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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임대료 인상 5% 제한, 전·월세 시장 대혼란

중앙일보 2020.07.31 00:02 종합 3면 지면보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환호하고 있다. 왼쪽은 김진표 의원. [연합뉴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3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환호하고 있다. 왼쪽은 김진표 의원.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전세를 사는 곽모(31)씨는 30일 집주인에게 전화했다가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4층짜리 다가구주택의 1층에 사는 곽씨는 집 안에 하수구 냄새가 심해 집주인에게 보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곽씨에게 “임대차 3법 때문에 속 시끄러운데 냄새나서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말했다. 곽씨는 “전에는 화장실 타일 깨진 것도 흔쾌히 고쳐줬는데 집주인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전했다.
  

임대차 2법 여당 주도로 국회 통과
오늘 임시 국무회의 거쳐 전격시행

민주당 ‘과속입법’에 시장 불안감
서울 아파트 전셋값 자고나면 올라

집주인들 전세대출 동의 꺼리고
세입자는 매물 씨가 말라 또 걱정

집주인 “앞으로는 집수리 안 해줄 것”
 
경기도 남양주에서 아파트를 전세놓은 황모(44)씨는 30일 만나기로 했던 은행 직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혼부부인 세입자는 추가로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질권 설정 동의를 부탁했고, 원래는 황씨도 동의했었다. 하지만 황씨는 이날 임대차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마음을 바꿨다. 그는 “2년 전 아파트 완공 때 잔금을 내기 위해 전세를 싸게 내놨다. 그런데 기존 전세계약까지 (임대차 3법을) 소급적용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어 나가주면 고마운 상황인데 세입자를 배려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5%)가 31일 시행된다. 갑작스러운 입법에 집주인은 분노하고 세입자는 불안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국회는 30일 본회의를 열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정부도 31일 오전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이들 개정안을 곧바로 공포, 시행하기로 했다. 부동산 시장, 특히 전·월세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가 소관 상임위(법제사법위) 상정부터 국회 통과(28시간), 시행까지 채 이틀밖에 안 걸린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1989년 전세 계약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바뀐 지 31년 만에 개정되는 것이다. 2년마다 집을 옮겨다니는 전세 난민이 사라지는 등, 집 없는 서민의 주거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팔라지는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

가팔라지는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

경제학자 출신인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본회의 발언을 통해 “나는 임차인이다. 오늘 표결된 법안을 보며 4년 후 꼼짝없이 월세로 들어가겠구나,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축조 심의 과정이 있었다면 고령 임대인에게 어떤 배려를 할지, 수십억원짜리 전세에 사는 부자 임차인도 같은 방식으로 보호할 것인가 등을 점검했을 것”이라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킨 민주당은 전세·부동산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주인들은 벌써 규제의 틈새를 찾아 나섰다. 세입자의 전세대출에 동의하지 않거나, 주택 원상복구 의무를 엄격하게 따지는 식의 대책을 찾고 있다. 세입자가 살기 팍팍해진다는 의미다. 벽에 못 하나 박거나 에어컨 배관 구멍을 뚫는 것도 손해배상을 하게 될 수 있다. 호주에서 3년간 거주한 최모(40)씨는 “호주에선 빌린 집을 나갈 때 못 자국 개수까지 적힌 체크리스트를 들고 와 30분 넘게 확인하고 비용을 계산했다”며 “한국도 그런 상황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전세 매물은 귀해졌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성산시영아파트는 3710가구 대단지인데도 전세 매물이 세 개뿐이다. 성산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나마도 집주인이 들어올 것이어서 세입자가 1년3개월만 사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의 미사강변도시8단지 스타힐스(1389가구)도 전세 매물이 세 개뿐이다.
  
입주 2년차 아파트 전셋값 두 배로 뛰어
 
특히 올해 입주 2년 차를 맞은 새 아파트의 사정이 좋지 않다. 2018년은 45만 가구의 입주가 쏟아지며 전국 아파트 전셋값(-0.65%)이 10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진 해였다. 새 아파트는 잔금을 내야 하는 집주인이 전세를 싸게 내놓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의 충격으로 2년 전 입주 아파트의 전셋값이 폭등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헬리오시티(9510가구)는 2년 전 84㎡(전용면적) 전셋값이 5억원 선이었다. 현재는 10억원까지 치솟았다. 현재 이 아파트 매매 시세는 19억원 선이다.
 
전셋값을 올려주고 재계약하기도 쉽지 않다. 집주인이 반전세(전세+월세)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서다. 헬리오시티 84㎡를 반전세로 살려면 보증금 5억원에 월 16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가락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 시세 10억원을 받을 수 있는 집을 반값에 재계약할 이유가 없다”며 “본인이나 가족이 입주해 2년 살고 다시 전세를 놓겠다는 집주인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부는 임대차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지만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올랐다. 임대차 3법의 국회 통과가 확실시되자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감정원은 지난 27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0.14% 올랐다고 30일 밝혔다. 경기도 전셋값은 지난주와 비슷한 수준인 0.19% 상승했다. 인천 전셋값은 0.03% 올랐다.  
 
최현주·오원석·박해리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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