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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중국 ‘국주(國酒)’ 마오타이…인민일보 한마디에 ‘부패주(酒)’로 추락

중앙일보 2020.07.27 00:35 종합 27면 지면보기
 
브로커인 '황뉴'가 사들인 마오타이들. [중국 펑파이 캡쳐]

브로커인 '황뉴'가 사들인 마오타이들. [중국 펑파이 캡쳐]

 

[박성훈의 차이나 시그널]
브로커 '황뉴' 떼돈 버는 기형적 유통 구조
전 회장 일가, 수백억 대 부당 수익
정부 고위 관리, 비리 눈감고 유착해와
마오타이 처단 당 의중 읽히자 주가 폭락

일주일에 10번 이상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있다. 직업이 뭘까. ①사장 ②연예인 ③스튜어디스. 전부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이는 황뉴(黄牛)다. '누런 소'로 직역되지만, 중국어로 ‘브로커’란 속어다. ‘마오타이 황뉴’가 대표적이다. 무슨 소릴까.

 

마오타이주(茅臺酒)는 수수(고량)를 원료로 한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특산 증류주다. 1972년 중국과 처음 수교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접대할 때 이 술이 나왔다. 각종 고급술이 넘쳐나는 중국에서도 대표 격인 최고급 주다.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 국주 문화성. 마오타이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바이두 캡쳐]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 국주 문화성. 마오타이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바이두 캡쳐]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鎮) 국주(国酒) 문화성. 중국 내에선 마오타이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마오타이 대표 상품은 53도짜리 페이톈(飛天) 500mL. 26일 기준 중국 인터넷에선 2699위안(약 46만2000원)에 팔고 있다. 그런데 현지 판매가는 병당 1499위안(약 25만6000원). 시중보다 20만 원 이상 싸다. 비행기 표를 소지한 사람에 한해 1인당 2병까지 구입 가능하다. 마오타이 국제 호텔이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건 하루 숙박비 800위안(17만원)을 건지고도 남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 국주문화성 판매점 앞에 마오타이를 사려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중국 경제도보 캡쳐]

지난해 12월 구이저우성 마오타이진 국주문화성 판매점 앞에 마오타이를 사려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중국 경제도보 캡쳐]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해보면 마오타이진은 중국 전역에서 온 ‘황뉴’들의 천국이다. 평일 오전 9시, 판매점은 문을 열기도 전부터 술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돈을 주고 마오타이를 사서 나오면 앞에 황뉴들이 도열해 있다. 1700~1800위안을 부른다고 한다. 흥정을 안 하려는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서 팔고 가는 사람도 있다. 가격만 맞으면 그 자리에서 1000위안(17만원) 이상을 남길 수 있다. 
 
황뉴들은 관광객에 술을 되사는 것으론 모자라 타지에서 나이가 든 노인들을 관광객으로 ‘모셔오는’ 일이 다반사다. 국내 항공편 비용은 가까운 지역의 경우 300~400위안(5만~7만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수고비를 주더라도 한 병당 십만 원 이상 남는 장사다.
 
가령 20명을 데려오면 하루 400만원은 족히 남는 이권 사업이 된다. 이들이 한 달에 1억 이상 번다는 말이 허풍이 아닌 셈이다.
 

마오타이 대표 상품인 53도 페이톈 500ml. 26일 기준 중국 인터넷에선 2699위안(약 46만 2000원)에 팔고 있다. [타오바오 캡쳐]

마오타이 대표 상품인 53도 페이톈 500ml. 26일 기준 중국 인터넷에선 2699위안(약 46만 2000원)에 팔고 있다. [타오바오 캡쳐]

 
지난해 마오타이사는 1499위안짜리 페이톈 마오타이 3만1000톤, 743만여 병을 생산했다. 올해는 3500톤을 더 늘려 생산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중에서 마오타이의 가격은 내려가기는커녕 더 올라가고 있다.
 
중국 경제도보(經濟導報)는 “절반 이상 ‘황뉴’의 손을 거쳐 더 비싼 가격에 되팔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투기 때문에 중개업자만 이익을 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돈이 모이는 곳에 부패는 필연이다. 마오타이 내부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5월 위안런궈(元仁國) 마오타이 전 회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3명의 전·현직 임원, 경영진 가족, 구이저우성 간부들이 잇따라 체포됐다.
 
 2010년 방한한 중국 마오타이 위안런궈 회장이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마오타이주를 홍보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방한한 중국 마오타이 위안런궈 회장이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마오타이주를 홍보하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 검찰보에 의하면 위안 회장의 부인, 딸, 친족들이 수억 위안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장의 운전기사와 가정부까지 마오타이를 팔아 불법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구이저우성 왕샤오광(王曉光) 부성장은 위안 회장을 통해 4개 마오타이 판매점의 경영권을 받은 뒤 7년간 4000만 위안(68억 원)을 챙겼다. 
 
검찰 조사 당시 왕 부성장의 집 안에선 4000여 병의 마오타이가 발견됐으며, 검찰은 그가 체포를 피하기 위해 마오타이를 하수구에 쏟아 버리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구이저우성 기율위는 지난 13일 마오타이 부회장 장지아치(張家齊)와 마오타이 당조직 리밍찬(李明燦) 부위원장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마오타이사의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건 회사가 지방정부에 내는 막대한 세금과도 관련이 있다. 펑파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마오타이사가 낸 세금은 380억 위안(6조4600억 원)으로, 구이저우성 조세 수입의 14%에 달했다. 재정 수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제대로 감독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중국 최고급주인 국주 마오타이주. [중앙포토]

중국 최고급주인 국주 마오타이주. [중앙포토]

 
마오타이를 둘러싼 비리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음에도 지난 4월 초 시가 총액은 1조4000억 위안(약 243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
 
제동이 걸린 건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웨이신(중국식 카카오톡)에 새로 만든 작은 매체를 통해서였다. 이름은 ‘학습소조’(學習小組). 글자 그대로 하면 ‘공부하는 조직’이란 뜻이다. 학습소조는 웨이신에 마오타이가 ‘부패주’에 불과하다는 통렬한 비판 글을 지난 15일 올린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과거 언론과 검찰에서 알렸던 내용이다.
 
지난 15일 인민일보 웨이신 매체인 '학습소조'에 올라온 마오타이 비방 기사(위). 전날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책 발행에 관한 소식이 올라왔다. [웨이신 캡쳐]

지난 15일 인민일보 웨이신 매체인 '학습소조'에 올라온 마오타이 비방 기사(위). 전날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책 발행에 관한 소식이 올라왔다. [웨이신 캡쳐]

 
그런데 파괴력이 컸던 이유는 따로 있다. ‘학습소조’의 두 번째 글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습(习ㆍ習의 중국 간자체)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성과 같다. 북한은 시 주석을 가리켜 한자 발음대로 ‘습근평’이라고 칭한다.

 

제목을 다시 보자. 의미가 달라진다. ‘학습소조’는 그냥 공부하는 조직이나 매체가 아니다. ‘시진핑을 연구하고 그의 사상을 알리는 조직이었다. 실제 ‘소조’에 올라와 있는 내용 대부분은 시 주석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마오타이의 비리가 올라왔으니 공산당 지도부, 돈 있는 기업가, 마오타이 주식을 사뒀다가 재미를 본 주주들, 언론까지 모두 화들짝 놀랐다. ‘시 주석의 의중이 반영되고 있다. 마오타이는 부패 기업으로 낙인 찍혔다’고 본 셈이다.
 
하루도 안 돼 중국 상하이 증시 대장주였던 마오타이의 주가는 7.9% 빠졌다. 시가 총액으로 30조원 규모다. 1억 병의 마오타이가 공중 분해됐다고 말하는 이유다. 법치에 의해 기업이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당에 의해 치명타를 입는 구조, 마오타이의 폭락은 중국 정치·경제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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