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상연의 시시각각] 팬클럽 정부, 말발이 서겠나

중앙일보 2020.07.24 00:58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조선 말엔 벽서(壁書)가 많았다. 삼정(三政)이 문란하고 세도정치가 극심하자 당파나 시정을 비난하는 글을 써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붙였다. 글 모르는 하층민의 격쟁(擊錚)도 빈발했다. 나라님 행차에 징이나 꽹과리로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토해냈다. 시리즈로 이어진 대학가 대자보와 신발 투척을 보면서 격쟁과 벽서를 떠올렸다.
 

반대편 목소리만 틀어막아선
권위, 존경받는 정부 못 꾸려
차라리 ‘우리만 옳다’ 말하라

청와대를 욕하거나 대통령을 향해 구두를 던지는 건 일단 불쾌하고 무례한 짓이다. 하지만 민주국가라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정권에 대한 항의다. 정확하게 맞히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게다. 내 말 좀 들어 달라는 격쟁의 마음이다.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대선 후보 시절 전국농민대회에서 연설하다 계란을 맞자 “정치하는 사람들이 계란도 맞아 줘야 국민들 화가 풀리지 않겠습니까”라고 웃어넘겼다.
 
주변에 신발이 떨어질 때 대통령이 저벅저벅 다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라고 다독였다면 아마도 울림을 만들었을 거다. 그게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정치다. 야당 대표 시절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임금님들조차 퍼포먼스에 귀 기울였다.
 
그런데 이 정부에선 대통령을 비판한 죄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궁지에 몰린 국민이 자꾸 늘어만 간다. 마치 공안사건 다루듯 호들갑을 떨면서 병아리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들이댄다. 내 편에도 그러냐면 그렇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회 담장을 무너뜨린 민주노총 폭력 시위 땐 경찰이 뻔히 바라볼 뿐 속수무책이었다. 한참 뒤 마지못한 소환에 조합원들은 경찰서 앞에서 승리의 ‘V’를 만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폭력 면허’라고들 했다.
 
지금 정권의 핵심들은 1980년대 대학가를 돌며 반정부 대자보를 붙였다. 터무니없이 날조된 허위사실도 많았다. 정권이 트집잡으면 ‘표현의 자유’를 무기로 내세웠다. 군사독재 시절도 아닌데 캠퍼스에 대통령 풍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은 건조물 침입죄로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지사나 은수미 성남시장은 살아났다. ‘코드 판결’이 안 되려면 법원은 과거 정권 인사들의 ‘적폐 딱지’에도 똑같이 엄격하고 분명한 증거를 붙여야 했다. 과연 그런가.
 
정부란 이해집단 간 분쟁의 중재자로서 화해와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권위와 존경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팬클럽의 목소리를 앞세워 팬클럽만 보고 가는 팬클럽 정부라면 추상같은 말발이 서질 않는다. 지금 나라 꼴이 꼭 그렇다. 정부 실종에 국정은 총체적 수렁이다. 내정이든 외정이든 멀쩡한 곳이 없다. 꾸준한 건 집권 세력의 셀프 칭찬뿐이다. 내 편만 알고 챙기던 조선시대 집권당이 그러다 망했다.
 
그렇다고 노론당처럼 ‘우리 편만 옳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도 아니다. 설마 했던 민주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은 이제 현실이다. 사실상 야당 없는 여당만의 1당 국회다. 그런 국회에서 대통령은 또다시 ‘협치’를 들고 나왔다. 듣는 야당이나 ‘우리 편 아닌’ 국민은 어리둥절함을 넘어 모욕감을 털어놓는다. ‘신발 투사’로 불린 구두 주인은 ‘국민이 느끼는 치욕을 대통령도 느껴 보시라고’란 취지로 동기를 설명했다고 한다.
 
북 치는 손 묶는다고 장구 치는 손까지 잡아 둘 수 있는 건 아니다. 문란한 삼정을 바로잡자면 집권 노론이 격쟁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어야 했다. 지금의 청와대와 여당만의 국회도 마찬가지다. 오만과 독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원 역시 정권 아닌 법치의 보루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문 대통령이 말했던 민주주의다. 제발 그래 달라고 꽹과리도 치고 신발도 던지는 거다. 정말 그런 나라라면 ‘그 끔찍한’ 트럼프가 문 정권을 거론하며 ‘끔찍하다(terrible)’란 소리까지 해댈 수 있었겠나.
 
최상연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