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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로만 돌던 게 진짠가 싶었다"…박지원 '30억달러' 진실공방

중앙일보 2020.07.28 17:21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면 합의서에 관여한 사람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이면 합의 주장은 정상회담 합의를 성사시킨 대북 특사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다.”(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30억 달러 남북경협 이면 합의서(4·8 남북 경제협력 합의서) 서명’ 의혹 공방이 28일에도 계속됐다. 주 원내대표가 이날 “이면 합의서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제보한 것”이라고 하자 박 후보자는 “제보자를 밝히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대응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오종택 기자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3월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 후보자는 대북 특사로 깜짝 발탁됐다. 북측의 카운터파트인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수차례 비밀 접촉을 하고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 같은 해 4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담긴 남북 합의서를 체결하고 그 이틀 뒤 언론에 공개했다. 4·13 총선(16대)을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이어 김 대통령은 6월 13~1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대북 송금 사건’이 터졌다. 특검팀 수사 결과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5억 달러(현물 5000만 달러 포함)를 북한에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 후보자도 대북송금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게 현재까지 알려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전후 과정이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이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2000년 4월 8일 작성됐다. [미래통합당]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이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2000년 4월 8일 작성됐다. [미래통합당]

 
그런데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가 20년 전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한에 금전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면합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주 원내대표가 이면 합의서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내용은 이렇다. 
 
“첫째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25억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사회 간접부문에 제공한다. 둘째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딸라분을 제공한다. 셋째 이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들은 차후 협의하기로 하였다.”
 
문서 아래에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박 후보자의 사인이 있고, 2000년 4월 8일이라는 날짜도 적혀있지만, 박 후보자가 이 문서를 날조된 것이라며 강하게 부정하면서 진실 공방으로 치닫는 중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공개된 이면 합의 문건을 보고 ‘설로만 돌던 게 진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북송금 특검이 끝난 후에도 대북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 사이에선 ‘수사를 통해 밝혀진 건 극히 일부일 뿐 실제 북한으로 송금하려고 한 돈의 규모는 훨씬 컸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의 서명이 담긴 문건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의 서명이 담긴 문건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다른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여권 인사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면 합의를 하고 그걸 문서화해 서명까지 했다는 건 관례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얘기”라며 “특검을 통해 이미 사실관계가 정리된 마당에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이날 박 후보자가 김대중 청와대 공보수석·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당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은 통화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다. 당시 국정원 자금은 박 후보자는 물론 청와대 누구에게도 가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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