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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특권 의식의 폭주, 권력형 성범죄는 계속된다

중앙선데이 2020.07.25 00:21 696호 28면 지면보기

러브에이징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권력형 성범죄’가 또다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권력은 조직 내 구성원을 통제하고 복종시킬 수 있는 힘이며, 권력자는 그 힘을 손에 쥔 사람이다.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타인의 심신을 괴롭힐 수 있는 수많은 사회적·경제적 수단을 갖고 있다.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또 엄중한 법의 심판이 필요한 이유다.
 

자정능력 잃은 힘, 갑을 관계 악용
저급한 욕망·충동의 민낯 드러내

잘못인 줄 알아도 통제 능력 없어
진정한 반성 대신 “가족에게 미안”

2차 가해 멈추고 진상 철저히 밝혀
몰염치한 추문의 재생산 막아야

권력자의 성적(性的) 폭력성은 위계질서가 명확한 환경에서 갑을관계를 악용한 결과물이다. ‘약자인 을(乙)이 강자인 내게 어쩌겠어?’라는 왜곡된 특권의식에 기인하며 직업·나이·지역·보수·진보 등과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나 발생한다. 물론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 줄 안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사과할 마음은 없다. 당연히 자정(自淨) 능력도 없다. 실제 권력형 성추문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가해자들은 한결같이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 대신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앞세운다. 왜 그럴까. 해답은 인간을 공격적이고 몰염치하게 만드는 권력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눈치 안 보는 독선 반복, 공감력 무뎌져
 
권력자가 되면 남의 눈치 안 보고 본인의 주장을 관철하는 일을 반복하기 쉽다. 이런 상황은 체내 호르몬을 변화시킨다. 공격성을 부추기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증가하고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코르티솔 수치는 낮아진다. 또 뇌도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해도 된다고 인식하는 순간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차츰 비활성화된다. 운동 안 하면 근육이 위축되듯, 사용이 뜸하거나 불필요한 기능은 퇴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권력자는 나날이 오만불손하고 뻔뻔스러운 사람으로 변모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사실 권력형 성추문은 사회 유명인사의 민낯을 보는 또 하나의 비난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박 전 시장이 여성 인권을 향상하려고 노력했던 명망가인 데다, 성추행 피의자로 지목되자 자살이라는 극단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추정돼 국민적 충격이 크다.
 
권력형 성범죄를 여성 인권 운동 차원으로 격상시킨 페미니스트 변호사, 그리고 젊은 부하 여직원을 4년간 성추행한 가해자. 이처럼 동일한 사람의 상반된 행태를 접한 시민들의 반응도 동정과 분노, 옹호와 비난 등 극단적 대립 양상을 띠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사안은 완전히 다른 별건이며 일방적 혹은 포괄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정신의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에는 본능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고픈 욕망(id), 본능과 현실 사이에서 초래되는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으려는 자아(ego), 그리고 도덕과 양심으로 대변되는 초자아(superego)가 공존한다. 이 세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인격을 갖게 된다. 예컨대 성추행 유혹이 일면 후유증을 인지한 뒤, 이성을 발휘해 충동을 억제하면 된다. 초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은 유혹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이 역시 병적인 반응이다. 본능적 욕구는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한 필수 요소라 그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면 된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종류를 막론하고 모든 성범죄는 이성이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발생한다. 단순히 성욕 충족을 위해서만 자행되는 것은 아니며 공격성·힘·권력·의존심 등 비(非)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도 많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뻘 되는 중·노년 남성에게서 권력형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람은 누구나 표리부동한 면을 갖고 있다. 장 자크 루소처럼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위대한 교육론자도 아이들이 너무 소란스럽고 양육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다섯 명의 자녀를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겉으로 보이는 가면 인격인 페르소나(persona)와 무의식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shadow)가 있으며, 성숙한 인격을 추구하는 것은 무의식을 의식화시켜 나가는 ‘고통의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가 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은 성인(聖人)에 가까운 완전한 인격체다. 따라서 언행이 불일치하는 누군가를 무작정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성추행 피해자 합법적 권리 보장돼야
 
하지만 그의 어두운 측면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면 가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예컨대 루소가 교육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더라도 고아원에서 자란 자녀들은 아버지 루소를 비난하고 원망할 수 있다. 박 전 시장 사건도 마찬가지다. 성추행 피해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진행할 권리가 있다.
 
반면 박 전 시장 지지자라면 우선 유가족을 위로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찾는 게 옳다. “4년간 뭐하다가…”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일은 인권 운동가였던 고인도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디 이번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가 자취를 감추고, 서울이 진정한 ‘여성 안심 도시’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해 본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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