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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이 오케스트라를 객석에 앉게 한 이유는

중앙일보 2020.07.27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독특한 자리배치로 열린 공연. [사진 평창대관령음악제]

2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독특한 자리배치로 열린 공연. [사진 평창대관령음악제]

25일 저녁 강원도 평창의 공연장인 알펜시아 뮤직텐트. 원래 객석이 있던 자리 중 일부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단원들은 모두 원래의 무대를 보고 앉았다. 이 무대 위 바닥에는 청중 40여 명이 앉아 음악을 들었다. 나머지 청중 300여 명은 원래 객석에 앉았다. 본래 1300석인 공연장 뮤직텐트에 이렇게 청중 40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평창대관령음악제 베토벤 ‘전원’
무대 아래 청중 입체적으로 즐겨

코로나19로 전세계의 여름 음악제 대부분이 취소된 중에 올해 17회째인 평창대관령음악제는 22일 막을 올렸다. 25일은 음악제의 메인 오케스트라인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PFO)’가 처음으로 무대에 선, 사실상의 개막 무대였다. 연주곡은 베토벤의 여섯번째 교향곡인 ‘전원’. 코로나 기간의 첫 음악제로 주목을 받았던 이날 공연은 오케스트라를 객석 자리에 앉히면서 독특한 장면을 연출했다.
 
베토벤은 청력 악화 이후 고된 삶 속에서 교향곡 ‘전원’을 작곡했다. 자연에서 위안을 받았던 그는 시냇물 흐르는 광경, 높은 음의 새소리, 갑작스러운 천둥과 그 이후의 평안을 주제로 자신의 음악 중 몇 안되는 ‘표제 음악’을 썼다. 제목에 걸맞은 음악을 위해 베토벤은 새 소리, 물의 소리를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로 묘사했다.
 
베토벤의 자연 묘사는 이날 ‘전원’을 연주한 PFO가 무대 위 대신 객석에 배치된 이유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인 손열음은 “자연의 소리는 일방적이 아니고 입체적으로 들린다. 오케스트라의 자리도 달라야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손 감독은 “원래는 연주자들이 청중 사이사이에 앉아 ‘전원’을 연주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코로나로 불가능해지면서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에서 연주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결국 청중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을 에워싸게 되면서 각 악기의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왔다. 특히 나이팅게일, 메추라기, 뻐꾸기를 차례로 표현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의 소리는 무대 위에서 연주했다면 불가능했을만큼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처럼 눈에 띈 것은 PFO의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의 목관악기 수석 3인방이었다. 쾰른 필하모닉의 종신 수석인 조성현(플루트),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의 제2수석인 함경(오보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인 조인혁(클라리넷)은 한국 목관악기의 기량이 도달한 지점을 증명했다. 음과 리듬이 정확했고 음악 안에서 표현하는 내용이 분명했다. 특히 목관악기 3인방의 사운드는 오케스트라 자리 배치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서 더 돋보이게 된,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였다. 세 명의 연주자는 자연 소리를 묘사할 때뿐 아니라 베토벤의 주제 음형을 표현할 때도 연주를 끌고가다시피 했다.
 
모두 다섯 악장 중 네번째 악장에서 드라마틱한 천둥을 묘사한 베토벤은 5악장에선 이 폭풍우가 끝난 것에 대한 인간의 감사를 음악으로 썼다. 이날 지휘를 맡은 아드리앙 페뤼숑은 마지막 부분을 찬송가처럼 경건하게 표현해냈다.
 
이처럼 자연의 장면을 입체적으로 스케치하며 시작한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다음 달 8일까지 열린다. 예년엔 매일 2회 이상씩 열었던 공연을 주말에만 올리고, 객석은 3분의 1 만 채운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작곡가 베토벤을 주제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평창=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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