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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없다"→"위조"→"얘긴 했다"…박지원 말바뀐 '北 30억달러'

중앙일보 2020.07.28 00:02 종합 2면 지면보기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왼쪽)가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왼쪽)가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대북 송금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됐다. 미래통합당이 2000년 4월 8일자로 작성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라는 문건을 공개하면서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 문건이 당시 ‘남북합의서’의 이면합의서라는 취지로 “남측이 북측에 모두 30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위조된 것”이라고 반박하며 공방을 벌였다.
 

주호영, 2000년 경협합의서 추궁
박, 처음엔 “기억 없다” 나중엔 “위조”
박, 비공개 질의선 “20억~30억달러
북과 민간투자 얘기한 적은 있다”

“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특활비 뇌물죄 억울한 측면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질의에서 ‘남북합의서’를 먼저 제시했다. 남북합의서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 방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래엔 2000년 4월 8일이란 날짜와 함께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 후보자와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서명이 담겼다.
 
2000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들고 질의하는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2000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들고 질의하는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 [연합뉴스]

▶주 원내대표=“이런 문건 본 적 있습니까?”
 
▶박 후보자=“제가 서명했습니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4·8 합의서입니다.”
 
박 후보자가 남북합의서의 존재를 확인하자, 주 원내대표는 이어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제시했다. 이 문건에는 남과 북의 합의 사항으로 ‘남측은 민족적 협력과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해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 25억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사회간접부문에 제공한다’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5억딸라분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다. 달러가 북한식 표기 ‘딸라’로 표기돼 있다. 이 문서 아래에도 박 후보자와 송 부위원장의 서명이 있었다.
 
▶주=“‘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한번 보십시오. 이런 문건 본 적 있습니까?”
 
▶박=“그건 제가 서명했습니까?”
 
▶주=“남북합의서와 필체와 문구가 똑같고 박 후보자의 사인도 똑같습니다. 이 문건에 직접 사인하신 적 있습니까.”
 
▶박=“그런 것 없습니다. 제가 한 적 없습니다.”
 
이날 미래통합당은 2000년 4월 8일자로 작성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왼쪽)를 공개했다. 북한에 25억 달러의 투자 및 차관(위쪽 빨간 네모)과 5억 달러(아래쪽 빨간 네모)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 후보자는 이 문건을 위조라고 주장하고 ‘남북합의서’(오른쪽)의 서명만 인정했다. [연합뉴스]

이날 미래통합당은 2000년 4월 8일자로 작성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왼쪽)를 공개했다. 북한에 25억 달러의 투자 및 차관(위쪽 빨간 네모)과 5억 달러(아래쪽 빨간 네모)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 후보자는 이 문건을 위조라고 주장하고 ‘남북합의서’(오른쪽)의 서명만 인정했다. [연합뉴스]

주 원내대표가 재차 추궁하자 박 후보자는 “저는 그렇게 사인한 적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지만, 오후 질의에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박 후보자는 “저를 모함하기 위해서, 김대중 정부를 모함하기 위해서 (서명을) 위조했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문서 복사본을 주면 검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도 했다. 전해철 정보위원장이 ‘합의서를 줄 테니 법적 절차를 밟으라’며 중재에 나서자, 박 후보자는 “자신 있으면 (통합당에) 밖에서 공식적으로 하라고 해라. 면책특권을 쓰지 말고. 그럼 제가 고소하겠다”고 했다.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수사 당시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박 후보자는 “만약 서명이 사실이라면 특검에서 덮어줄 리가 없다”고도 했다.  
 
박 후보자는 그러나 공개 청문회에 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청문회에서 “북한 송호경과 구두로 ‘현금지원은 안 되지만 ADB(아시아개발은행),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등 민간기업 투자 통해서 20억~30억불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과 유사한 맥락의 대화는 있었다는 취지다. 통합당의 한 청문위원은 “박 후보자는 문서를 남기고 사인한 그런 건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대북 송금 특검 수사 결과는 남북 정상회담 성사와 현대의 대북사업 대가로 현대그룹이 5억 달러(4억5000만 달러+현물 5000만 달러)를 북한에 보냈으며 정부는 현대그룹의 대출과 송금을 도왔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문건이 진짜라면 대북 송금의 주체가 정부가 되고 액수도 30억 달러로 늘어나는 셈이다.
 
박 후보자는 국정원 운영과 관련해서는 “정치인 박지원은 지우고 엄격한 국가공무원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약속드린다”며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않고 국정원 본연의 업무와 개혁에 매진하겠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제가 된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관련해서는 “국민의 정부에선 특활비를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태경 통합당 의원이 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사례에 대해 묻자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은 특활비를 청와대로 보내지 않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보내라니까 보냈고 뇌물죄로 고생하고 있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박 후보자는 “우리의 주적은 누구냐”는 주 원내대표의 질문에 “대한민국에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어떠한 국가도 우리의 주적”이라고 답했다. 질문이 거듭되자 “왜 그걸 자꾸 묻느냐”고 반문한 뒤 “말씀드렸는데 그걸 기억 못 합니까. (북한이) 주적이라니까요. 왜, 한 백 번 여기에서 소리 지를까요? 광화문 나가서 내가…”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학적 위조 의혹엔 "단국대에 물어보라”  
 
단국대 편·입학 및 졸업 과정에서 불거진 학적 위조 의혹에 대해서는 “55년 전의 학칙을 어떻게 기억하나. 단국대에 물어보라”고 했고, 5000만원 고액 후원 의혹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친구라서 5000만원을 빌렸고, 재산신고도 했다”며 “갚든 안 갚든 저와 제 친구 사이의 문제”라고 말했다.
 
성폭행 혐의를 받는 20대 북한 이탈 주민이 최근 월북한 사건과 관련해 박 후보자는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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