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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시각각] ‘예정된 전쟁’이 시작됐건만

중앙일보 2020.07.28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미국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펼쳐진 가운데 미·중 갈등이 총영사관 상호 폐쇄 사태로 격화하는 상황을 보면서 4년 전 베이징 특파원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많은 중국인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자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라도 한 것처럼 환영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될 경우 중국 봉쇄 전략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대신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와는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거래를 통해 대립을 회피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랬던 중국인들이 이번에는 누구의 당선을 바랄지 궁금해진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란 게 민주-공화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지금쯤은 다들 깨닫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 운명에 폭풍우 몰려오는데
외교안보라인 재편은 북한 일변도
미·중 극한대립 감안이라도 했나

트럼프 행정부가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을 선제적으로 폐쇄한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중국이 미국에 개설한 제1호 공관이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날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연설도 마찬가지다. 닉슨도서관 앞이란 장소 선택부터가 그랬다. 폼페이오가 중국을 프랑켄슈타인에게 비유한 것은 닉슨의 어록에서 따왔다. ‘핑퐁 외교’에 이은 전격 방중으로 미·중 수교의 길을 닦은 닉슨은 결과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중국 굴기의 주춧돌 하나를 놓은 셈이다. 그런 닉슨이 만년에 자신의 친구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에게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어”라고 고백했다.
 
닉슨 이래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부유해지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이해당사자’가 되고, 언젠가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투키디데스의 함정론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 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이런 믿음을 ‘헛된 미망’이라고 단정했다.
 
앨리슨뿐 아니라 미국 조야의 대다수가 그런 미망에서 깨어난 결과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미·중 갈등이다. 중국은 미국의 예상을 훨씬 초월한 속도로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미국이 기대한 현존 국제질서의 수용이나 정치적 자유의 확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려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더 이상 중국을 제어하기 어려워진다는 절박함이 미국의 잇따른 강경책에서 읽힌다.
 
대선 전략의 측면도 없진 않지만, 설령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대중 강경정책의 기조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2049년 중국 굴기의 완성이란 목표를 내건 시진핑 주석 또한 쉽사리 미국에 약세를 보일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미·중 극한 대립이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것이라 보는 이유다.
 
문제는 이 ‘예정된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운명과도 직결된 퍼펙트 스톰이란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전략과 그에 따라 펼쳐지고 있는 각종 정책들도 미·중 대립이란 변수와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가령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대북정책과 시진핑 주석 방한 추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홍콩 보안법 등을 이유로 대중 봉쇄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날로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진핑 주석 방한의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 외교안보 정책 하나하나가 미·중 갈등과 긴밀히 얽혀 있다.
 
사람 바꾸기에 극히 신중한 스타일인 문재인 대통령이 서훈-박지원-이인영으로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을 재편했다. 누가 봐도 북한 일변도의 진용일 뿐 급변하는 대외 환경을 고려한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북한이 몇 차례 퇴짜를 놓은 대북 특사를 재추진하고, 또 한번 북·미 중재외교에 나서려는 포석일 것이다. 우직하게 가던 길을 가겠다는 집념 말고는 이렇다 할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폭풍우가 바로 눈앞까지 밀려오고 있는데도 눈 깜짝하지 않는 담대함에 박수를 쳐야 할까.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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