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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위기에 더 강해지는 류현진 ‘강심장’이 다시 뛴다

중앙일보 2020.07.23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강심장’ 류현진은 늘 위기에 더 강했다. 그의 야구가 다시 시작된다. [USA투데이=연합뉴스]

‘강심장’ 류현진은 늘 위기에 더 강했다. 그의 야구가 다시 시작된다. [USA투데이=연합뉴스]

#1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아들이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씩씩거렸다. 놀란 아버지가 이유를 물었다. 아들은 “6학년 형한테 밀려서 경기에 못 나갔다”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안심했다. “4학년이 6학년에게 지는 건 당연하다. 6학년이 됐을 때 4학년에게 지지 않으면 된다”고 다독였다. 아들은 금세 차분해졌다. “알았어.” 짧은 대답을 남기더니 마당에 나가 공을 잡았다. 아버지는 얼마 후 아들이 6학년 형들을 밀어내고 에이스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토론토 이적 후 25일 첫 선발등판
부상·재활 견디며 쓴 반전의 역사
부정적 전망 속 맞이하는 새 시즌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노력형 천재

#2 고교 1학년 아들은 언젠가부터 자꾸 “팔꿈치가 아프다”며 인상을 썼다. 부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매번 대회가 끝나면 단골 병원에 보내 정밀 검진을 받게 했다. 병원에선 늘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다른 병원에 갔다. 의사는 “인대가 너덜너덜해졌다. 왜 이제야 왔냐”고 혀를 찼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어머니는 울었다. “투수가 재밌다”며 신나게 웃던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전 재산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 빠졌다.
 
며칠 뒤,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담담하게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이 병원이 팔꿈치 수술을 잘한대. 빨리 수술부터 받아야 해.” 수술 시간은 짧았지만, 재활엔 1년이 걸렸다. 인천에서 오전 7시 좌석버스를 타면, 2시간 20분 후에야 서울 강남의 병원 앞에 내렸다. 아들은 왕복 다섯 시간 가까운 길을 매일 한마디 불평 없이 오갔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1년 뒤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3 선수 이름은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이다. 그는 처음부터 ‘심장’이 가장 강한 투수였다. 프로에서 걸어간 길도 그랬다. 반전과 전화위복의 역사였다. 팔꿈치 수술 이력 탓에 연고 구단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한화 이글스에서 데뷔한 첫 시즌, 리그를 평정하며 실력을 보여줬다. 7년 뒤 메이저리그(MLB) 포스팅에 나서자 많은 전문가가 “큰 금액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문 LA 다저스가 2573만 달러(당시 약 280억원)를 내고 그를 데려갔다.
 
계약서에 사인한 뒤에도 “천하의 류현진도 빅리그에선 평범한 투수일 것”이라고들 했다. 첫 두 시즌 연속 14승으로 편견을 무색하게 했다. 심지어 2015년에는 투수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는 어깨 수술을 받았다. 지난 시즌 MLB 평균자책점 1위에 올라 그 속설마저 깨뜨렸다. 토론토는 자유계약선수(FA)가 된 류현진에게 4년 8000만 달러(약 929억원)를 안겼다. 구단 FA 투수 역대 최고액이다.
 
이적 후 첫 시즌을 맞이하는 올해도 역시나 회의적 전망이 고개를 든다.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 동부지구 팀의 강타선, 세 시즌을 괴롭힌 부상 이력 등이 그 근거다. 그러나 지금껏 그가 증명한 건 위기가 올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거였다. ‘이번엔 어려울 것’이라고 할 때 참모습을 드러낸다. KBO리그의 류현진이 그저 ‘천재’였다면, MLB의 류현진은 ‘노력하는 천재’다. 노력의 끝은 짐작할 수 없다.
 
#4 2010년 기사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마침내 선동열의 후계자를 찾았다’. 류현진이 평균자책점 1.82를 기록한 시즌이다. 그때 느낀 놀라움을 특별한 표현으로 전하고 싶었다.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류현진은 이미 한국 야구의 ‘심장’이다. ‘MLB가 개막하는 25일(한국시각), 류현진이 다시 마운드에 오른다’. 그냥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이걸로 됐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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