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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의 지방시대] “아이들 눈빛이 살아났다”…대구의 IB 교육 혁명

중앙일보 2020.07.26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공교육 르네상스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인 국제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한 대구시 북구 삼영초등학교 3학년 3반의 ‘우리가 사는 지구’ 수업 모습. 오영환 기자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인 국제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한 대구시 북구 삼영초등학교 3학년 3반의 ‘우리가 사는 지구’ 수업 모습. 오영환 기자

17일 오전 9시 40분 대구시 북구 삼영초등학교 3학년 3반(25명). 여느 초등학교와 같은 교실이지만 수업은 이채로웠다. 교사와 학생 간 쉼 없는 질의응답과 공책에 자기 평가 쓰기. 생동적이고 속도감이 났다. 수업 과목은 낯설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였다. 과학의 한 단원쯤이라 여겼더니 재학생이 6년 동안 탐구하는 6가지 융합 주제(프로젝트)의 하나였다. 나머지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속한 시간과 공간’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 ‘우리 자신을 조직하는 방법’이다. 1~6년 수업 시간표는 국어·사회·수학·과학 등 교과별이 아니라 이 6가지 주제가 학년별 소주제로 나뉘어 있었다. 교과서는 6가지 주제에 횡단적으로 접목한다. 과목 간 칸막이가 없는 교육이다.
 

초·중학에 글로벌 IB 교육 틀 접목
학생 주도형 탐구 기반 학습 통해
‘집어넣기’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교육 패러다임 바꾸는 사건의 시작”

수업 흐름도는 학생 주도형 탐구 기반 학습이다. 6개 주제 모두 담임 지도하에 학생 간 토의를 통해 탐구 시작(관심·계획)-발견하기(핵심 개념 탐색)- 설명하기(발표)-더 나아가기(탐구 심화)-되돌아보기(발표, 자기 평가기록)-행동하기(실생활 연계와 실천)의 사이클로 돼 있다. 이날 3학년 3반 수업은 3년 과정인 ‘소중한 지구 보존하기’의 되돌아보기 단계였다. 학생들은 당찼다.
 
“자기가 더 알고 싶은 내용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좋다.”(김동훈 학생)
 
“다른 학교와 달리 궁금증을 집중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김소민 학생)
 
이날 수업은 삼영초가 지난해 전교생에 도입한 세계적 교육 프로그램 ‘국제 바칼로레아(IB)’의 한 단면이다. 국제학교 중심으로 채택 중인 글로벌 교육의 틀이 대구 외곽의 공립초교와 만났다. IB 기구(IBO)의 융합적 교육 설계도 용어가 생소할 뿐 학습의 1차 자료는 우리 교과서다. 김영주 담임 교사는 “기존의 공부 방식이 지식, 기능 위주로 흘러갔다면 IB에선 학생이 배운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탐구가 이뤄진다”며 “학생들이 탐구 주제를 스스로 찾고 ‘이렇게 하니 재미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수업 도중 교실 뒷편 게시판에 걸어놓은 탐구목록을 확인하고 있다. 이 목록은 학생들이 토의를 통해 정했다. 오영환 기자

학생들이 수업 도중 교실 뒷편 게시판에 걸어놓은 탐구목록을 확인하고 있다. 이 목록은 학생들이 토의를 통해 정했다. 오영환 기자

IB 교육은 구각(舊殼)을 깨야 하는 교사에게도 큰 도전이다. 황정하 교장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IB 방식이 교육의 본질에 맞다”며 “지금은 IB의 교육 지평을 넓혀가는 단계로, 무엇보다 교사들이 서로 토의하고 학습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의 서동중은 올해 1학년에 IB 교육을 도입했다. 17일 오전 1학년 5반 교실로 들어서니 게시판에 IB 교육의 10가지 학습자상(learner profile)이 걸려 있었다〈그래픽 참조〉. 탐구, 지식, 생각, 소통, 원칙, 열린 마음, 배려, 도전, 균형 감각, 성찰의 인재상이다. 학습자상은 IB 교육의 지향점으로 초중고가 한가지다.
 
이날 수업은 언어와 문학(국어)으로, 다른 학교와 외견상 차이가 없어 보였다. 1학년 과정은 이 과목 외 언어 습득(영어), 개인과 사회(사회·도덕), 수학, 디자인(가정·정보), 예술(음악·미술), 과학, 체육·건강의 8개 과목군으로, 11개 국내 교과를 통합했다. 중학교 교육 내용도 우리 교과 과정이 바탕이다. 하지만 학습과 평가의 틀은 IB 방식이다. 글로벌 맥락 속에서 교수법은 탐구적 질문과 개념 이해를, 학습법은 협업과 소통, 사고력을 강조한다.
 
“글 쓰는 것이 좋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3년 동안 배우면 다른 학교 학생보다 성과가 클 것 같다.”(최시현 학생)
 
“수업이 말하기(발표)나 글쓰기를 중시하는데 반복하다 보니 늘고 있다. 배운 것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하고, 세상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박정음 학생)
 
황은비 담임 교사는 “1년 반 동안 해보니 학습자상 등을 통해 학생들의 문제의식과 조화로운 덕성이 연마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IB 교육은 교사도 새로 눈을 뜨게 해주고 성장시킨다”고 했다. 평가 기준이나 방법도 기존 교육과는 판이하다. 예컨대 개인과 사회 과목의 평가 항목은 알고 이해하기, 조사하기, 소통하기, 비판적 사고가 각 25%다. 서동중 김주연 IB 교육 코디네이터(교사)는 “IB는 에세이, 수행평가, 프레젠테이션 등 다양한 평가 도구를 통해 학생들이 실제로 탐구한 내용을 평가해 지식 습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제 해결 능력과 비판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것과 연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이들에게 창의 융합적 사고 키우겠다”
 
대구에서 현재 IB 교육을 실시 중인 학교는 초등학교 3개교(사대부초, 삼영초, 영선초), 중학교 3개교(사대부중, 서동중, 대구중앙중)다. 6개교는 IB 관심 학교를 거쳐, 지난해 후보 학교가 됐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IBO의 공식 인증 전 후보 단계에서도 IB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초중의 IB 공교육은 대구가 처음이다. 고등학교는 사대부고·대구외고·포산고가 후보 단계다. 2~3학년 대상의 고교는 인증 전 IB 교육을 할 수 없다. 현재 국내에서 IB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초중고는 28개교로, 경기외고를 제외하곤 모두 국제학교나 외국인학교다.
 
대구 IB 공교육의 산파역은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이다.
 
IB 학습자상

IB 학습자상

IB 교육을 선도적으로 도입한 배경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이들에게 창의 융합적 사고와 미래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사명이다. IB 교육은 하나의 정답 찾기 교육에서 탈피해 생각을 꺼내는 수업을 구현하고, 수업과 평가의 일관성을 확보한 공신력 있는 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IB 한국어화와 공교육 변화 혁신을 끌어내면서 미래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자 새 정책을 도입했다.”
 
도입 초기인데 현 단계에 대한 평가는.
“IB 한국어화, 대구 관내 IB 학교 인증 등의 중장기 로드맵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IB 관심 학교에서 후보 학교로 지정된 초중고 9개교가 지금 마지막 단계인 IB 인증학교 승인 절차를 준비 중이다. IB 초중고의 연계성을 높이고, IB 교원의 전문성을 높여 원하는 학생 누구나 한국어로 IB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IB 프로그램(개요)

IB 프로그램(개요)

향후 주안점은.
“IB 교육을 통해 대구 교육이 확 달라질 것이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공립학교에 IB 프로그램을 들여와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길을 확대하고자 한다. 더불어 IB 학교가 국가 수준 교육 과정의 구체적 실행을 강화하는 선진화된 교육으로 일반 학교의 수업과 평가 혁신을 유도하도록 노력하겠다.”(서면 인터뷰)
 
지금은 정보·기술혁명의 인공지능(AI) 시대다. 단편적 지식과 정보는 디지털과 인터넷의 바다에 널려 있다. 생각하는 힘이 더 중요해졌다. ‘집어넣는 교육’을 ‘꺼내는 교육’으로 바꾸지 않으면 변화의 파고를 헤쳐가기 어렵다. IB 공교육은 거대 관행을 깨는 하나의 촉매일지 모른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교육학 박사)은 “IB 교육의 도입은 공교육의 양적 확대 이후 처음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질적으로 바꾸는 교육사의 역사적 사건의 시작”이라며 “공교육의 교실을 깨우고 아이들의 눈빛을 살아나게 하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교실 혁명의 장정(長征)이 시작됐다.
 
전세계 153개국 5234개교 IB 교육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IB)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재단 IB 기구(IBO)가 1968년부터 개발, 운영 중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국제기구가 많은 제네바 주재 외교관, 주재원 등 자녀 교육이 출발점이다. 토론과 탐구 활동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은 네 가지로, 초등학교(PYP), 중학교(MYP)와 고등학교 과정인 디플로마 프로그램(DP), 직업 교육 프로그램(CP)이 있다. PYP와 MYP는 교과 내용을 정하지 않고 교육의 틀만 제공한다. DP는 2년 과정으로, 최종 시험을 거쳐 일정 성적을 받으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대입자격(IB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IB 전형 대학은 90개국에 3300개를 넘는다. 한국은 IB 전형이 없지만 이수 학생은 수능최저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수시 전형이 가능하다.
 
전 세계 IB 프로그램 운영 학교는 올 1월 기준 153개국 5234개교다. 일본은 교육 개혁의 하나로 문부과학성이 IB교육추진컨소시움을 구성했다. 운영 학교는 105개교이고, IB 교원 양성 과정을 설치한 대학교도 7곳에 이른다. 중국의 운영 학교가 254개교인 점도 흥미를 끈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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