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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조문거부 류호정 "나도 성희롱 겪어···피해자 고통 생각"

중앙일보 2020.07.26 05:00
 
 

[초선언박싱]

 
중앙일보 ‘초선언박싱(unboxing)’은 21대 총선에서 처음 금배지를 달게 된 화제의 초선 의원을 ‘비디오 상자’에 담아 여러분에게 찾아갑니다. 패기 넘치는 포부와 공약으로 똘똘 뭉친 초선 의원을 ‘3분 영상’에서 만나보세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1992년생이다. 4·15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돼, 헌정 사상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가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가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류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에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피해자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페이스북

류호정 정의당 의원 페이스북

 
이후 류 의원은 박 전 시장을 지지했던 많은 이들의 공적(公敵)이 됐다.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정의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불과 3~4일 만에 1000명이 넘는 당원이 탈당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는 아니었다. 류 의원은 후보 시절 이른바 ‘대리 게임’ 논란으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런데도 류 의원이 공개적으로 ‘조문 거부’를 선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류 의원은 지난 2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박 전 시장의 피해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또 다른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사실을 접하고 든 생각은?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많이 놀랐다. 평소에 존경하는 분이기도 했었고, 바로 직전에 박 전 시장의 인터뷰를 읽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미 권력을 많이 가진 이들이 추모하고 있었다. 또 동시에 2차 가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의 다 잡았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굉장한 위력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연대의 메시지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본인도 과거 직장에 다닐 때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들었다.
사실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사회 초년생이었고, ‘이것도 사회생활인가’ 하면서 넘겼다. 그렇게 잊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보다 더 늦게 입사한 후배가 관련해서 ‘회사에 신고했다, 증언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침묵했기에 다음 사람들이 또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행동을 한 것이다.
 
정의당 당원들의 탈당이 1천명 이상 이어졌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의도가 어쨌든 간에 당내 갈등을 야기하게 되었기 때문에, 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가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가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류호정 의원은 민주노총 화학섬유노조 선전홍보부장 출신이다. 온라인 게임을 좋아해 IT업체에 취직했고, 직장에서 갈등을 겪다 노조에서 일하게 됐다. 류 의원은 자신을 ‘민주노총 후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민주노총 후보’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놀라시는 분들이 많다. 기존 민주노총 등에 대한 편견이 아닐까 싶다. 빨간 머리띠, 주먹, 조끼, 화난 표정 등…. 일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편견을 깨는데도 일조를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내가) 여성, 청년, 사무직 노동자였다.
 
20대 여성, 게임 애호가, IT 노동자 가운데 어떤 게 본인의 정체성인가. 
하나만 뽑기보다 종합해보면 이런 것 같다. 낯선 정치인. ‘낯섬’이 키워드인 것 같다. 그만큼 여성 청년 정치인이 국회 안에서 목소리를 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안에서 대변되지 못했거나, 대변됨이 부족했던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 취업 준비생이 크게 분노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노동계 주장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을(乙)’들의 싸움을 부추겼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맥락이 있는 사안이다. 보안, 소방 등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시는 분들이 파견업체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보니 생명과 안전 관련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정규직화를 한 것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그 맥락은 잊히고 갑자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딱 발표가 되니깐, 박탈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고, 그 박탈감을 활용해서 장사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 것을 보면서 화가 났다.
 
류 의원은 이 대목에서 책상을 손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그러면서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라고도 했다. “을끼리 싸울 게 아니라 더 위에 미소 짓고 있는 자본과 기업을 향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류 의원의 답변은 민주노총 등 노동계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가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가 2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준비 중인 1호 법안은 무엇인가?
비동의 강간죄다. 이번달 안에 발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 현행 강간죄를 보면 가해자에게 조금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폭행과 협박에 대해서 현저하게 저항이 불가능해야 한다거나. 많은 부분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동의 여부로 하는 것을 추가할 생각이다. 최대한 법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예상과 달랐던 점도 있나? 
국회 인터넷이 느리다. 자꾸 끊긴다. 뚝 끊긴다. 그러면 파일을 전송하다가 탁 끊어지는 거다.  
 
오현석·김홍범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영상·그래픽=임현동·여운하·심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