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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관 기다렸다가 또 보러 왔죠"...덕수궁관 서예전 다시 '활기'

중앙일보 2020.07.23 15:03
코로나19로 두 달 가까이 휴관했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22일 재개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23일 우산을 들고 전시장을 찾은 한 관람객의 모습 . 최정동 기자

코로나19로 두 달 가까이 휴관했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22일 재개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23일 우산을 들고 전시장을 찾은 한 관람객의 모습 . 최정동 기자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3일 오전 10시 30분.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들고 서울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는 여러 사람이 눈에 띄었다. 우중 산책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하 근현대 서예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이었다. 오전 시간이라 전시장 안은 한적했지만, 이른 아침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묵향 그윽한 전시를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최초 서예기획전
코로나19에 휴관한 채 폐막될 뻔
22일 재개관 관람객 꾸준히 찾아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60대 관람객은 "휴관에 들어가기 전에 전시를 한 번 봤는데 다시 보고 싶어서 오늘 또 왔다"면서 "그동안 재개관을 기다려왔다. 이렇게 귀한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두 달 가까이 휴관에 들어갔던 국립현대미술관이 22일부터 재개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온라인 사전 예약제와 시간당 관람 인원을 제한하는 '거리두기 관람' 형식이지만, 22일부터 미술관엔 관람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덕수궁관의 근현대 서예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51년 만에 처음으로 여는 서예기획전인 이 전시는 그 규모와 내용 면에서 전례가 드문 전시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관객과의 조우가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빛 못 본 서예전  

본래 일정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근현대 서예전은 3월 12일에 개막해 6월 9일에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개막이 미뤄지면서 전시는 5월 6일까지 두 달 가까이 어둠에 갇혀 있었다. 대신 미술관은 현장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안내하는 온라인 전시 투어 프로그램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로 공개했다. 1시간 23분 28초짜리 이 영상은 현재까지 8만여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전시 현장을 관람객이 찾은 건 5월 6일부터 30일까지 약 20여일. 그러나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확산하자 미술관은 다시 무기한 휴관됐다. 재조정한 일정에 따르면 폐막은 7월 26일, 그러나 미술관은 7월 22일에 재개관하면서 전시를 8월 2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덕수궁관이 다시 문을 열면서 현재 서울에선 두 개의 대규모 서예전이 함께 열리는 양상이 됐다. 지난 6월 개막한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한국근현대서예명가전'은 오는 8월 16일까지 열릴 예정. 두 전시는 정통 서예전(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과 미술사의 관점에서 조망한 서예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각각 그 성격이 달라 함께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하다.  
 

총 300여 점 출동 대규모 전시  

이번 전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서예전'이 아니다. 회화와 서예의 관계, 서예가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한국 서단의 흐름과 서예의 발전 과정을 짚으면서도, 전각과 회화, 도자, 미디어 아트까지 아우른다. 따라서 전시에선 해방 후 왕성한 활동을 펼친 한국 근현대 서예가 12인의 작품과 함께 김환기·김창열·이우환 등의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이유다. 
 
김환기, '항아리와 시' (1954).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항아리와 시' (1954). 개인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그렇다면 김환기(1913~1974)의 유화 '항아리와 시'(1954)는 어떤 맥락에서 이 전시에 나왔을까. 배원정 학예사는 "이 작품은 문인화의 시서화일치(詩書畵一致) 사상을 수묵이 아닌 유채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며 "제발을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서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김환기 특유의 미감이 담겨 있는 현대적 문인화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운보 김기창(1913~2001)의 문자추상 작품인 '문자도'(1980)도 주목할 만하다. 진한 먹으로 예서필의 두툼한 획으로 완성한 작품은 40년 전 작품인데도 더할 나위 없이 현대적으로 보인다. 
 
총 4개의 전시장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을 조명한 2부 전시장이다. 20세기 한국 서단을 대표하는 서예가 소전 손재형(1903~1981)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탁본'(1956), 소암 현중화(1907~1997)의 글씨 '취시선'(1976), 강암 송성용(1913~1999), 일중 김충현(1921~2006) 등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23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전시를 보고 있는 관람객. 최정동 기자

23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전시를 보고 있는 관람객. 최정동 기자

철농 이기우의 전각 작품 '장생안락 부귀존영'. 황창배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철농 이기우의 전각 작품 '장생안락 부귀존영'. 황창배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소암 현중화의 행초 작품 '취시선'(1957).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듯 가늘고 길면서도 절도 있게 쓴 글씨가 인상적이다. 소암기념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소암 현중화의 행초 작품 '취시선'(1957).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듯 가늘고 길면서도 절도 있게 쓴 글씨가 인상적이다. 소암기념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동영상 화면까지 동원해 전각 예술의 아름다움을 특별히 조명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석봉 고봉주(1906~1993)와 철농 이기우(1921~1993)의 작업을 섬세하게 조명한 대목이다, 이기우는 전통과 현대성을 융합해 한국 전각사의 수준을 높여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밖에도 초정 권창륜, 하석 박원규, 포헌 황석봉 등 현대서예가들의 실험정신이 넘치는 작품들도 함께 볼 수 있다. 
 
배 학예사는 "1년 동안 준비한 전시가 관람객을 만나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될까봐 마음을 졸였다"며 "다행히도 재개관일부터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예문화가 현대의 다른 장르와 소통하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전시가 우리 현대 미술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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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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