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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코로나 위기 극복 노사정 합의 결국 도루묵

중앙일보 2020.07.23 20:48
이달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건물로 들어서는 김명환 위원장을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1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건물로 들어서는 김명환 위원장을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결국 민주노총에 의해 무산됐다. 23일 민주노총은 제71차 임시 대의원 대회를 열어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추인 부결
지도부 사퇴하면 비대위 체제로 운영
사회적 대화 참여 사실상 물 건너가

한국노총, "대표자 다시 만날 일 없다"
경사노위 중심으로 논의 활성화 제안

대의원 대회에 앞서 1480여 명의 대의원 중 800여 명의 대의원이 합의 반대에 서명했다. 이날 투표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투표를 앞두고 찬성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서명은 보이지 않는 위력에 의해 할 수 있지만, 온라인 투표는 온전히 자기 생각을 담기 때문이다.

집단지도체제 민주노총, 대화해도 추인 받아야…합의 무산 예견

사실 노사정 합의 불발은 예견됐다. 민주노총의 독특한 지도체제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집단 지도 체제다. 위원장의 지도력으로 운영되는 체계가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합의해도 중앙집행위원회 등 집단 지도 체제에 따른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협상 과정에서 어렵게 합의해놓고 민주노총으로 돌아가면 휴짓조각으로 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다.
 
이 때문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 이전에 경영계와 한국노총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협상 결과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협상에 나서야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명환 위원장 사퇴 입장…투쟁 중심 운영방식 가속화

대의원 대회에서 합의문이 부결되면서 사실상 민주노총의 현 지도부는 붕괴 국면에 직면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부결되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사회적 대화 참여의 길도 막혔다. 위원장 사퇴에 따른 선거를 앞두고 선명성 경쟁이 더해져 투쟁 중심의 민주노총 운영방식이 더 가속화할 수 있다. 노사정 합의안 부결은 온건파인 국민파 대신 강경파인 중앙파와 현장파의 의견이 관철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정부, 경사노위 놔두고 민주노총 요구 수용해 편법 대화기구 운영 물거품…정부 책임 논란

정부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여 법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제쳐놓고 별도의 대화체를 구성해 협상을 진행했다. 한국노총은 이를 편법으로 규정하고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경사노위에서 논의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회의를 주재하는 등 정부는 밀어붙였다. 일종의 편법을 정부가 주도한 셈이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삼청당)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에 참석했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이날 협약식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불참으로 취소됐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와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삼청당)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에 참석했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이날 협약식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의 불참으로 취소됐다. 뉴스1

 
정부가 이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서 편법 대화체 운영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집단지도체제인 민주노총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럴 줄 몰랐다"며 민주노총 탓으로 돌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다 민주노총이 강경파가 주도하는 현장 투쟁 중심의 운영 방식을 대세로 잡으면 사회적 대화를 요구한 정부는 더 난처해진다.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은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으면 그에 따른 권리도 없다.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경사노위에서 후속 논의"…민주노총과 선 긋기

한국노총은 이를 예견한 듯 장막을 쳤다. 한국노총은 당초 이 대화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꺼렸던데다 민주노총 내부에서의 통과 가능성에도 회의적이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 앞서 "합의문이 민주노총에서 통과되더라도 노사정 대표자끼리의 새로운 만남은 없다"며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다시 노사정 합의문 서명식이 열리더라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민주노총과 정부가 손을 잡고 벌이는 이벤트의 들러리로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사노위에서 논의해도 합의문 없는 후속 논의하는 꼴 

한국노총은 대신 경사노위에서 후속 논의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노총의 이런 구상은 민주노총과 별개로, 법적 기구를 활용한 공식적인 대화채널을 복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민주노총은 투쟁으로 합의를 저지하고 나설 전망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간의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경사노위에서의 논의가 순항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합의가 안 돼 사실상 폐기된 문안을 놓고 후속 논의를 하는 모양새 자체가 난센스여서다. 한국노총은 "문제는 속도"라며 조속한 후속 조치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경영계, 이벤트형 논의 자제…노동개혁 준하는 협상 요구할 듯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영계는 난감해한다. 특히 합의 과정에서 경영계는 얻은 게 거의 없이 퍼주기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 위기 국면에선 직장 내 배치전환이나 휴직 같은 것이 필요하고, 임금 자제나 동결도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와 노동계의 협공에 모두 접었다. 경제단체 관계자 "우리는 빈손"이라며 "위기 상황에 노사정이 합의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이벤트에 끌려다니다 끝난 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합의가 안 돼 잘 됐다. 경사노위 후속 논의는 원점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진짜 개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상 노동개혁에 준하는 협상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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