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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속죄상 조각가 "유대인 앞 무릎꿇은 서독 총리에 영감"

중앙일보 2020.07.30 16:52

왕광현 “유대인에 사죄한 흑백사진 울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렵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중앙포트]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렵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중앙포트]

조형물 ‘영원한 속죄(A heartfelt apology)’를 만든 조각가 왕광현(51)씨는 “서독의 총리가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꽃 든 소녀상 모습에 “짓밟힌 소녀 헌화 의미”
4년 전 김창열 원장과 만나 ‘영원한 속죄’ 구상
“사죄상보다 소녀상에 더 관심가져달라” 강조

 왕씨는 30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래전 일이지만, 서독 총리가 희생된 유대인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는 흑백사진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며 “일본은 현재도 역사적 사실을 계속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작가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왕씨가 언급한 서독 총리는 빌리 브란트(1913~1992) 전 총리다. 그는 1970년 12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왕씨는 4년 전 소녀상 앞에 남성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강원도 평창 오대산 기슭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 잔디광장에 설치됐다.
 
 왕씨는 “지인의 소개로 (조형물을 제작한) 김창열 한국자생식물원장을 알게 됐다”며 “원장님과 뜻이 맞아 조형물을 만들게 됐고, 조형물을 본 조정래 선생께서 ‘영원한 속죄’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고 했다. 왕씨가 만든 조형물은 일본 정부가 최근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유감을 표하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됐다. 무릎을 꿇고 있는 남성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영원한 속죄’는 조정래 선생이 붙여준 이름 

지난 28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조형물을 만든 조각가 왕광현씨는 ’서독의 총리가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식물원 내에 건립된 조형물 '영원한 속죄'의 모습. 조형물을 만든 조각가 왕광현씨는 ’서독의 총리가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앞서 김창열 원장은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조형물이 아베 총리라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왕씨는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남성이 누구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왕씨가 만든 작품의 소녀상은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누구나 와서 소녀상 손에 꽃을 꽂을 수 있다. 왕씨는 “처음 작품을 만들 때부터 사죄상보다는 소녀상에 더 초점을 맞추어 작업했다”며 “일제에 의해 젊은 날을 무참히 짓밟힌 소녀들에게 헌화의 개념도 있고, 소녀들이 다시 꽃으로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진정한 사과가 있었다면 작품을 보는 시각과 해석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무릎을 꿇고 있는 대상이 아베 총리다. 아니다를 떠나서 중요한 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강조했다.
 
 한국자생식물원 다음 달 10일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찬반 논란이 거세지자 계획을 취소했다. 왕씨는 “김창열 원장이 좋은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으나, 논란이 되는 바람에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며 “‘영원한 속죄’는 국민 누구나 가진 정서에 작가적인 사고를 덧대어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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