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응원과 박수 되찾은 야구장, 팬들의 가치와 의무

중앙일보 2020.07.27 16:31
 
관중 입장이 허용된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경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관중 입장이 허용된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경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 한화 이글스 노태형(25)은 지난달 13일 '난세 영웅'으로 거듭났다. 대전 두산 베어스전 9회말 2사 1·3루서 끝내기 안타를 쳤다. 한화는 그 안타로 악몽 같던 18연패에 마침표를 찍었다.  
 
노태형은 2014년 신인 2차 10라운드에 마지막 순번으로 지명됐다. 입단 7년째인 올해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그는 다음날 전화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한화팬에게 내 이름을 꼭 알리고 싶었다. 이런 날이 오다니 믿을 수 없다"고 감격했다.  
 
누군가는 데뷔와 동시에 주인공이 된다. 노태형은 그 꿈을 너무 오래 꿨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팬들 응원 속에 뛰고픈 갈증이 있다. 지난 6년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앞으로 더 잘해서 한화팬 기억에 더 깊이 남고 싶다"고 토로했다.  
 
#2 퓨쳐스(2군)리그 선수들은 찜질방을 싫어한다. 한여름 낮경기에서 경험하는 뙤약볕이 그들에게는 이미 불가마다. 야구장 라이트를 켜면 하루에 전기료 100만원이 나온다. 무조건 해가 지기 전에 경기를 마쳐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2군의 가장 큰 서러움으로 '팬 없이 경기하는 것'을 꼽는다. 2군 올스타전 MVP 출신인 롯데 자이언츠 전준우는 "2군에서는 홈런을 쳐도 환호해줄 사람이 없다. 실책을 해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다. 가끔은 팬들의 욕조차도 그리웠다"고 기억했다.  
 
 한화의 18연패를 끊는 끝내기 안타를 친 뒤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는 노태형. 연합뉴스

한화의 18연패를 끊는 끝내기 안타를 친 뒤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는 노태형. 연합뉴스

 
#3 프로야구 선수에게 팬은 이런 의미다. 모든 가치의 가장 위에 있다. 일부 선수가 가끔 '팬서비스 불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산다. 조성환 두산 코치는 2010년 롯데 소속으로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최고의 팬 이학용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열정을 잊지 않고 열심히 뛰겠다"는 수상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팬은 유명 선수 못지 않은 감동을 안긴다. KIA 타이거즈가 광주 무등야구장을 홈으로 쓰던 시절, 70대 후반 나승남씨는 '삼진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상대팀 타자에게 "삼진! 삼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우렁찼다. 여든이 넘은 이모씨는 비가 오는 날도 부산 사직구장 1루 관중석을 떠나지 않았다. 정장을 차려 입고 30년간 맨앞자리에 앉아 최동원의 피칭과 이대호의 홈런을 모두 지켜봤다.야구장을 자주 찾는 젊은 팬들은 이씨를 '아버지'라 불렀다.
 
#4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리고 그 이전에 '기억'의 스포츠다. 좋은 기록을 남긴 선수보다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가 더 오래 기억된다. 그런 의미에서 26일은 올 시즌 KBO리그 최고의 날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관중석 출입구가 열렸다. 전체 수용인원의 10%만 입장 기회를 얻었지만, 모처럼 야구장이 팬들의 박수와 응원으로 뒤덮였다. 선수도, 구단도 신이 나 "이제야 진짜 시즌이 시작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야구장의 주인인 팬들과 함께라 모두가 행복했던 잔칫날. 다만 마스크를 벗고 큰 소리로 단체 응원을 펼친 일부 팬은 옥에 티로 남았다. 응원단장이 수 차례 "육성 응원을 자제해달라"고 권고해도, 흥에 겨운 그들은 흘려들었다. 이러다 어렵게 되찾은 야구장의 활기를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