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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인터넷 뒤지면 나오는 지식 암기 교육이 ‘좋은 일자리’ 고갈시켰다

중앙일보 2020.07.28 00:19 종합 24면 지면보기

한국은 왜 악성 청년실업에 빠졌는가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비견되는 동양의 이상 사회는 요순시대의 전설 속에 존재했다. 요임금이 하루는 미복을 입고 민정 시찰을 나갔다. 한 노인이 입안 가득 음식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흥겹게 노래하고 있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는데,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라고. 이렇게 요순시대는 배 터지도록 먹을 수 있을 만큼 높은 소득이 제공되는 좋은 일자리를 노년까지 얻을 수 있는 시대였다. 한마디로 요순 유토피아의 요체는 ‘좋은 일자리의 풍요’에 있었다. 체감 실업률이 27%에 육박하면서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 부족으로 좌절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와 대비된다.
 

성장률 낮아지니 좋은 일자리 줄어
그 단면을 드러낸 게 ‘인국공’ 사태
한국은 30년간 인적자본 축적 못해
성장엔진인 인재 키워야 실업 해소

현대적인 의미에서 좋은 일자리는 직업과 상관없이 매년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바람직한 사회는 일자리 질과 상관없이 단지 일자리만 많은 사회가 아니라, 이렇게 소득이 빨리 증가하는 좋은 일자리가 많은 사회다. 좋은 일자리 수는 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성장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성장률이 낮을수록 좋은 일자리는 줄어든다. 한마디로 좋은 일자리와 경제성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1960년대 초 이후 30년은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평균적으로 8~9%씩 뛰는 ‘성장의 황금시대’였다. 8년만 일해도 평균적으로 소득이 두 배가 되는 이 시대에는 거의 모든 일자리가 매년 더 높은 소득을 제공하는 좋은 일자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성장패턴이 급변해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김세직, 2016)에 따라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하는 성장 추락기를 맞이했다. 그 결과 청년들이 취직하고 싶어하는 좋은 일자리도 점점 메말라 왔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 일자리를 놓고 벌어진 첨예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도 결국 현재 우리 사회의 좋은 일자리 고갈 현상에 기인한다. 법칙에 따라 향후 장기성장률이 0%까지 떨어지면 취업인구 2700만의 절반 이상이 실질소득이 매년 줄어드는 일자리에서 일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물적자본 투자로는 성장 회복 못해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추가적인 일자리 충격에 대응해 정부는 재난지원금, 실업부조, 고용유지지원금, 공공일자리 등 구제정책과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단기 대책이 일자리 질과 상관없이 전체 일자리 수를 회복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좋은 일자리 수를 늘릴 수는 없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 공급을 증가시키는 근본적 해결책이 반드시 같이 추진되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의 근원적 해법은 고속성장하던 한국경제가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추락하게 된 원인을 찾아내 빠른 경제성장을 회복하는 방법밖에 없다.
 
합리적 기대이론을 수립하고 노벨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는 한국의 고속성장을 설명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이론을 80년대 말 탄생시켰다. ‘내생적 성장이론’이라 불리는 이 성장이론이 증명한 고도성장의 비결은 한마디로 ‘경제성장의 엔진은 인적자본’이라는 것이다. 인적자본이란 근로자나 기업가가 머릿속에 체화한 지식이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육 등을 통해 점점 더 축적할 수 있다. 이런 인적자본을 국민이 빠르게 축적하면, 기계와 같은 물적자본의 축적도 빨라지고 기술 진보까지 촉진돼 고도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청년실업

청년실업

이러한 현대 경제성장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60년대 이후 30년간 한국이 성장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장의 엔진인 인적자본이 힘차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역으로 지난 30년간의 성장 추락은 인적자본 축적에 정체가 일어나 성장 엔진으로 더는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물적자본 투자에만 성장을 의존하게 되면서, 역대 정부들의 경기부양 정책은 아무 효과도 없이, 장기성장률은 5년에 1%포인트씩 추락해 온 것이다. 따라서 빠른 성장을 다시 회복해 좋은 일자리 공급을 늘릴 근본적 해법은 성장의 엔진인 인적자본을 재가동하는 방법뿐이다.
 
인적자본에는 모방형과 창조형이 있다. 이 중에서 많은 국민이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능력인 ‘창조형 인적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많은 국민이 창조형 인적자본을 축적하면 그중에 스티브 잡스, 제프 베저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같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인재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구현돼 막대한 수요가 창출되면, 생산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고용되어 수많은 좋은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고 성장이 빨라지는 것이다.
  
미국은 ‘창조형 인적자본’ 넘쳐나
 
창조형 인적자본을 장착한 인재 한 명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갖는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은 가위 폭발적이다.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13만7000명의 애플 근로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테슬라에서 일하는 4만8000명이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된 것도 머스크의 창조적 아이디어 덕분이다.
 
결국 좋은 일자리 감소와 성장 추락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 국민의 ‘창조형 인적자본’ 투자를 촉진하는 전방위적 제도 혁신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모든 종류의 창의적 아이디어 생산자의 재산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전 국민 아이디어 등록제’와 등록된 아이디어를 정부가 구매하는 ‘아이디어 공적 구매제도’ 같은 새로운 제도의 고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근로자와 기업가들을 창의성 교육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의 생산자로 거듭나게 하는 ‘창조형 인재 재탄생 프로그램’의 창안도 모색해야 한다. 각급 학교에서의 ‘창조형 수업’으로의 대전환과 창의성을 선발 기준으로 하는 대학입시제도의 창안도 필요하다. 창조형 인적자본에 대한 세율을 낮추고 보조금을 높여 강력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조세제도 혁신도 추진해야 한다.
 
성장 추락에 따라 줄어든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누가 차지할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2030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겉보기 일자리 수만 늘리는 미봉책에 그치지 말고, 모든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공급할 근본적 해결방안을 하루빨리 추진하는 것이 기성세대와 정부에 주어진 엄중한 책무다.
 
컴퓨터 발달이 단순 암기 지식을 무력화
지난 30년의 성장 추락기동안, 한국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입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공교육비 지출이 199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4.7%에서 2010년 7.6%까지 증가해 세계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 되었다. 대학진학률도 1990년 33%에서 2010년 세계 1위인 79%까지 증가했다.
 
막대한 교육 투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적자본의 정체가 일어난 이유는 인적자본의 질적 변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세직·정운찬(2007)에 따르면, 인적자본은 기존 지식이나 기술의 모방을 통해 축적하는 ‘모방형 인적자본’과 새로운 지식·기술을 스스로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능력인 ‘창조형 인적자본’으로 나뉜다.
 
1960년 이후 고도성장기에는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통해 모방형 인적자본을 머릿속에 빠르게 축적해 선진 지식·기술을 체화하고 제품화함으로써, 좋은 일자리를 빠르게 늘리고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이 시기에는 아직 기술 발전단계가 낮았기 때문에 선진국 특허에 걸리지 않고 모방해 쓸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넘쳐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한국이 전산업에 걸쳐 기술 프런티어에 접근하면서 특허로 보호되는 선진기술의 모방이 점점 어렵게 됐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은 기존 지식을 머릿속에 암기 저장할 필요성도 급감시켰다. 이세돌 9단을 격파한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의 발달은 계산능력을 포함한 대졸 수준의 모방형 인적자본 상당 부분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스스로 창출해내는 능력을 키워야만 인적자본의 효율적 축적이 가능한 시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도래했다.
 
그럼에도, 한국경제는 창조형 인적자본으로 성장의 주 엔진을 전환하지 못한 채 지난 30년을 허송세월했다. 암기식·문제풀이식·정답 찾기식 교육과 대학입시의 답습으로,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나오는 온갖 지식을 외우는데 학생들과 청년들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이 낭비됐다. 안타깝게도 온 나라가 엉뚱한 인적자본에 잘못 투자해서 인적자본 성장이 정체돼 버린 것이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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