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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치매 환자 전용 상품 개발에 열 올리는 일본 은행

중앙일보 2020.07.26 13:00

[더,오래]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56) 

치매에 걸려 혼자 사는 아버지 댁에 방문하여 통장을 보니, 일주일 만에 70만엔을 썼다. 아버지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D씨는 고령자를 노리고 있는 사기가 아닐까 걱정이 된다. 통장과 카드를 강제라도 가족이 관리하고,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 혼자 사는 어느 아버지는 일주일 만에 다 쓴 70만엔을 어디에 썼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 flickr]

치매에 걸려 혼자 사는 어느 아버지는 일주일 만에 다 쓴 70만엔을 어디에 썼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 flickr]

 
치매 고령자는 일상생활에서 금전 문제를 자주 일으킬 수 있다. 매일 일상적인 지출관리도 어려운데, 매월 계획적인 금전관리는 더욱 힘들다. 매월 가계를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계획성과 판단력은 치매 초기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해 월 생활비를 한꺼번에 찾아두고 순식간에 다 써버린다. 본인이 은행에서 돈을 찾은 줄도 모르고 은행이 통장의 돈을 훔쳐갔다고 항의하며 금융분쟁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가족이 자금과 통장을 관리하여 금전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인이 치매에 걸린 부모의 금전을 관리하면 형제나 친척 간에 오해를 사거나 분쟁의 씨앗이 된다. 제도상 다른 사람에 의한 금전관리는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가족이라도 위임장이 필요하고 일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본인의 은행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기 어렵다. 또한 누구라도 자신의 금전을 관리하는 것은 자존심의 원천이다. 자금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자유와 존엄을 빼앗겼다는 기분이 들 수 있다. 그것은 치매 환자도 마찬가지다.
 
치매 환자의 금전관리를 둘러싸고 다양한 유형의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일찍부터 영국의 금융업계는 치매 환자의 금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알츠하이머협회와 제휴해 ‘치매를 배려한 금융서비스 헌장’을 제정했다. 그리고 금융회사가 치매와 관련된 문제를 인식하고 장래 고객서비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가 협력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대형은행 HSBC는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협회와 제휴해 금융서비스를 대폭 개선했다. 고객과 상담 후 금융거래의 고충을 분석하고, 지역사회의 치매 환자와 간병인이 은행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직접 청취했다. 조사결과 치매에 걸려도 판단능력이 충분한 경도 치매 환자가 많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생활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근거로 상품을 개발하였다.
 
HSBC는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협회와 제휴하여 금융서비스를 대폭 개선하였다. [사진 Wikimedia Commons]

HSBC는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협회와 제휴하여 금융서비스를 대폭 개선하였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즉 판단능력이 있을 때 법적 대리인을 지정하고, 치매에 걸려도 본인이 기본적인 은행 서비스를 받기 쉬운 전용계좌를 개발하였다. 가족에게 지급내역을 통지하고, 예금인출 한도를 줄였다. 비밀번호를 잊어도 서명으로 지급할 수 있는 카드, 1회 30파운드 미만의 예금은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고도 인출할 수 있는 카드, 음성인식 전화뱅킹 등의 자립지원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고령 고객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 이동하기 쉽도록 점포구조를 개선했다. 1만6000명의 직원에게 치매 교육을 실시하였다. 범죄와 사기에서 치매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선진적인 부정감지시스템을 강화하고, 고객 본인과 그 가족에게도 주의시키고, 사전에 상담하도록 권유했다.
 
이러한 금융서비스는 고객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금융서비스 때문에 자립생활을 유지하며 인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치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직원은 자신 있게 고령 고객을 응대했다.
 
금융회사는 치매 환자를 잘못 대응하면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용을 잃을 수 있다. 경도의 치매증상(MCI)이 있는 고령 고객이 자주 방문하는 지점창구는 고령 고객의 치매 증상을 일찍 발견할 수 있는 장소다. 창구직원이 치매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고령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다양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런 금융회사는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고, 영업실적도 높일 수 있다.
 
직원의 치매 교육은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현재 대형은행의 치매서포터 수강자는 수만 명에 이른다. 사회복지 관련 단체와 제휴를 통해 인지능력이 떨어진 고령 고객과 상담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회사는 대부분 독자적인 대책을 세웠지만, 의료간병분야의 전문가와 지식을 공유하면 더욱 치밀한 대책을 세우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은행지점이 위치한 지역의 지역포괄지원센터, 사회복지협의회와 제휴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은행은 지점에서 ATM 사용방법을 모르는 고객, 똑같은 질문을 몇 차례 반복하는 고객 등 치매증상이 의심되는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직원의 치매 교육은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현재 대형은행의 치매서포터 수강자는 수만 명에 이른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직원의 치매 교육은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현재 대형은행의 치매서포터 수강자는 수만 명에 이른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일부 대형은행은 판단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를 위한 금융상품을 개발했다. 인생 100세 시대를 겨냥해 고령 고객의 자산관리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상품으로 은행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2019년 3월부터 ‘대리출금기능 신탁(쓰카에 안심)’을 판매하고 있다. 6개월 동안 1400건의 판매실적을 보였다. 가족과 변호사가 지정한 대리인이 신탁한 자금에서 계약자의 의료비를 지급할 경우 다른 가족에게 통지되기 때문에 사용처를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사전에 대리인을 지정해두면 치매에 걸렸을 때 대리인이 전용 스마트폰을 통해 계약자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찾을 수 있다. 다른 가족에게도 출금내역을 알려준다. 치매에 걸린 후에도 계좌가 동결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자신이 희망하는 대로 자금을 사용할 수 있고, 다른 가족이 대리인의 부정이용을 방지할 수 있다.
 
미즈호은행이 판매하는 ‘치매서포트 신탁’은 계약자가 치매로 판단되면 효력이 발생한다.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신탁한 자금에서 계약자가 단독으로 지급하는 것을 제한하고, 미리 지정한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계좌에 이체할 수 있다. 10만엔 이상의 지출은 대리인의 청구가 필요하고, 은행은 그 내용을 점검한다. 연간 1000건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스미토모은행은 점포에서 고령 예금자에게 ‘대리인 지정절차’를 제안하고 있다. 장래에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간병상태가 될 경우 예금자 본인이 미리 대리인을 지정하는 절차다. 대리인은 예금자 본인을 대신하여 창구에서 자금을 찾을 수 있다. 2019년 말 현재 이용 건수는 11만건으로 성견후견제도의 이용 건수 약 2만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IT 회사는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치매 증상을 조기 발견하는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어느 핀테크 기업은 고령자의 은행 계좌 거래상황에서 치매와 금융사기 징조를 감지하고, 통상과 다른 거래를 한다면 가족에게 통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용고객이 갑자기 ATM에서 자주 자금을 인출할 경우 치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 사실을 친척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모바일 단말기에서 인지기능을 테스트한 후에 인지기능이 떨어진 것을 사전에 파악하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일본의 대형 금융회사와 업무제휴를 한 기업도 있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현금카드와 통장을 분실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부담을 없애고 안전한 금융거래 지원하기 위해 OKI는 덴소웹과 공동으로 얼굴인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의 금융업계에서는 고령자의 금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조직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노무라홀딩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2019년 4월에 게이오대학과 공동으로 ‘일본금융제론톨로지협회’를 설립했다. 금융제론톨로지(금융노년학)이란 고령자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를 경제학, 의학, 심리학 등 관련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새로운 학문영역이다.
 
현재 금융을 중심으로 관련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제론톨로지협회는 연구성과를 금융업계에 널리 전파할 계획이다. 특히 고령 고객이 치매에 걸려 판단능력이 떨어지면 금융회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초점을 두고 있다.
 
거액의 노후자산을 사용하는 고령기에 자산관리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생명 수명에 도달할 때까지 자산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연장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고령인력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금융회사는 시대에 맞는 고령기의 자산관리 서비스가 필요하다. 고령 선진국인 영국과 일본의 금융업계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치매 환자가 대폭 늘어나는 초고령화 시대가 되면 선제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시장확장 기회를 만들 것이다.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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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종 이형종 커리어넷 커리어 전직개발 연구소장 필진

[이형종의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배운다] 한국은 급속하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는 인생 80세 시대와 다른 삶의 방식이 전개된다. 기존의 국가 시스템과 사회 제도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인생100세 시대에 걸맞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초고령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과 대응책 등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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