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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절대 권력은 절대 타락한다

중앙일보 2020.07.23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 비서가 폭로한 ‘시장님 심기 관리 매뉴얼’은 충격적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세기 전 왕조시대로 회귀한 착각이 들게 한다. 낮잠 주무시는 시장님을 깨우고, 벗어놓은 젖은 속옷을 정리하고, 혈압을 재고, 주말 새벽엔 같이 조깅을 하는 게 여성 비서가 해야 하는 업무였다니….
 

‘6층 사람들’은 절대 권력의 상징
견제없는 권력 도취가 부른 비극
집권세력의 탐욕과 추태, 도넘어

서울을 스마트 시티로 만들겠다며 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팀까지 두며 IT 전도사를 자처해온 그가 왜 낮잠 자고 깨는 단순한 일을 스마트폰 알람 앱 대신 비서에게 의존해야 했을까. 한글만 읽을 줄 알면 혼자서도 간단히 할 수 있는 혈압 측정을 왜 비서에게 시켰을까. 집무실에 달린 침실과 샤워실은 또 뭔가. 막노동꾼도 아닌 그가 굳이 한낮에 샤워를 해야 했다면 10여분 거리에 있는 시장 공관에 잠시 다녀오면 됐을 일 아닌가. 도무지 내 상식으론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서울시 직제표가 눈길을 끈다. ‘서울시장’보다 윗선인 최상층에 ‘시민’을 올려 놓았다. 생소한 이름의 젠더정책팀과 젠더 특보도 있다. 페미니스트 시장의 이미지를 노린 것이겠지만 그의 비극적 최후로 드러난 건 봉건왕조와 같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더 큰 권력을 향해 줄달음쳤던 제왕적 시장의 어두운 이면이다.
 
박 시장은 2011년 ‘안철수 현상’에 편승해 극적으로 서울시장을 꿰찼지만, 이후 3선 가도는 거침이 없었다. 견제와 경쟁이 사라진 그에겐 거칠 게 없었다. 같은 생각으로 무장된, 시민단체와 운동권 출신 동조자들이 서울시와 산하기관을 겹겹이 에워쌌다. 이들 ‘6층 사람들’은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쟁점이 됐다.
 
“… 그러니까 비선 실세니 6층 사람들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거 아닌가” “시청 행정조직은 친목 단체가 아니다” “시 조직이 기형화되고 왜곡됐다” “서울시 산하 공사에서 박 시장과의 친분, 정치 성향을 잣대로 간부들의 성향을 분류하고 평가한 문건이 있다.”(2017년 국토교통위 국감)
 
‘6층 사람들’은 박원순 권력의 부상과 추락을 상징하는 동의어다. 9년간의 장기 집권, ‘원 보이스, 원 팀’의 패거리 사고로 똘똘 뭉친 그들은 비판과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무관용의 절대 왕국을 구축했다. 22일 있었던 피해자 측의 폭로가 이를 말해준다. “4년 넘는 동안 성 고충 전보 요청을 20명 가까이 되는 전·현직 비서관들에게 말해왔다. 그러나 시장을 정점으로 한 업무체계는 침묵을 유지하게 만드는 위력적 구조였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피해자의 호소를 “그럴 분이 아니다”는 한마디로 묵살할 만큼 권력에 도취해 자기들만의 성(城)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감시·견제해야 할 서울시 의회마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전체 110석중 102명이 민주당이다. 온통 ‘내 편’ 뿐인 탄탄대로가 역설적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한 독약이 된  셈이다. 새삼 ‘절대 권력은 절대 타락한다’고 한 액튼 경의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며칠 전 만난 한 원로는 임기 초반,박 시장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 인사는 “오세훈 시장 사람들 중에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이전 사람이라고 내치지 말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중용해라. 측근들만으론 서울시 같은 거대 조직을 절대 끌고 가지 못한다. 성공의 관건은 측근 참모들과 전문 관료들을 조화롭게 발탁해서 균형 있는 팀으로 만드는 데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권력의 속성을 꿰뚫는 천금같은 충고다. 만약 박 시장이 이 원로의 충고를 실천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번 같은 비극적 결말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권력에 도취한 건 서울시뿐 아니다. 행정·사법·지방권력에다 4월 총선으로 입법권력까지 거머쥐게 된 집권세력의 탐욕과 추태가 도를 넘고 있다.  
 
여당은 박 시장을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는 사람” “맑은 분”으로 칭송할 뿐 그의 성추행에 대해선 유감 표명조차 없다.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협치를 강조한 날, 민주당은 정보위원장까지 독차지해 18개 상임위 싹쓸이를 완성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의 오기어린 부동산 대책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도 사과 한마디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충돌해온 추미애 법무장관은 국회에서 보란듯이 윤 총장 아내와 장모 관련 자료를 꺼내 읽는 몰염치한 모습을 연출하고도 오히려 당당하다.  
 
절대권력에 취해 휘청대는 이들의 모습에서 라틴어 속담 하나가 떠올랐다. “신은 멸망시키고자 하는 자에게 먼저 광기를 부리게 한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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