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85년 ‘간장 파동’ 위기가 기회로…22억L 팔린 국민 간장은

중앙일보 2020.07.25 08:00
 
1955년 샘표 충무로 공장 내 간장 포장부의 모습. 사진 샘표

1955년 샘표 충무로 공장 내 간장 포장부의 모습. 사진 샘표

따뜻한 쌀밥에 날달걀을 풀어 참기름을 더하고 간장에 비벼 먹으면 집 나갔던 입맛도 돌아온다. 간장은 오랜 시간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온 식재료 가운데 하나다. 광복 이후 장을 사 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던 시절, 간장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 회사가 등장했다. 누구나 장을 사 먹을 수 있는 시대를 연 브랜드, 바로 ‘샘표 간장’이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49. 샘표 간장

 
1950년대 출시된 샘표 간장. 사진 샘표

1950년대 출시된 샘표 간장. 사진 샘표

충무로 첫 네온사인 광고로 눈길

‘샘물처럼 솟아라’라는 의미의 ‘샘표’는 현존하는 국내 상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표(등록번호 제362호)다.  
샘표식품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충무로에서 출발했다. 일본인이 버리고 간 삼시장유양조장을 창업주인 고(故) 박규회 회장이 인수하면서다. 
 
광복 후 함경남도에서 내려온 그는 자신처럼 고향을 떠나와 장을 담가 먹기 힘든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간장 회사 창업을 준비했다. 당시 주변에선 ‘사람들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장을 담가 먹을 텐데 도박할 필요가 없다’는 만류가 이어졌다고 한다. 
 
박 회장은 “앞으로는 장 담그기가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며, 누구나 위생적으로 제대로 만든 장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호기롭게 간장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판로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이 간장을 사 가기만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박 회장은 소비자 접점 구축에 나섰다.
1962년 샘표 간장 모델로 활동한 배우 주증녀씨가 샘표 간장을 들고 있다. 사진 샘표

1962년 샘표 간장 모델로 활동한 배우 주증녀씨가 샘표 간장을 들고 있다. 사진 샘표

 
신문 지면에 간장 광고를 내서 인지도를 높였고, 직원이 간장병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샘표 간장을 맛보게 했다.  
50년대엔 주부 사원도 고용해 방문 판매도 시작했다. 주부 사원이 중산층 이상 가정을 방문해 샘표 간장을 홍보하고 주문을 받으면 공장에서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58년엔 충무로 본사 사옥 옥상에 대형 네온사인 광고판을 만들어 샘표식품을 홍보했다. 6.25 전쟁의 상처가 가시기 전 서울 도심에 샘표식품이란 네온사인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61년 국내 최초의 CM송을 선보인 것도 샘표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이란 가사와 멜로디를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산업화로 사람이 도시로 몰리면서 부엌의 필수품인 간장을 담아 먹기 힘들게 되면서 샘표 간장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첫작품은 대성공'이란 제목의 1976년 샘표 간장 신문 광고. 사진 샘표

'첫작품은 대성공'이란 제목의 1976년 샘표 간장 신문 광고. 사진 샘표

간장 파동 위기 TV 광고로 돌파구 마련

70년대 들어서면서 샘표는 사세를 키웠다. 71년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샘표식품공업으로 이름도 바꿨다. 장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공식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게 이때다. 73년 충남 연기군에서 과일 통조림을 생산하고, 76년엔 경북 포항시에 양포식품을 세워 수산물 가공 통조림을 생산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간장 파동이 3차례나 이어지면서 회사는 휘청였다. 85년 무허가 간장 업체가 비위생적으로 제조한 간장을 팔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1981년 샘표 진간장 신문 광고. 사진 샘표

1981년 샘표 진간장 신문 광고. 사진 샘표

업계 1위였던 샘표식품에도 불량 간장 불똥이 튀었다. 회사엔 “샘표 간장으로 담가뒀던 장아찌를 다 버렸다”와 같은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당시 박규회 회장의 아들인 고(故) 박승복 회장이 2세 경영을 하던 시기였다. 박 회장은 직접 TV 광고에 등장해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박 회장은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 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는 직접 작성한 문안을 들고 광고에 등장했다. 주요 고객층인 주부가 언제든 생산 공장에 오면 개방하고 견학을 해 눈으로 직접 안전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견학 프로그램이 이때 만들어졌다. 박 회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직접 확성기를 들고 제조 공정을 설명해 공장을 찾은 소비자의 호응을 끌어냈다. 장수기업으로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시기다.  
 
샘표 양조간장 501. 사진 샘표

샘표 양조간장 501. 사진 샘표

501ㆍ701…간장 뒤 숫자 의미는

54년 ‘샘표’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를 시작한 후 현재까지 생산된 샘표 간장의 양은 22억L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베스트 셀러는 89년 출시된 ‘양조간장 501’이다. 당시 샘표는 일본간장이 국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에 맞서기 위해 순수 국내 발효기술을 바탕으로 간장 개발에 착수했다.
 
좋은 맛을 내는 간장을 만들기 위해 고급 대두와 통밀의 최적 배합을 찾았고, 가장 적합한 미생물로 발효시켜 6개월 이상의 숙성 과정을 거쳤다. 501이란 숫자는 간장 품질 기준에서 나왔다. 간장의 단백질 함유량에 따라 1.0%가 ‘표준’, 1.3%는 ‘고급’, 1.5%를 ‘특급’으로 분류한다. 샘표 간장은 1.5% 특급 간장으로 분류됐는데 1.5%가 마케팅에선 각인 효과가 부족해 1.5를 뒤집어 501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샘표 양조간장 701 제품 이미지. 사진 샘표

샘표 양조간장 701 제품 이미지. 사진 샘표

샘표는 이후 1.7%의 ‘샘표 양조간장 701’을 출시해 프리미엄 간장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 외에도 샘표는 염도를 낮춘 저염 간장, 참숯으로 걸러 맛이 부드러운 참숯 간장, 다양한 향신료를 넣은 향신 간장, 국물 요리에 기본으로 사용되는 국시장국 등 3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간장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샘표 우리맛연구팀이 해조류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샘표

샘표 우리맛연구팀이 해조류 연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샘표

전 직원 20%가 연구원인 회사

샘표는 식품 제조와 판매하는 기업에서 연구 중심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샘표식품은 연 매출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전체 직원의 20%를 연구원으로 구성했고 2013년엔 300억원을 투자해 충북 오송지역에 ‘우리발효연구중심’이란 연구소도 세웠다. 전통식품인 장류를 과학적인 방식의 식재료 분석을 통해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발효식품 개발을 위해서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2018년 문을 연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 사진 샘표

미국 뉴욕 맨해튼에 2018년 문을 연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 사진 샘표

또 우리 맛의 근본인 발효 기술과 장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2018년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샘표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를 열었다. 채식 위주의 건강한 한식과 그 중심에 있는 발효를 바탕으로 건강한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전진 기지다.
 
샘표의 3대 박진선 대표는 “해외 진출의 목적은 우리 음식의 세계화에 있다”며 “‘우리의 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한다’는 샘표의 글로벌 전략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