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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의 의학노트]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중앙일보 2020.07.24 00:35 종합 27면 지면보기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전염병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물론 백신이다. ‘마마’라고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얽게 만들었던 천연두는 1798년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한 우두법(牛痘法) 덕에 1977년 소말리아에서 진단된 환자를 마지막으로 박멸됐다. 효과적인 백신이 있는 홍역·풍진도 이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백신 개발 단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낳은 것은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지만
특허권 문제 해결 쉽지 않을 것
노력에 대한 보상 필요하지만
누구나 혜택 누리게 지혜 모아야

20세기 전반 폴리오 바이러스는 미국에서도 큰 골칫거리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도 30대 후반에 감염돼 양다리가 마비됐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1938년 국립 소아마비 재단이라는 단체의 설립을 돕기도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1952년에 가장 나빴다. 미국 전역에서 무려 5만8000명 정도가 감염되었고 사망자가 3000명도 넘었다. 당시 미국인들이 폴리오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워했던 것은 핵전쟁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백신 개발에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피츠버그 의과대학의 조나스 소크 교수였다. 그는 ‘10센트의 행진’으로 이름을 바꾸고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동참할 정도로 기금 모금 활동을 활발히 펼친 국립 소아마비 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소크 교수는 살아있는 바이러스로 백신을 만들어야 효과적이라는 당시의 믿음과는 달리 포르말린으로 처리하여 불활성화한 폴리오 바이러스로 백신 개발을 시도해 동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장류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소크 교수는 1952년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사람에게 투여해보는 가장 중요하면서 위험한 단계에 진입했다. 백신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우선 몇 명에게 주사해보는데, 놀랍게도 그들 중에는 소크 교수 자신과 그의 부인, 그리고 세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아홉 살이었던 장남 피터는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시험용 백신을 가지고 와서 자신과 동생들에게 주사했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바늘이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는지 전혀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은 제 머리 속에 또렷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피터는 왜 자신이 주사를 맞은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경험 때문인지 그 역시 백신을 연구하는 의사로 성장했다.
 
의학노트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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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개발한 백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소크 교수는 1954년에 대규모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참여자의 절반은 백신이 아닌 위약을 접종하는 방식의 연구였는데도 스스로 ‘폴리오 개척자’라고 부르는 자원자들이 줄을 이었다. 부모의 동의를 받고 참여한 아이들이 그해 4월에만 20만명이 넘었다. 그렇지만 불과 몇 주 만에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4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접종 후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10명은 결국 사망한 것이다. 조사 결과 한 회사에서 제조한 백신에 살아있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전체 임상시험은 즉시 중단됐다. 그렇지만 당시 미국 사회는 백신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임상시험은 곧 재개되어 모두 180만명의 어린이가 연구에 참여했다.
 
이윽고 1955년 4월, 소크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백신의 특허권은 누구에게 있냐고 묻자 그는 “글쎄요, 사람들에게 있겠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특허는 없습니다. 당신이라면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소크 교수가 특허권을 흔쾌히 포기했던 것은 물론 투철한 인류애 때문이었지만, 백신의 개발과 검증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부와 참여가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은 어떨까? 이미 여러 나라의 기관과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개발 중인 백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백신 개발에 투입한 자원과 피나는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개발 단계 백신의 임상시험에 기꺼이 자원할 사람들의 역할도 분명히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특허료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 사람들만 백신을 맞고 형편이 어려운 나라의 국민들은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면 그건 그야말로 악몽이다. 부디 인류가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내길 기대한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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