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헌재가 판결한 ‘수도는 서울’…개헌 없이는 이전 불가능

중앙선데이 2020.07.25 00:02 696호 4면 지면보기

헌법학계가 본 행정수도 이전

여당이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청와대·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밝혔지만,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건물에 불이 켜져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여당이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청와대·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밝혔지만,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건물에 불이 켜져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16년 만에 여권이 쏘아 올린 ‘행정 수도 이전’ 이슈가 정치권 안팎으로 재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헌법학계에선 2004년 결정 내린 판례를 변경하거나 헌법 개정 없이 수도 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국회가 수도이전 법률을 신설해 수도 이전을 추진할 경우 2004년 때처럼 얼마든지 위헌소송으로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4년 ‘600년 관습헌법’ 판례
16년 만에 바꿀 근거 찾기 어려워
국회 특별법 만들면 또 위헌소송

여당, 원포인트 개헌 시나리오 준비
국회동의·국민투표 등 난관 많아

헌법학자들은 관습헌법 논란과 별개로 헌법재판소의 판례 변경 없이 법률 조항을 신설해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관습헌법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연구의 영역이지 판례를 어기란 뜻은 아니다”라며 “판례를 무시하고 여야합의든, 여권 단독이든 새로 만든 법률 조항만으로 수도를 옮기려면 2004년 때처럼 위헌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당시 헌재의 결정에 대해 “관습헌법 논리는 반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성문법 국가에서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법을 유일한 근거로 삼았는데, 국민투표로 제정된 헌법을 헌법 재판관들이 관습헌법 법리를 만들어 제약을 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민법과 상법은 관습법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2004년 당시만해도 헌법에서까지 관습법을 인정할지 말지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며 “이를 헌재가 인정하자고 선언한 셈이기 때문에 입법·행정기관은 이 판결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04년 10월 헌재는 당시 노무현 정부가 만든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찬성 8, 반대 1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조선시대 이후 600년 동안 이어진 ‘수도는 서울’이란 사실은 관습헌법”이라며 “헌법 개정 없이 법률로 그 내용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은 수백년 동안 수도였고(계속성), 중간에 바뀐 일이 없으며(항상성), 국민이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며(명료성), 나아가 국민의 승인과 폭넓은 컨센서스를 이미 얻어(국민적 합의) 헌법 조항에 명문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명하고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헌재가 내세운 관습헌법 법리는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성문법 국가에서 관습헌법이 존재하는지, 성문헌법과 관습헌법을 동일한 효력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이 학계와 법조계 사이에서 핵심 쟁점이었다. 당시 김영일 재판관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다수의견에는 의문이 있지만 수도 이전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한 문제로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 위헌”이라는 별개 의견을, 전효숙 재판관은 “불문헌법에 성문헌법과 똑같은 효력을 인정하기는 어려우며, 새로운 법률제정을 통해 수도 이전이 가능하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통일 후에도 따로 수도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 않았던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생기자 헌법에 ‘수도는 베를린’이라고 명문화했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다시 논의하게 된다면 판례 변경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존 의견을 변경하려면 헌재 재판관 6명 이상이 ‘합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재 유남석 소장과 이미선·문형배 재판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은애·이석태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고 김기영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의 추천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이 1명도 없었던 ‘2004년 헌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헌재의 판례 변경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당시 헌재가 내세운 4가지 요건이 16년 만에 바뀔만한 사정을 당장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헌소송을 하게 되면 헌재는 ‘수도는 서울’이란 국민 인식이 얼마만큼 변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 인식이 크게 변했다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지봉 교수 역시 “일각에선 진보재판관의 헌재 입성과 관습헌법 논란을 고려해 판례 변경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판례를 깨기 위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서는 법률 제정 없이 세종시에 제2의 청와대 집무실을 설치하는 등 우회적인 방법도 거론된다. 하지만 2004년 헌재 판결에서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는 수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규정하고 있어 이같은 방식의 수도 이전도 위헌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임지봉 교수는 “제2의 집무실, 국회 분원을 세종에 둔다고 하면 수도 이전이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면 위헌은 아니다”며 “그런데 국회 본회의장이나 대통령 집무실을 사실상 서울에 두고 있는데 그런 식의 행정이 의미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결국 ‘원포인트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행정수도 완성추진단’을 만들어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행정수도법으로 개정, 국민투표, 원포인트 헌법 개정 등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그렇지만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와 국민투표 등의 난관을 넘어야 한다. 김대환 교수는 “헌법학자인 나조차도 헌법 개정 이슈가 왜 나왔는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데 일반 국민은 납득하기 더 어려울 것”이라며 “자칫 원포인트 개헌은 현 정부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한 상황에서 수도를 세종시로 옮긴다고 하면 수도권에 사는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창우·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관련기사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