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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자에게도 겸손해야 품위 있는 정치

중앙선데이 2020.07.25 00:21 696호 20면 지면보기

신준봉 전문기자의 이번 주 이 책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
토드 메이 지음

“도덕적 실패자 되지 말자”
착하게 사는 도덕적 틀 제시

정치적 반대자, 반려동물도
나름 누려야 할 삶 인정해줘야

이종인 옮김
김영사
 
영국에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예절이 있다. 기자가 10여년 전 런던에서 학교를 다닐 때 체험했다. 조금 뒤처져 건물에 도착하는 사람을 위해 현관문을 잠시 연 채 기다리는 선행(善行) 말이다. 심지어 어떤 건물에 도착하기 10m 전쯤인데도 문고리를 붙잡고 기다리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예절이다. 어쩌면 영영 정착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필요하고 의미 있는 예절이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철학자 토드메이(65, 클렘슨대 철학과 교수)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행동을 ‘상식적 예의(common decency)’의 하나로 분류한다. 나이 든 사람이 길 건너는 것을 돕기, 낯선 사람에게 담뱃불 붙여주기, 회의 도중 어떤 사람이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그가 마시던 커피 컵을 냅킨으로 덮어두기 등과 함께다. 잘 알지도 못하고 두 번 다시 만날 것 같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행위라서다. 어떤 사람의 삶을 잠시라도 덜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행위는 삶을 밝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다. 도움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되갚게 하거나 상식적 예의를 목격한 제3자에게 하나의 행동모델이 되는 방식으로 선행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상식적 예의의 내용은 나라와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가령 일본에서는 미국에 비해 값비싼 선물을 폭넓은 사회적 상황에서, 그러니까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서도 주고받는 경향이 있다고 책에서 사례로 들었다.
 
문제는 나의 이런 선행이 상대에 의해 무시당하는 경우다. “개자식들(assholes)”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특별한 자격을 갖고 있어서 대인관계에서 특별한 이점을 언제나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불평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는 사실 선행을 베풀고 싶은 마음으로 넘쳐나는데 말이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대치 속에 법안이 통과되는 모습. 정치인들의 물리적 충돌은 품위를 잃은 모습이다. [뉴시스]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대치 속에 법안이 통과되는 모습. 정치인들의 물리적 충돌은 품위를 잃은 모습이다. [뉴시스]

메이는 탈구조주의 철학 전문가다. 그의 1994년 저서 『The Political Philosophy of Poststructuralist Anarchism(‘탈구조주의 아나키즘의 정치철학’쯤으로 번역된다)』에서 이 분야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다. 과거 인터뷰를 찾아보니 국가와 자본주의만을 사회악의 근원으로 보고 철폐하려는 게 아니라 각종 불평등과 차별이 이뤄지는 문화와 관습도 문제라는 게 탈구조주의 아나키즘의 시각이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던 메이는 최근 몇 년 새 현실주의자로 돌아선 듯하다.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 2016~2020)’라는 미국 NBC 드라마의 철학 자문을 맡았고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지난해, 국내에서 이번에 번역 출간된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철학』도 그런 현실적인 혹은 대중적인 발걸음의 하나다. 영어 원제는 ‘A Decent Life: Morality for the Rest of Us’. 고리타분한 ‘도덕(morality)’이라는 단어를 한국판 제목에서는 의도적으로 뺀 듯한데, 책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착하게 사는 법’ 혹은 ‘착하게 살고 싶은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쯤 된다. 호기심에서라도 책을 집어 든 사람을 착한 사람으로 단정하고(책은 ‘서문’이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당신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지구 반대편에 있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류의 후손, 반려묘나 식육용 소·돼지 같은 동물, 나하고는 정치적 견해가 뼛속부터 다른 반대 진영 사람으로까지 차례로 범위를 넓혀가며 이들을 상대할 때 도덕적으로 품위 있게 처신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물론 개자식을 상대하는 방법도 나온다.
 
그런데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맞는 행동요령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마주한 순간들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우리 생각의 기준을 잡아주는 틀, 도덕적 품위의 틀이다.
 
저자 메이는 “이 세상에는 살아가야 할 삶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나의 삶 못지않게 남의 삶도 가치가 있다. 나처럼 남도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은 뭔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전개되는 계획과 관계에 참여하기. 인생행로가 전개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인식하기. 음식, 주거, 수면 같은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자신의 주위를 배려하고 애착을 느끼는 기본적인 심리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53쪽) 이런 활동이 보장되는 삶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평생 만날 일 없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나 언제라도 저녁 식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소·돼지나 그들 나름의 삶을 막아서는 안 된다. 대중서라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철학책이다 보니 논의가 결코 단순하지는 않은데, 거칠게 얘기하면 그래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령 ‘너의 행동의 바탕이 되는 법칙이 모든 합리적 존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법칙이 되게 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우리가 따를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고, 철저한 이타주의는 너무 극단적이다. 우리에게는 도덕적 휴일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 도덕적 실패자임을 인정하고 다만 노골적인 실패자가 되는 길은 피하자는 게 메이의 제안이다.
 
이런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겠다. 코로나 여파로 생존이 위태로운데 남을 돕자니, 웬 한가한 소리인가. 나는 법 없이도 사는 선량한 사람이다. 그러니 도덕적인 품위의 틀 같은 건 필요 없다.
 
5장 ‘정치와 품위’에서 저자는 정치 행위가 이뤄지는 공적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품위 있게 처신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정치를 타협의 기술로 정의한다면 미국에서는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됐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정치적 겸손함이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 의견 불일치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런 불일치가 그들의 견해의 타당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한 나의 믿음이 틀릴 수 있고 추가적인 경험에 의해 수정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런 겸손함의 한계를 넘는 상대편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인종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가난은 가난한 자의 탓이라는 생각,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 등이 그런 주장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혐오나 차별은 그 혐오와 차별 대상이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묘수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성공하지 못하겠지만 상대 설득에 나서면 상대 입장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상대 입장이 아주 확고해 입장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비폭력을 실천하는 일도 중요하다.
 
적어도 우리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미국만큼이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내용이다.
 
신준봉 전문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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