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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 비핵화 없인 한반도 평화 없다는 대원칙 확고해야

중앙일보 2020.07.28 00:16 종합 23면 지면보기

6·25 전쟁 70주년과 한반도 평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민군 군단별 박격포병 구분대의 포사격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노동신문이 지난 4월 10일 게재했다. 한국의 생존 을 위협하는 북핵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는 힘들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민군 군단별 박격포병 구분대의 포사격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노동신문이 지난 4월 10일 게재했다. 한국의 생존 을 위협하는 북핵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는 힘들다. [노동신문=뉴스1]

올해는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인민군(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침공해 남북한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결국 유엔군과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해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다.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이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는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채 정전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정전 이후 지금까지 제2의 6·25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으니 나름대로 오랜 기간 평화를 유지해 오고 있다고 하겠다.
 

문 대통령, 한국전 70주년 기념사에서 비핵화 언급 안 해
북핵 보유 인정하는 건 ‘굴종적 평화’ 감내하겠다는 의미
‘핵 있는 평화’는 한국도 핵을 보유할 경우에나 가능해
끈질김과 집요함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 지켜내야

인생 70세를 고희(古稀)라고 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의 첫 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에서 유래했다. 남북한이 70년 가까이 전쟁을 하지 않은 것은 드문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전쟁의 부재를 뜻하는 ‘소극적 평화’에 가깝다. 이른바 평화체제가 정착돼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적극적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6·25 전쟁 발발 70주년에 과연 적극적 평화는 가능한지,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경제 앞섰다고 체제 경쟁 끝나지 않아
 
북한은 6·25 전쟁이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1953년 정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국지 도발을 감행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이 소극적 평화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53년 10월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즉 한·미 동맹에 의한 대북 억제 덕분이었다. 한국은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빌려 안보 부담을 덜고 경제 발전에 매진했고, 그 결과 스스로 강병(强兵)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북한의 핵 개발이었다.
 
1968년 11월 과학원 함흥 분원을 방문한 김일성은 개발팀에 “무엇보다 서둘러야만 할 것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이다. 동지들은 하루빨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발해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6·25 전쟁이 미국의 개입으로 실패했으니 앞으로 적화통일에 대비해 미국의 한반도 개입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김일성이 1963년 소련으로부터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1967년 가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1976년 이집트로부터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한 것은 본격적인 미사일 개발의 신호탄이었다. 지금까지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6·25 전쟁 70주년 기념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비핵화란 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6·25 전쟁 70주년 기념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비핵화란 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6·25 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남북 간 체제 경쟁은 오래전에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는다”고 해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북한을 압도하기 때문에 체제경쟁이 끝났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리고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다”라고 해 대한민국이 이룩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북한에 확산시키기보다는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라는 문 대통령의 기념사 문구가 이를 재확인한다.
 
그러나 한국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몇십 배 더 잘살게 되었다고 체제 경쟁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70년간에 걸쳐 이룩한 경제 발전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돼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로 한국과 미국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중국에 대해 ‘3불(사드 추가 불배치,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 불가입,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 입장을 표명해 놨으니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억제 수단을 강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유감스럽게도 문 대통령의 6·25 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전쟁 70주년 맞아 ‘적극적 평화’가 갈 길
 
앞으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평화의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남북한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북한 핵 문제 해결은 먼 훗날로 미루고, 평화 공존을 위해 6·25 전쟁 종전 선언을 하고 북한을 지원하며 경제 협력 등 남북 협력 사업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에 대한 지원은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에 한정하고, 비핵화를 이루지 않고는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자세로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한·미 동맹을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안은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고, 한·미 동맹을 무력화하는 것이며, 핵을 가진 북한의 눈치를 보며 ‘굴종적 평화’를 감내하는 길이다. 비핵화를 견인하지 못하는 종전 선언은 한·미 동맹을 약화해 소극적 평화마저 위협하게 된다.
 
결국 두 번째 길로 나가야 한다. 북한에 대화의 문을 걸어 잠글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없이 한반도에 적극적 평화가 도래할 수 없다는 대전제를 견지해야 한다. ‘핵 있는 평화’는 북한과 더불어 한국도 핵을 보유할 경우에나 가능한 선택지다. 그렇지 않다면 남북한 체제 경쟁을 지속해야 하며, 끈질김과 집요함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내야 한다. 이것이 6·25 전쟁 70주년에 우리가 재차 확인해야 할 대북 정책 기조이다.
 
북한이 비핵화하더라도 미국 핵우산은 유지돼야
적극적 평화는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돼 전쟁 발발 가능성이 최소화한 상태를 가리킨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6·25 전쟁의 유산으로 형성된 불안정한 정전 상태와 군사적 대립 구도를 청산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6·25 전쟁 정전협정을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만 가지고는 평화체제 구축이 불가능하다. 수차례의 평화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대표적 사례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남북한 군비 통제, 미·북 및 일·북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과 보장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은 핵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를 의미한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도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옳지 않다. 핵우산은 미국이 핵을 갖지 않은 동맹국들을 핵을 가진 적대세력의 핵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냉전 시기부터 존재했다.  
 
90년대 초 북한 핵 문제가 본격화하기 훨씬 전부터 핵보유국인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한국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됐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핵보유국으로 남아있고 한·미 동맹이 지속하는 한 핵우산이 철폐될 가능성은 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핵우산은 별개 문제이다.
 
또 한 가지 쟁점은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종전 선언을 하는 방안이다. 평화협정이 법적 조치라면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국제 관계에서 법적 구속력과 정치적 역학 관계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의미를 지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종전 선언으로 북한이 핵을 어디까지 포기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의 미미한 비핵화 조치에 대한 보상 조치로 유엔 안보리 핵심 제재가 해제된다면 북한을 마지막 단계까지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져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는 물 건너가게 된다. 종전 선언에 따른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에 관한 논쟁도 불붙게 될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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