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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선] 천박한 집주인도 국민이다

중앙일보 2020.07.27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에디터

김승현 정치에디터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다니던 최불암씨가 게임 광고에 등장했다. 신작 MMORPG(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를 발음이 비슷한 “애매모호하지”로 설명하는 아재 개그를 구사하더니 ‘파’하고 웃는다. 게임 한류의 위력이 실감 난다. 아날로그의 아이콘 최불암 선생님마저 모셔가다니. 게임에 빠진 자녀와 실랑이하던 부모들은 ‘선생님이 왜 거기서 나와’라며 비명을 지르고 싶을 것이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를 꿰뚫은 영리한 상상력은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책임 떠넘기기식 부동산 정책에
‘집주인도 국민이다’ 피켓 시위
자본과 시장 꿰뚫는 상상력 절실

장난감 같던 전기자동차를 명품 수퍼카로 격상시킨 일론 머스크야말로 상상력에서는 우주 최강이다. 도로를 달리는 테슬라를 볼 때마다 눈앞에 미래가 왔음을 느낀다. 그는 우리 현실을 영화처럼 만들어 준다. 우주여행, 화성 식민지 건설, 지구의 멸망 등 상식을 깨는 상상과 공포를 천착하고 행동한다. 미국의 우주 영웅들이 지구의 현실에 그 돈을 쓰라고 평가절하하자 49세의 천재 기업가는 “매우 슬펐다. 왜냐면 그분들은 나의 영웅들이니까”라며 눈물을 보였다.
 
순수한 열정은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로 표출됐다.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인간을 우주에 보내는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발사체를 회수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감하는 신기술이 성공의 밑바탕이었다. 세상이 마블 영화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비교할 때, 만화가 아닌 현실을 밟고 서 있었던 것이다. 머스크는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기술이 저절로 발전해 나간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오직 많은 사람이 피땀 흘려 노력했을 때 비로소 진보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다양한 무한도전을 접하다 보면 부동산과 총력전을 펴는 우리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한심함에 숨이 막힌다.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는 어떤 기대도 생기지 않아서다. 시뮬레이션이라곤 해본 적 없는 듯이 대책만 내놓으면 악재에 휘청인다. ‘회심의 카드’로 행정수도 이전까지 튀어나왔다. 위헌 결정을 돌파하고 부동산 가격 안정과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요량인 것 같은데, 다음 수는 막연하다. 헌법재판소를 설득하겠다는 것인지, 개헌을 한다는 것인지, 그냥 서울 집값 잡으려는 수작인 건지, 아니면 국면전환용 말잔치인 것인지 누구에게도 계획은 없는 듯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처음 이 문제를 공론화할 때까지 정세균 국무총리와 구체적인 상의는 없었다고 한다. 대정부 질문에서는 “여야 합의와 국민 공감대를 거쳐도 될까 말까 한데 충분한 준비와 검토도 없이 불쑥 제기한다”(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는 지적이 나왔고, 정 총리는 “국회 세종시 분원이 현실적”이라고 수습했다.
 
이래저래 고개가 갸웃거려지던 차에 이해찬 대표가 민주당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래를 깨닫게 해줬다. 지난 24일 세종시청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그는 “우리는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서 단가 얼마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지역구였던 세종시는 파리의 센 강 주변처럼 문화적으로 성숙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면서다. 천년 고도이자 천만 메트로폴리스는 졸지에 조커와 배트맨이 출몰하는 고담 시티로 전락했다.
 
시민들은 “천박한 도시를 만든 게 누구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인생을 집 한 채에 바친 시민을 ‘투기꾼’으로 몰더니 이젠 불가촉천민쯤으로 여기는 것인가. 세금 폭탄 무서워 ‘집주인도 국민이다’는 피켓을 든 거리의 시민은 좀비라 부를 텐가. ‘천박’이란 수식어의 제자리는 멀미나는 롤러코스터 부동산 대책, 세종시 아파트값마저 폭등시킨 가벼운 입놀림 아니던가.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데 이번에도 불길하다. ‘소득 주도 성장’은 처참한 경제성장률로, ‘평화가 경제’라는 외침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메아리로 돌아왔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겠다”는 허풍을 자신감으로 믿은 국민만 바보였다.
 
이제 176석의 힘을 가졌다고 갑자기 일론 머스크가 된 것처럼 굴지 않기를 바란다. 청년 누구나 아파트를 가질 수 있고, 지방에도 행복이 넘치는 나라는 민주당만의 소망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원하는 대전제를 자신의 전유물로 여기니 ‘상상 이하의 상상력’에 허덕이는 것이다.
 
청년과 서민의 분노를 ‘천박한’ 집주인 만의 책임으로 돌리는 엉터리 작동을 멈추시라. 지금은 게임업계의 영민함을 ‘디지털 뉴딜’에, 머스크의 진솔한 천재성을 ‘그린 뉴딜’에 탑재해야 할 때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천박한 유체이탈 화법’이란 오명을 쓰는 것도 한순간이다.
 
김승현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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