다. 학생들이 지금 그런 시간에 속해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 과정을 편안하게 견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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