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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청약가점제

중앙일보 2020.07.30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난임시술 중인 사람이 가장 부러워하는 건 자연임신을 한 사람이 아니다. 시험관시술에 한번에 성공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무주택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은 유주택자가 아니다. 청약가점 높은 무주택자다. 개인적으로 1년여 동안 15번 청약 도전에 실패한 지금, 청약가점제를 생각한다.
 
청약제도가 없던 시절, 아파트 분양은 선착순 또는 공개추첨으로 이뤄졌다. 1977년 3월 서울 여의도 목화아파트 공개추첨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경쟁률 45대 1. 한 투기꾼은 2억원을 내고 100가구분을 신청해 화제였다. 분양권은 현장에서 80만원 프리미엄이 붙어 팔렸다.
 
아파트 투기에 대한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투기 바람을 잠재우겠다며 정부가 1977년 4월 공공아파트 청약제도를 탄생시켰고, 이듬해 민영아파트로 확대했다. 청약부금·예금에 가입해 일정 기간 납입해야 1순위를 줬다. 새 아파트 공급 ‘줄 세우기’의 시작이다.
 
그 후에도 꽤 오래 청약 당첨은 운이었다. 청약통장 가입 뒤 2년만 지나면 사실상 같은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복권처럼 운 좋게 걸리면 새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2007년 9월, 청약제도가 추첨제에서 가점제로 바뀌었다. 부양가족수,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에 따라 점수를 주는 청약가점제가 도입됐다.
 
가점제가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다. “1억원 미만 집에 사는 유주택자가 수억 원 고액 세입자보다 불리하다” “젊은층과 신혼부부에 불리하다”는 형평성 논란이 거셌다.
 
도입 당시에도 ‘태풍의 눈’으로 불리던 청약가점제가 진짜 대형 태풍을 몰고 온 건 2017년부터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전용면적 85㎡ 이하 공급물량에 100% 가점제가 시행됐다.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까지 시행되면서 현금부자 50대 무주택자엔 기회가 열렸다. 가점 낮은 이들은 선택해야 한다. 버티느냐, 포기하느냐, 지르느냐.
 
최근 만난 무주택자 고위공무원 A가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청약가점이 60점을 훌쩍 넘지만 어디에도 청약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수능 만점을 받고 대학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긴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대학공부도, 내집 장만도. 저가점 무주택자의 고민이 깊어진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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