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104세 별세

중앙일보 2020.07.27 17:43
26일(현지시간) 104세로 별세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사진은 2011년 그가 프랑스 파리 세자르영화제에 참석하는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104세로 별세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사진은 2011년 그가 프랑스 파리 세자르영화제에 참석하는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할리우드 황금기’ 여배우 중 마지막 별이 졌다. 고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세. AP통신‧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드 하빌랜드의 홍보 담당자는 드 하빌랜드가 평화롭게 자연사했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황금기 은막 스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별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그는 주인공 스칼렛(비비안 리)이 짝사랑한 청년 애슐리와 결혼해 스칼렛의 질투를 한몸에 받았던 수줍고 온화한 멜라니였다. 멜라니가 남북전쟁 중 고통스레 출산하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변신을 거듭한 천의 얼굴의 배우였다.
 

변신 거듭…오스카 여우주연상 2관왕

1950년 당시 44세였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영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모습이다. [AP=연합뉴스]

1950년 당시 44세였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영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모습이다. [AP=연합뉴스]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3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열아홉이 되던 1935년 거물 연출자 막스 라인하르트에게 발탁돼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셰익스피어 극이 토대인 영화에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반항적인 딸 허미아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아카데미상 후보도 다섯 차례나 올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첫 후보 호명. 제1차‧2차 세계대전을 관통한 영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론 1947년과 1950년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만큼 좋아한다고 밝힌 작품 중엔 아나톨 리트박 감독의 ‘스네이크 핏’이 있다. 정신병원에 보내진 어린 신부 역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비비안 리(왼쪽부터).[AFP=연합뉴스]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비비안 리(왼쪽부터).[AFP=연합뉴스]

 

동생 폰테인도 오스카상…앙숙 자매 악명

여동생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피션’에 출연한 배우 조앤 폰테인이다. 자매가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지만, 경쟁심 탓에 사이가 틀어져 앙숙 스타 자매로 악명 높기도 했다. 1942년엔 드 하빌랜드(‘새벽을 잡아라’)와 폰테인(‘서스피션’)이 나란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동생 폰테인이 그해 트로피를 가져갔다. 1975년 어머니가 작고한 후 자매는 말도 섞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2013년 12월 동생 폰테인이 96세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드 하빌랜드는 “너무 슬프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미국‧프랑스 시민권이 있었지만 1950년대 초반 이후엔 파리에서 머물러왔다. 2008년엔 미국 정부에게서 국가예술 훈장, 2010년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맞서 배우 권리 높여  

2008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정부 국가 예술 훈장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정부 국가 예술 훈장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드 하빌랜드는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에 강단 있게 맞서기도 했다. 워너브러더스가 1943년 계약 기간 종료 이후에도 전속 계약을 풀어주지 않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년 반여 끈질긴 공방 끝에 승소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이 어떤 제작사도 배우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며 드 하빌랜드의 손을 들어준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의 법’으로 불리게 됐다.  
 
할리우드에서도 트위터를 통해 추도사가 물결쳤다.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영화사의 위대한 아이콘”이라고 추모했다. 배우 미아 패로는 “모든 이유를 넘어 우리와 훨씬 더 오래 함께하길 소원했다”며 “영화에서 그는 기가 막히게 멋졌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잊을 수 없는 멜라니였다”고 적었다. 
 
2009년 자신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화성으로 가는 30초’에 대한 EMI와 소송에서 ‘드 하빌랜드 법’ 판례를 적용했던 배우 겸 뮤지션 자레드 레토는 “그의 용기에 감사하고 그의 선택이 나와 내 동생이 창의적인 자유를 위해 싸울 기회를 줬다”고 애도했다.  
할리우드 고전 스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별세 소식에 배우 미아 패로가 자신의 트위터에 쓴 추도사. [트위터 캡처]

할리우드 고전 스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별세 소식에 배우 미아 패로가 자신의 트위터에 쓴 추도사. [트위터 캡처]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