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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최고권력자도 안 되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2020.07.28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촛불 정부는 민주화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다. 소위 ‘86’ 세력이 주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신반대 시위로 제적되고, 강제징집도 당했다. 그런 사람들이 집권했는데 왜 ‘민주주의가 위기’(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빠졌을까.
 

수사와 재판의 독립성 보장은
민주주의 지키는 마지막 보루
검찰 개혁, 공수처 필요하면
권력층 수사에 더 엄정해야

‘적폐 세력’의 저항 때문일까. 토요일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우던 ‘태극기 집회’는 참패로 끝났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공화당(0.74%)은 허경영씨의 국가혁명배당금당(0.71%)과 비슷한 득표에 그쳤다. 보수 야당의 발목잡기 탓인가. 미래통합당은 친야 무소속 4명을 합쳐봐야 107명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원래 권력이다. 민주화 운동은 절대권력과 시민들의 투쟁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다를 건 없다. 그런데 현 집권세력은 아직도 피해의식을 안고 산다. 칼자루를 쥐고 반대 세력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탄압’이 아닌 저항권이라 생각한다. ‘영원한 기득권 세력’이라는 허상을 세워놓은 탓이다. 그러니 국정 운영자로서 책임감도 없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사법부다. 의회가 절대권력을 견제하는 선봉이지만 마지막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사법부에 기댈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독립성은 민주주의와 독재의 갈림길이다. 민주주의는 법 앞에 평등하다. 최고 통치자도 법의 지배를 받는다. 최고 권력자가 법 위에 서서 그것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하면 독재가 된다.
 
민주화를 역행하려는 권력자들의 공작은 집요하다. 자신만은 법 위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반대하다 제적당한 유신헌법이 대표적이다. 유신헌법의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이 아니다. 3권 위에 선 ‘영도적 국가원수’다. 국회의원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한다. 국회 권한을 무력화하는 긴급조치권과 국회 해산권도 갖고 있다. 그때의 대통령 위상이 우리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권력자가 그것을 개혁이니 민주화니 효율이라는 말로 미화하면 더 위험하다. 극렬 지지자들이 완장을 차고 설친다. ‘땃벌떼’ ‘백골단’ ‘민중자결단’ ‘용팔이의 각목부대’다. 우마차를 동원한 ‘우의마의(牛意馬意)’가 이제 댓글 부대로 발전했다. 그것을 여론이라 주장한다.
 
정치가 흔들려도 마지막 보루는 사법부다. 부패의 온상이라고 알려진 내각제에서도 일본의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를 검찰이 구속했다. 임명된 권력이라고 선출된 권력의 눈치만 보면 무법천지가 된다. 법원과 검찰이 신뢰를 잃으면 국민이 기댈 언덕이 사라진다.
 
지금 난장판이다. 법원이 진영으로 쪼개지고,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다르다고 고백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검찰총장과 중앙지검장이 서로 엇나간다. 같은 나라 안에서 어떤 검사냐, 판사냐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된다. 재판이 무슨 로또도 아니고, 이런 원칙 없는 사법부가 어디 있나. 법이 정치의 청부업자처럼 됐다.
 
법무부는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검찰총장 권한을 축소하고, 권력층을 내사할 때부터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게 하겠다고 한다. 권력층 비리 수사는 공수처로 넘어간다. 검찰과 공수처, 어디가 권력에서 독립적일까. 누가 권력형 비리를 더 잘 파헤칠까. 고위공직자 비리를 잘 수사하기 위해 공수처를 만드는 것 아닌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는 것 아닌가. 문 대통령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그렇게 당부했다.
 
정말 그런 공수처가 필요하다면 자기에게 엄정해야 한다. 그동안의 권력층 수사는 어떠했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라임금융자산운용…. 살아 있는 권력층을 수사할 때마다 분란이 생겼다. 권력층을 수사하면 ‘적폐’로 찍혔다. 수사를 막는 쪽은 ‘개혁세력’을 자처했다. 검찰과 언론이 함정을 파고, 가짜뉴스를 보도하고, 수사하려는 검사는 쫓아낸다. 개혁 명분으로 내세운 과거의 검찰을 찜쪄먹을 행태다. 그러니 공수처를 만드는 의도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자서전 『운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적의가 가득하다. ‘논두렁 시계’에 분개했다. 그렇다면 그런 수사 관행을 고치는 게 본질이다. 권력의 힘으로 유죄를 무죄로 바꾸는 건 개혁이 아니다. 새로운 적폐다. 함정을 파고, 가짜 녹취록을 흘리며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개혁은 입장이 바뀌어도 유효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는 문제가 없었나. 사법 농단 수사는 과장하지 않았나. 모두 지금 ‘적폐 검사’들이 수사했던 사건들이다. 그들이 정권 초기 여론을 업고 칼춤을 췄는데, 거기에는 무리한 수사가 없었던가. 지금 법무부의 언행은 그 모든 수사를 부정하는 셈이다. 아니면 우리 편은 무죄, 반대편은 유죄인가.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몰려 있다. 영도적 국가원수급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쯤은 할 수 없는 일로 남겨놓아야 한다. 수사하고, 재판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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