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재현 논설위원이 간다] 대권 후보 반열 올랐지만 조직과 후배 희생 컸다

중앙일보 2020.07.27 00:43 종합 23면 지면보기

임기 반환점 돈 윤석열 검찰총장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앞 도로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 및 반대 세력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 총장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역대 검찰총장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앞 도로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 및 반대 세력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 총장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역대 검찰총장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우여곡절 끝에 임기 후반기를 맞았다. 하지만 조만간 있을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들에 대한 인사는 그의 ‘고립(孤立)’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관례와는 달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27일부터 시작될 그의 남은 1년도 결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을 뒤덮고 있는 각종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는 문재인 정부의 법치주의를 둘러싼 국민들의 상반된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권과 검찰총장이 대립각을 세우고, 여기에 일부 검찰 간부들의 항명성 대응이 이어지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검찰 조직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난과 찬사가 뒤섞인 윤 총장에 대한 평가와 향후 검찰 기상도를 예상해본다.
 

주변 만류로 사퇴하진 않겠지만
조직내 지지세력 적어 리더십 우려
공정한 검찰 보여주는 노력 필요
정치 의식하지 않고 임기 끝내길

가장 큰 관심사는 윤 총장이 자리를 박차고 사표를 던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누구 좋으라고 사표를 내냐”는 윤 총장의 간접 발언은 이미 보도가 됐다. 최근 윤 총장과 접촉을 했다는 한 인사의 얘기. “윤 총장이 ‘나도 그만두고 싶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런 수모를 당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술도 끊고 체중도 많이 빠졌다. 그러나 그에게 조언을 하는 전직 검찰 간부 등 법조계 인사들은 그의 사퇴를 강력히 만류하고 있다. 윤 총장이 믿고 의지하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과 박영수 국정농단사건 특별검사 등도 같은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앞 도로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 및 반대 세력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 총장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역대 검찰총장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앞 도로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 및 반대 세력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 총장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역대 검찰총장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먼저 “검찰 조직을 위해서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선배 검사들의 이런 주문에 윤 총장도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았던 윤 총장에게 이 정권이 가혹하게 구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쉽게 나갈 경우 차기 검찰총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 대외적 이미지는 물론 검찰 내부의 리더십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정치권에 예속되는 결과는 초래한다는 논리다.
 
윤 총장이 사표를 낼 경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1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현직 검찰 간부는 “설마 윤 총장이 수사대상이 될까 하는 회의적 시각이 퍼져있지만 이 정부 내에서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집념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조국 사건으로 기소된 최강욱 의원과 여전히 조씨를 감싸고 있는 김남국 의원,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윤 총장 처가와 관련된 문건을 열람한 추 장관의 행위도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로 봐야 한다. 윤 총장 본인도 이런 문제 때문에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가 한편으로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모순적 심리 상태에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두 번째 관심사는 윤 총장을 지지하는 검찰 내부 세력들이 생각 밖으로 적은 상황에서 ‘식물총장’의 지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검사들도 추 장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추 장관이 친정부 성향의 검사들을 중용하고, 검찰 조직을 함부로 대하는 듯한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초의 생각과는 달리 조직적 반발은 크지 않다. 한때 일각에서 나왔던 ‘검난(檢亂)이 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기우에 불과한 분위기다.
 
왜 그럴까.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수위원이 그 중심에 있다. 윤 총장이 간여됐던 검찰 인사가 공정하지 않았고, 수사도 우격다짐 격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가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한 위원이다. 선민의식이 잠재해 있는 2200여명의 검사 중 1~2% 정도만 윤 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돼 인사 혜택을 받았다는 불만이 있었다. 한 위원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장으로 임명될 때 그의 동기들은 겨우 검사장 승진 후보군에 포함됐거나 일부는 부장검사급이었다.
 
윤석열. [연합뉴스]

윤석열. [연합뉴스]

윤 총장과 한 위원이 보조를 맞춰 진행했던 수사도 무리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말하는 사법농단 수사다. 한 위원은 자신에 대한 수사를 놓고 ‘광풍의 시대’를 말했다. 그러나 한 판사는 “그의 피를 토하는 듯한 연설의 상당 부분은 사법 농단세력으로 분류됐던 법관들이 하고 싶었던 언어”라고 말했다. 법조계 전반에서 느끼는 윤 총장에 대한 거부감이 섞인 애증을 보여준다.
 
윤 총장은 남은 임기를 어떻게 보낼까. 통상 임기 만료 3개월 전에 후임자가 정해진 점을 고려할 때 그에겐 8~9개월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대형 수사를 하기엔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랐던 전직 검사는 “검찰총장의 가장 큰 덕목은 공정함이 아닐까 한다.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공정함을 보여줄 수 있도록 자기절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지지율 20%의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지만 검찰 조직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그를 믿고 따랐던 후배 검사들도 경력에 상당한 타격을 받아 진퇴를 고민할 처지에 놓였다.
 
윤 총장이 더욱더 정치권과 거리를 둬야 하는 이유다. 전직 검찰총장의 얘기. “윤 총장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율은 허상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은 그가 검찰총장직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정작 정치판으로 나가면 이용만 당할 것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황교안 전 총리가 대권후보로 나섰다가 망신을 당한 것을 비유하고 있다.
 
한때 윤 총장을 열렬히 지지했던 한 후배 검사의 카톡 내용이 최근 반전되고 있는 법조계 분위기를 보여준다. “윤 총장은 최악의 검찰총장의 길을 가고 있다. 리더십 발휘도 못 하고, 전략적 마인드도 부족하다. 그저 전투에 나가 열심히 싸움질하는 장수의 그릇 밖에 안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윤 총장의 최근 행보는 “그동안 수사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한다. 정권 초기 윤 총장과 그의 후배들이 적폐 척결이란 명분으로 휘둘러댔던 칼날이 결국 자신들에게 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가 탈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 정치적 중립 훼손은 민주주의 막는 암적 요소”
헌법재판소는 1997년 검찰총장 퇴임 후 공직제한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민주주의와 검찰의 관계를 잠깐 설명했다. 조승형 당시 재판관은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행위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지 못한 채 출발점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분별없는 집권자와 집권층의 장기집권욕 ▶권력 편에 서서 맡겨진 직분을 공정하게 수행하지 않는 정치인·언론인·공직자들의 반국민적 행동양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다 독재와 군부정권 시대 때 검찰총장은 무소신, 직무유기,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을 거리낌 없이 자행해 검찰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국민 일반으로 하여금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비하하게 했고,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제도 창설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헌재의 당시 결정을 집권층은 집권층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총장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며 집권층이 간섭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또 다른 행위이다.  
 
이 정부 들어 벼락출세한 국회의원, 전직 법무부 간부들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내놓는 ‘아무 말 잔치’가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회에서 제대로 된 답변은 하지 않고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 20여년 전 헌재 결정문까지 다시 꺼내야 하는 게 우리의 답답한 처지다.
 
박재현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