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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닫혀도 매일 열었다···전두환·JP 찾은 '대구 사랑방'

중앙일보 2020.07.29 05:00 종합 16면 지면보기
대구 ‘미도다방’ 정인숙 대표. 40년 넘게 대구 진골목의 터줏대감을 이끌고 있다. 손민호 기자

대구 ‘미도다방’ 정인숙 대표. 40년 넘게 대구 진골목의 터줏대감을 이끌고 있다. 손민호 기자

2월 18일 이후 대구는 다른 도시가 되었다. ‘슈퍼 전파자’라 불렸던 31번 확진자가 출현한 뒤 달포, 대구는 깊은 잠에 빠졌다. 시설과 업소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거리는 차량은 물론이고 행인도 끊겼다. 2월 25일부터 엿새간, 사상 최초로 서문시장의 6000여 개 점포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전쟁 중에도 쉰 적 없다는 ‘국일따로국밥’도, 1년에 200만 명이 입장한다는 ‘이월드’도 3월 한 달은 영업을 포기했다. 그 계절, 인구 250만 명의 도시는 멈춰 섰다. 
 

대구 진골목 ‘미도다방’ 정인숙 여사
코로나사태 최악 2, 3월도 매일 열어
“40년 넘게 일한 다방, 내 평생직장”

모두가 겁에 질려 꼼짝도 못 했던 시절, 대구 진골목의 낡은 다방은 날마다 문을 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정 여사’는 하루도 안 빠지고 예의 고운 한복 차려입고 다방을 지켰다. 정 여사. ‘미도다방’ 정인숙(68) 대표를 이르는 어르신 단골의 애칭이다.
미도다방 입구. 정문 옆에 전상렬 시인이 쓴 시 '미도다방' 전문이 걸려 있다. 손민호 기자

미도다방 입구. 정문 옆에 전상렬 시인이 쓴 시 '미도다방' 전문이 걸려 있다. 손민호 기자

정말 매일 문을 열었어요?
그럼요. 날마다 나왔어요, 집에서 남편이랑 아들 며느리 다 말렸는데 나왔어요. 마스크 쓰고 버스 타고 40분쯤 거리를 매일 출퇴근했어요. 퇴근할 땐 너무 사람이 없어서 좀 무섭긴 했어요.
 
손님이 있었어요?
아뇨, 없었어요. 온종일 있어도 20명이 안 됐어요. 손님 6명이 전부인 날도 있었어요. 처음 두 달은 혼자 나왔어요. 원래 직원 4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2명만 출근해요.
 
손님도 없는데, 왜 나오셨어요?  
40년 넘게 매일 다방에 나왔는데 어떻게 집에 있을 수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내내 다방에서 일했어요. 저에게 다방은 평생직장이에요. 다방에 나오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집에서 죽으나 다방에서 죽으나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고 어르신도 그렇고 갈 데가 없었잖아요. 어르신 한 분 한 분과 깊은 얘기를 나눴어요. 각자 살아온 얘기도 하고, 그러다 같이 울고…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위안받으며 놀았어요.
미도다방이 들어선 진골목.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는 진골목은 대구의 역사를 증명하는 현장이자 스스로 역사다. 손민호 기자

미도다방이 들어선 진골목.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는 진골목은 대구의 역사를 증명하는 현장이자 스스로 역사다. 손민호 기자

“다방이 평생직장”이라는 정 여사의 말은 진심이다. 7남매 맏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방 카운터에서 일하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종로2가 진골목에 미도다방을 차린 건 1980년. 그 뒤로 세 번 이사하면서도 진골목은 떠나지 않았다. 공식 휴일은 설날과 추석 당일. 나머지 363일은 문을 열었다. 코로나 사태 전 하루 손님은 300명 정도. 돈을 많이 벌었지만, 많이 쓰기도 했다. 미도다방은 아직도 월세 신세다.
 
“어르신들 길흉사 챙기느라 경조사비가 월 100만원씩 들어갔어요. 1년에 고등학생 4명에게 120만원씩, 독거노인 7명에게 60만원씩 꼬박꼬박 보냈어요. 생일잔치도 열어 드리고, 다방에서 같이 밥도 해 먹었어요. 코로나 터지고선 잘 못 해드려 죄송해요. 6월까지 넉 달간 월 500만원씩 적자예요. 예년 수준의 절반 가까이 회복되긴 했는데, 아직은 힘들어요.”  
미도다방 대표 메뉴 쌍화차. 4000원이다. 손민호 기자

미도다방 대표 메뉴 쌍화차. 4000원이다. 손민호 기자

40년 넘게 어르신을 모셨으니 사연이 안 쌓일 수 없다. 대구·경북의 고위 공직자 중 미도다방 쌍화차를 안 마셔본 사람이 없단다. 전두환·김종필·박준규 같은 거물 정치인도 여러 번 들렀고, 단골 어르신의 부고가 유족보다 미도다방에 먼저 간 일도 있었다. 오래전 자주 방문했던 어르신의 손자가 손님으로 앞에 앉았을 땐 정 여사도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2020년 촬영한 정인숙 여사. 손민호 기자

2020년 촬영한 정인숙 여사. 손민호 기자

2009년 촬영한 정인숙 여사. 손민호 기자

2009년 촬영한 정인숙 여사. 손민호 기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단골 어르신 중엔 확진자가 없었어요. 다행이지요? 이번에 알았어요. 대구 사람, 정말 착해요. 마스크 쓰라면 쓰고, 나오지 말라면 안 나오고. 그래서 이렇게 견뎌내는 것 아니겠어요? 바람이요? 그냥 모두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종로2가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전상렬, ‘미도다방’’부분)’ 다방 정문 옆에 걸린 시구다. 다방 안에는 이런 시도 있다. ‘누군가는 그리워서 찾아오고/ 누군가는 흔적을 남기고 떠나간/ 이 종로에 까치밥으로 남아/ 불을 밝혀주는 그녀(손노미, ‘미도다방’ 부분)’ 
 
10년에 한 번꼴 들렀던 인연으로선, 정 여사고 미도다방이고 2009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반갑고 고맙다. ‘에버 그린’. 정 여사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음악이다. 코로나가 최악을 치달았던 2월 29일. 이날 대구에서 확진자 741명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흘렀다. 28일 현재 대구에선 25일째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지역발생 기준). 
 대구=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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