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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차도, 저수지로 돌변…6년전 우장춘로 비극 판박이

중앙일보 2020.07.24 10:45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23일 많은 비가 내린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인근 제1지하차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부산에서는 시간당 8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침수된 지하차도에 갇힌 3명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6년 전 집중호우로 침수된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서 2명이 숨진 사고와 판박이다. 부산시의 미흡한 대처로 인명 사고가 재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동구 높이 3.5m 지하차도 2.5m까지 잠겨
차량 6대 타고 있던 9명 중 6명 구조…3명 사망
6년 전 우장춘로 지하차도 2명 사망 사고 판박이
산사태·옹벽 붕괴· 주택 침수로 79명 고립됐다 구조
경남에서도 폭우로 트럭 수로에 빠져 2명 부상

 24일 부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10시 18분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양쪽에서 물폭탄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지하차도가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높이 3.5m 지하차도에 물이 2.5m까지 차올랐다. 당시 지하차도를 지나가려던 차량 6대가 지하차도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이날 오후 8시 호우경보가 발효됐지만, 오후 10시 18분까지 지하차도는 통제 조치가 없었다. 지하차도 출입구에 전광판이 있었지만, 침수 여부를 알려주는 안내 문구도 나오지 않았다. 지하차도에 갇힌 차량 6대에 타고 있던 총 9명은 곧바로 차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23일 부산 지하차도 침수 3명 사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23일 부산 지하차도 침수 3명 사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하지만 성인 키를 훌쩍 넘는 수심에서 길이 175m의 지하차도를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부는 수영하듯이 지하차도 난간 쪽으로 달려가 난간 벽을 붙잡았고, 일부는 자신의 차량 위로 올라가 구조대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은 6명을 구조했다. 익수 된 채 발견된 60대 남성과 20대 여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숨졌다.  
 
 구조대원 100여명은 펌프 등의 장비로 배수 작업을 하며 구조 작업을 병행했다. 잠수하며 수색한 결과 24일 오전 3시쯤 익수 된 채 숨진 50대 남성을 발견했다. 배수 작업은 24일 오전 7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지하차도는 주변 지반보다 최소 4m 이상 낮기 때문에 폭우가 쏟아질 때는 지하차도가 빗물을 가두는 저수지로 돌변한다”며 “동구 지하차도는 평소에도 침수 우려 지역이었는데 결국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집중호우 시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지하도로를 통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24일 부산소방재난본부 금정구조대 대원들이 부산 연제구 온천천 인근 한 아파트 입구에 침수된 차량에서 인명 검색을 하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24일 부산소방재난본부 금정구조대 대원들이 부산 연제구 온천천 인근 한 아파트 입구에 침수된 차량에서 인명 검색을 하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이번 사고는 2014년 8월 25일 시간당 최대 130㎜의 비가 내려 침수된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서 2명이 숨진 사고와 판박이다. 당시 70대 외할머니와 10대 손녀가 지하차도 안 침수된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길이 244m, 높이 4.5m에 달하는 이 지하차도는 당시 금정산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온 빗물로 순식간에 잠겼다.
 
 배수펌프가 있었지만, 배전반이 물에 잠겨 작동조차 하지 않았다. 부산시는 이후 ‘제2의 우장춘로 지하차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부산 전역 35개 지하차도 대부분의 전기시설을 지상으로 옮기고 배수펌프 용량을 증설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초량 제1지하차도를 비롯해 대남·구서·당감·문현·우장춘·내성 등 길이가 100m 이상 되는 지하차도가 많고 배수펌프 용량은 부족해 여전히 폭우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집중호우가 내린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홈플러스 앞 사거리 도로가 침수돼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집중호우가 내린 24일 오후 부산 연제구 연산동 홈플러스 앞 사거리 도로가 침수돼 차량 운행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3일 밤부터 해운대 211㎜를 비롯해 기장 204㎜, 동래 191㎜, 중구 176㎜, 사하 172㎜, 북항 164㎜, 영도 142㎜, 금정 136㎜ 등 부산 전역에 물폭탄이 쏟아졌다. 사하구의 경우는 시간당 86㎜의 장대비가 단시간에 쏟아졌고, 해운대 84.5㎜, 중구 81.6㎜, 남구 78.5㎜, 북항 69㎜ 등 기록적인 시간당 강우량을 보였다.
 
 이번 폭우로 산사태, 옹벽 붕괴, 주택과 지하차도 등이 침수돼 79명이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24일 오전 0시쯤 금정구 부곡동 한 아파트 인근에서 축대가 무너져 약 20톤의 토사가 아파트 방면으로 흘러내렸다. 앞서 23일 오후 11시 30분 연제구 연산동 한 요양원 지하가 침수돼 3명이 구조되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10시 15분에는 해운대구 우동 노보텔 지하주차장에서 급류에 휩쓸린 2명이 구조됐다. 
 
 오후 9시 26분에는 수영구 광안동에서 옹벽이 무너져 주택 3채를 덮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주택에 있던 2명은 구조됐고 인근 주민은 긴급 대피했다. 비슷한 시각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 한 이면도로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1명이 구조됐다. 오후 9시 28분 동구 범일동 자성대아파트가 침수되면서 주민 3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불어난 물에 수정천이 범람해 주변 상가나 주택이 침수 피해를 보았다.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집중호우로 침수된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모습. 부산역은 현재 무정차 통과 중이다. 연합뉴스

호우 경보가 내려진 23일 오후 집중호우로 침수된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모습. 부산역은 현재 무정차 통과 중이다. 연합뉴스

 부산시가 집계한 피해 통계를 보면 폭우에 발생한 이재민은 동구가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수영구 8명, 남구 6명, 기장군·중구 각각 1명씩 총 59명에 달했다. 부산 곳곳에서 침수된 차량은 141대에 달했다. 24일 오전 5시 기준 부산소방재난본부에 접수된 비 피해 신고는 총 209건이다.
 
 23일 한때 도시철도 1호선 전동차가 부산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동해남부선 부전∼남창 구간 무궁화호 열차, 신해운대∼일광 구간에서 전철 운행이 중지되기도 했다. 24일 오전 6시부터 전동차는 모두 정상 운행 중이다. 
 
 경남에서도 23일 평균 87.9㎜의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곳곳에서 비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날 오후 9시 50분쯤 경남 합천 덕곡면 독산마을에서는 폭우에 트럭이 수로로 추락해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오후 10시 20분 진주 집현면 덕오리 도로가 침수돼 승용차에 고립돼 있던 2명이 119 구조대원에 의해 구조됐다. 이 외에도 도로침수 4건, 토사 유실 1건, 낙석 1건, 농경지 매몰 등의 침수 피해가 이어졌다.
 
부산·경남=이은지·위성욱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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