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유명해지려 들어선 재심 변호사의 길이 이젠 그의 길이 되었다.
박준영, 그 앞엔 늘 ‘재심 전문 변호사’란 수식어가 붙는다.
영화 ‘재심’ 개봉을 앞둔 2017년, 그가 살아온 삶을 들려줬다.
“사춘기 적에 반항도 심했고 고등학교를 두 번 다녔습니다.
대학 1년 중퇴 후 운전병으로 군에 갔을 때,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제가 변해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고시촌에 들어가 5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기쁨은 잠시였고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인맥·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 혼자인 저는 출발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친척이나 지인까지도 사건을 맡기지 않으니 서러웠습니다.
사실 평생 한두 번 있을까 싶은 송사를 제게 맡길 리 만무했습니다.
의미 있는 사건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야 제가 살겠다 싶었습니다.
솔직히 사명감보다 재판에 이겨 세상에 알려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재심 변론을 맡은 겁니다.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전북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가짜 강도 사건 등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어쩌다 보니 공익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복역한 피해자의 재심을 맡고 있다. 재판부의 일정을 고려하면 늦어도 내년 1월쯤 결론이 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죄다 무료 변론이니 사무실 월세를 못 낼 정도였다고 했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란 타이틀로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나선 스토리펀딩, 시민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그 소시민의 후원이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을 만든 동력이 된 게다.
“재심은 수십 년 옥살이 한 사람이 또 오랜 시간 법과 싸우는 일입니다.
그 사람에겐 재심 자체가 트라우마를 불러오는 일입니다.
장의사였던 제 아버지와 변호사인 저는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그렇지만 장의사와 변호사는 남의 불행을 헤아려 배려해야만 합니다.”
어쩌다 들어선 재심 변호사, 결국 남의 불행을 배려하는 일이란 얘기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