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인 거리두기 ‘역’발상···저가항공 밀린 야간열차 부활했다

중앙일보 2020.07.28 05: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쓴 지 8개월. 여름 휴가철이 성큼 다가왔지만 전 세계 운송 업계는 울상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하늘길이 여전히 통제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는 사정이 좀 다르다. 북적이는 공항과 비행기를 대신할 교통수단으로 새롭게 주목받으면서다. 코로나 시대, 열차는 비행기를 대체할 수 있을까. 
 

유럽 여행객, 코로나19 이후 열차로 몰려
스웨덴·프랑스·체코 야간열차 운행 재개
환경단체 "항공기보다 열차 탄소배출 적어"

지난 1월 개통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출발해 벨기에 브뤼셀까지 향하는 야간열차. 이 열차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최근 다시 재개됐다. [AFP=연합뉴스]

지난 1월 개통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출발해 벨기에 브뤼셀까지 향하는 야간열차. 이 열차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최근 다시 재개됐다. [AF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텔레그래프 등은 20세기 저가항공사에 밀려 사라졌던 유럽의 야간열차가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유럽 각국의 민영·국영 철도 기업들은 국내외를 오가는 야간열차 서비스를 속속 재개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열차 이용객이 급증하면서다. 한때 낭만과 모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유럽 야간열차는 단거리를 오가는 저가항공 등장과 함께 급속히 사라졌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 왼쪽)과 셀린(줄리 델피)는 열차에서 처음으로 만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열차는 낭만적인 장소로 그려졌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한 장면.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 왼쪽)과 셀린(줄리 델피)는 열차에서 처음으로 만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열차는 낭만적인 장소로 그려졌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커지자 다시 야간열차를 찾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기차역과 열차 내부가 공항이나 비행기보다 덜 북적인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일부 열차들은 확실한 '거리 두기'를 위해 내부 리모델링도 했다. 15일 영국에서 운행을 재개한 증기기관차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 칸을 늘리고, 공용 식당 내 1인 칸막이를 설치해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야간열차에 몰린 여행객들…11월까지 예약 마감 

지난달 30일부터 체코 수도인 프라하에서 운행을 시작한 여름 야간열차가 여행객들을 끌어모은 대표적인 인기 상품이다.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등 EU 5개국을 연결하는 이 열차는 당초 일주일에 한 번 띄엄띄엄 운행했다. 
 
그러나 휴가철과 맞물리며 수요가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여행객들은 붐비는 공항과 여객기 대신 열차를 택했다. 실험적으로 재개한 이 열차는 최근 이용객 증가에 매일 출발하고 있다. 
7월 1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제공항 출국장 앞에서 승객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서있다. 한달 150만명이 이용하던 이 공항의 일일 이용객은 최근 1만명에 미치지 못한다. 으로 집계됐다. [EPA=연합뉴스]

7월 1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제공항 출국장 앞에서 승객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서있다. 한달 150만명이 이용하던 이 공항의 일일 이용객은 최근 1만명에 미치지 못한다. 으로 집계됐다. [EPA=연합뉴스]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민영 철도 기업인 스넬토겟(Snälltåget)은 스톡홀름에서 출발해 독일 베를린으로 향하는 야간열차 노선을 4배로 늘릴 계획이다. 독일 질트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오가는 알파인-질트 야간 특급 열차도 당초 두 달만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예약이 많아 11월까지 연장 운행한다.  
 

수익성 낮다던 국영기업도 재정 투입

각국 정부도 나섰다. 스웨덴 정부는 24일 스톡홀름에서 독일 함부르크, 말뫼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는 야간열차 두 개 노선의 운행 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스웨덴 국영 철도 기업은 철도망이 복잡해진다는 이유로 야간열차 운행을 미뤄왔다. 하지만 야간열차 수요가 늘면서 생각을 바꿨다. 재정을 투입하고 열차 내부도 리모델링해 늦어도 2022년 8월 서비스를 재개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랑스는 북부 파리와 남부 니스를 오가는 야간열차를 재개한다. 2017년 수요 감소에 운행을 중단한 지 3년 만이다. 오스트리아도 지난 1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중단했던 빈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의 야간열차를 다시 운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31일 한 승객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 열차를 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지난 1월 31일 한 승객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 열차를 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붐비는 공항 피곤해…환경 위해서라도 열차 이용"

환경 단체도 야간열차 부활을 반기고 있다. 그동안 환경단체는 항공기가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한다며 열차 이용을 권장해왔다. 스웨덴 출신의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도 비행기를 타지 않는 거로 유명하다. 
 
환경 단체 측은 야간열차 수요량 증가가 코로나19로 인한 반짝 특수효과일 것이라 보면서도 교통수단으로써 열차의 가치를 높일 기회라고 보고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여행객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철도교통 웹사이트 '시트61레일웨이'(seat61railway)를 운영하는 마크 스키스에 따르면 야간열차를 탄 승객들 역시 "붐비는 공항 서비스에 질렸다.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열차를 많이 이용할 생각"이란 반응을 보였다. 
핀란드 탐페레 역에서 야간열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핀란드 탐페레 역에서 야간열차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야간열차 부활, 반짝 특수로 끝날까? 

다만 야간열차의 부활이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야간열차는 운행 기간이 길고, 탑승객 수도 제한돼 일반열차와 비교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0년 이후 유럽 각국은 국경을 오갈 때 선로 이용료를 별도로 지불하면서 철도 기업들의 부담도 커졌다. 민영·국영 철도 기업이 야간열차 운행량을 줄이고, 여름 서비스로 한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 의회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유럽 내 열차 운행 및 야간열차를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럽 의회 의원이자 교통 및 관광위원회 의장인 프랑스의 카리마 델리 의원은 유럽 각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야간열차 운행은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을 개발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럽 민간 철도 연합 사무총장인 닉 브룩스는 항공사 구제 금융 지원만큼이나 철도 기업에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브룩스는 "이번 기회에 단거리 비행, 심야 항공편 운항을 금지하고, 대신 철도산업의 가치를 재평가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