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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보도 1시간 뒤, 국방장관은 서훈 전화 받고서야 월북 알았다

중앙일보 2020.07.28 16:34
 군 당국이 탈북민 김모(24)씨의 월북 사실을 북한 매체의 보도 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수로의 허술한 철망을 뚫고 나간 김씨에게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과학화 경계 자랑하던 軍
배수로 장애물은 쉽게 뚫려
정 장관, 군 보고체계 아닌
靑 지시로 월북 가능성 인지
“군 자체적으로는 월북 몰랐을 것”

28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는 김 씨가 지난 18~19일 월북 과정에서 군 경계태세의 허점을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리였다.
 
박한기 합동참모의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박한기 합동참모의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박한기 합참의장은 이날 국방위에서 배수로에 철망 장애물이 없었느냐는 신원식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배수로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철근으로 마름모꼴 차단 장애물이 있고, 그것을 극복하고 나가면 윤형 철조망을 감아놔서 차단하도록 장애물이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가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갔나'라는 질문에는 "이번에 월북한 인원은 신장이 163㎝, 몸무게 54㎏으로 왜소했다"며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있었던 거로 조사된다”고 답했다. 또 “오래된 윤형 철조망은 노후화된 부분이 식별됐다”고 덧붙였다. 장애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탈북민 김모씨가 월북한 통로로 추정되는 강화도 한 문화재의 배수로. 중앙포토

탈북민 김모씨가 월북한 통로로 추정되는 강화도 한 문화재의 배수로. 중앙포토

 
군 당국은 뒤늦은 조사를 통해 김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월북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박 의장은 “(김씨의 월북 추정) 시간대가 만조 시기여서 여러 부유물이 떠올랐다”며 “재월북을 시도한 인원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구명조끼 등을 착용하고 물속으로 잠수해서 머리만 내놓고 갔을 개연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지역에서 밀물과 썰물이 바뀔 때 북한의 침투를 잡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남에서 북으로 가는 것을 놓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군이 자랑하던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이번 월북 사건에서 무용지물이었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은 전방이나 해안ㆍ강안 경계에 각종 센서와 카메라를 투입해 병력을 대체하는 경계 장비다.
 
박 의장은 “연미정에 군 소초가 있다”면서도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설치했기 때문에 해당 소초엔 주·야간 근무 인원이 없다”고 말했다.
 
군 감시장비에 수상한 장면이 포착됐음에도 김씨의 월북 여부를 북한 매체 보도 전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점 역시 이날 드러났다.
 
박 의장은 "입수한 몇 가지 화면을 봐도 (김씨가 월북한다는 사실을) 식별하기 대단히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거동수상자의 모습이 감시 영상에 희미하게나마 찍혔다는 의미다. 녹화 영상에 대한 검토가 실시간 이뤄졌다면 김씨의 월북 사실을 북한 보도 전 군 자체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박 의장은 “어제(27일) 해당 영상을 다시 돌려보고 (수상한 점을) 식별했다”며 “그 인원이 물속에 목만 남기고 있어 하얀 점으로 나와 화면만 보고 잡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감시장비 영상을) 모니터링 하는 부분에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작년부터 보강을 많이 해왔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는데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방위에서는 군 수뇌부의 ‘지각 인지’를 놓고서도 논란이 일었다. 정 장관은 ‘김씨의 월북 가능성을 언제 처음 알았냐’는 이채익 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26일) 아침 7시~7시 반쯤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의 전화를 받고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서 안보실장의 첫 번째 전화를 세면 중이라 받지 못했고, 두 번째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해당 내용에 대한 북한 조선중앙TV의 보도는 같은 날 오전 6시에 나왔다.
 
정 장관은 “안보실장께서 ‘이 내용(김 씨의 월북 관련 북한 매체 보도)에 대해 빨리 확인을 해야겠다’고 말씀해 합참 관련 요원들에게 확인 지시를 내렸다. 그때 이미 요원들이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고 답했다. 군 수뇌부가 경계 실패가 우려되는 중대 사안을 예하 군 관계자의 보고 체계가 아닌, 북한 매체의 보도를 접한 청와대 관계자의 지시로부터 알게 됐다는 의미다.
 
박 의장은 “오전 7시에 뉴스를 보고 북한 방송 내용을 알게 됐고, 8시 1분 작전본부장으로부터 관련 사안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는 최초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 보도를 본 합참 요원들이 즉각 분석에 들어갔다고 본다면 2시간 가까이 의장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정 장관은 또 ‘북한에서 보도하지 않았다면 김씨 월북을 계속 몰랐을 거 아니냐’는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물음에는 “유관 기관과 합동해서 알 수는 있었겠지만 군 자체적으로는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채익 의원은 이와 관련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며 “북한 발표가 없었으면 우리 군이 계속 몰랐을 것이라니 귀를 의심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경계 태세 미비에 대해선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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