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로나 의심 월북자 명분 삼아 "南서 온 바이러스" 판 짜는 北

중앙일보 2020.07.26 17:25
북한이 26일 각종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의심 ‘탈북 귀향자’ 발생 소식과 개성 봉쇄 보도를 놓고 여러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내 코로나 확산 책임, 남측에 전가
27일 취임 예정 이인영 통일장관 험로 예상

북한은 지난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직접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직접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 매체를 통해 “월남도주자(탈북자)가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지난 7월 19일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며 “악성 비루스감염자로 의진할수 있는 석연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개성시를 폐쇄하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 비상체제’로 전환하는 특급경보를 내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재로 지난 25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개최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재로 지난 25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개최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은 이날 이런 사실을 공개하면서도 ‘코로나 19’라고 특정하지 않았다. 북한은 올해 초부터 코로나 19를 ‘신형 코로나비루스’로 표현해 왔다. 
 
또 이날 발표에서 “전문방역기관에서는 불법 귀향자의 상기도 분비물과 혈액에 대한 여러 차례의 해당한 검사를 진행했다”라고도 했다. 상(上)기도 분비물과 혈액채취는 코로나 19를 판정하기 위한 일반적인 검체 채취방법이다. 
 
그런 만큼 “석연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건 코로나 19 발생 사실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은 코로나 19로 특정하지 않았고, 확진이 아닌 의진(의심)이라고만 했다. 코로나 19 유입을 경계하고 있는 북한이 검사를 하고서도 병명이나 확진 여부를 밝히지 않은 건,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이날 언급된 인물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과거와는 다르다. 북한은 2009년 10월 동부전선의 철책을 뚫고 월북한 사건을 전하며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살고 있던 강동림”이라고 했다. 그가 삼성반도체 근로자였다는 사실까지 세세하게 공개했다.
 
2017년 8월 임지현(본명 전혜성)씨가 탈북 뒤 자진 월북했다고 주장할 땐 우리민족끼리 TV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북한은 탈북자들의 재입북을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채 ‘월남도주자’라고만 밝힌 점은 이례적이다.  
 
이와 관련, 북한이 신종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 탈북자의 귀환을 활용해 체제 결속과 북한 내 코로나 19 확산의 책임을 남한에 돌리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탈북자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탈북자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뒤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또 탈북자들이 페트병에 바이러스를 묻혀 북한으로 보내려 한다는 주장도 했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그동안 코로나 19 환자가 '제로(0)'라며 청정국임을 주장해 왔지만, 곳곳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며 “우연히 탈북 귀향자가 생기자 코로나 확산의 진원지를 남측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가 확산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탈북자가 남한에서 바이러스를 묻혀 왔다’는 프레임을 구상 중일 수 있다는 얘기다. 6개월 이상 고수해온 코로나 청정국 이미지 포기의 명분으로 남한발 코로나 유입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대북정책은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이르면 27일 통일부 장관에 임명될 예정인 이인영 후보자는 지난 3일 장관 내정 이후 줄곧 남북관계 복원 의지를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안보 진용 교체를 통해 집권 후반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방점을 찍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달 9일 남북 연락선 차단에도 비공개 라인을 가동해 돌파구를 모색해 왔다. 하지만 북한이 이날 공개적으로 남한발 코로나 유입을 들고나오면서 이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북한 사람들은 남측에 코로나가 많다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언덕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보도에서) 일단 대남 비난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 역시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