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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폐암 의심 진단에 아버지 "나 그냥 이대로 살래"

중앙일보 2020.07.22 15:00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5)  

앗! 출근길, 지하철 출구를 나가는 데 비가 내린다. 반사적으로 계단에서 누군가 내민 전단지를 받아 머리에 얹고 뛴다. 비 사이로 달린다고 달렸건만 사무실 현관에 도착하니 발도 머리도 젖었다. 힘없고 부슬거려 저녁에 감고 자면 빈약해져 아침에 감고 드라이해야 하는 머리카락, 정성껏 말려 헤어롤로 볼륨 살려가며 마무리했건만 출근하기도 전에 앞머리가 축 처졌다.
 
가방에 우산이 있는데도 나는 왜 우산을 쓰지 않았을까? 케이스에 3단으로 고이 접어 넣은 우산 펴는 것이 아까워 새벽에 일어나 감고 정리한 머리를 젖힌다? 누군가 사자성어 뜻을 묻는다면 예를 들기에 딱 적당한,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이를 차질 없이 실행하고자 노력하는 데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내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유형의 실수다.
 
비가 내리는 출근길에 우산 펴는 것이 아까워 비를 맞았다가 아침부터 정성껏 단장한 머리를 망쳤다. 소탐대실이다. 아버지 일도 그랬다. 병원 예약을 미뤘다가 폐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사진 pexels]

비가 내리는 출근길에 우산 펴는 것이 아까워 비를 맞았다가 아침부터 정성껏 단장한 머리를 망쳤다. 소탐대실이다. 아버지 일도 그랬다. 병원 예약을 미뤘다가 폐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사진 pexels]

 
아버지 일이 그랬다. 지난해 말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예방의학전문의인 둘째 형부 조언을 들어 검사 일정을 잡았다. 추가 검사 소견 나온 몇 곳을 중심으로 진료를 예약해 왔는데, 올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예약을 두 차례 미루게 되었다. 그런데 진료일 직전인 5월 20일 아버지 얼굴에 갑자기 마비가 오면서 뇌졸중이 발병한 것이다. 평소 혈관질환이 있으셨던 터라 급성 뇌경색이 온 것인데, 응급실에서 찍은 사진에서 설상가상 폐암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건강 검진을 받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6개월가량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2.2cm(1기)이던 암세포가 3.3cm(2기)까지 자랐다. 그간 나는 보건소에서 혈압약만 처방받아 드시며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담배도 즐겁게 피우시던 아버지를 ‘고위험 환자’의 길로 인도해 왔다. 정밀건강검진을 계기로 온갖 똑똑한 척 다하며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이 과에서 저 과로 병원 진료 이력을 늘려왔던 것이다. 심지어 코골이가 심해 수면무호흡증이 염려되던 아버지를 위해 ‘양압기’ 처방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는 언론보도를 접하자마자 이를 위한 수면검사를 바로 예약할 정도로 신속하고 철두철미하다 자부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건강검진 후 바로 이어서 검사를 진행했다면 훨씬 좋은 조건에서 수술받고 깨끗하게 완치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속된 말로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종합병원에 가고, 의사 소견서까지 받아둔 마당에 왜 예약을 두 번이나 미뤘는지, 그 시점 나의 행동과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폐암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건강검진 때 찍은 아버지 폐사진에서 수상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어머니가 폐암 수술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어릴 때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고 ROTC 임관 신체검사 때부터 알고 있던 것’이라는 아버지 설명에 그냥 넘긴 것이다. 당시 어머니는 갈비뼈를 두 개나 자르고 대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셨고 무엇보다 통증이 심해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주무시던 때라 아버지는 “네 엄마가 저런데 나까지 무슨 검사냐?” 하시며 질색하셨다.
 
그때는 어머니 때문에 온 가족이 정신이 없었다 치고, 이번엔 왜, 왜 그랬을까? 담배는커녕 가스대 앞에서 평생 요리만 한 엄마도 폐암에 걸렸는데, 흡연 경력이 자그마치 65갑년인(하루에 1갑씩 65년을 피웠다는 의미) 아버지가 폐암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건강검진 결과를 무시할 것이면 검진은 왜 받았으며, 아버지가 예약을 미루자 할 때 왜 쉽게 동의했는지. 소견서에 명확히 폐암이 의심된다고 되어 있는 데도 왜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는지? 복기하고 또 복기해도 여전히 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이 본인에게도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너무나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기에, 나 역시 연로한 아버지에게 수술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사진 pxhere]

아버지는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이 본인에게도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너무나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기에, 나 역시 연로한 아버지에게 수술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사진 pxhere]

 
“아무 통증도 증상도 없는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니? 나는 병원이라면 이제 진절머리난다. 더 이상 호흡기내과 진료는 안 받는다.”
 
진료받고 나오는 길, 아버지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조직검사 후 아셔도 될 것을, 괜히 보청기를 끼고 오시게 해서 미리 다 아시게 된 게 아닌가 아차 싶었다. 의사는 모양으로 볼 때 폐암으로 의심되니 조직검사를 위한 입원 수속과 추가 검사를 받으라 하셨지만, 아버지는 절대 입원하지 않겠다며 예약 자체를 거부하셨다. 이미 나의 무지로 미적거리는 동안 암세포가 1㎝나 커졌다는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입원 수속을 위한 폐검사를 하고 가야겠다 싶어 아버지를 달래보았지만, 큰소리로 호통치며 나무라셨다. 검사 번호표를 뽑으려는 내 팔을 잡아끌 때는 아버지 힘이 이렇게 셌나 싶을 정도로 거칠고 강해 당황스러웠다.
 
거듭된 설득에도 아버지 대답은 “나는 그냥 이대로 살란다”였다.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이 본인에게도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너무나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기에, 나 역시 연로한 아버지에게 수술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조직검사도 하지 않고 덮어버리기엔 이른 초기 상태이고, 수술도 흉강경 수술이 대세라는 말에 일단 검사는 받아야겠다 판단했던 것이다.
 
임의로 입원 예약을 해 놓고 본격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절한 눈빛을 보냈고, 화가 난 듯 말도 아꼈다. 그리고 내 비장의 무기인 편지를 써서 아버지 일기장에 꽂아 두었다. 분명 편지를 보셨을 텐데 아무 말 없으셨다. 며칠 뒤 언니2가 아버지가 쓴 것이라며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내 편지에 대한 답장은 아니었다. 언니들이 먼저 읽고 아버지 마음을 이해해 막내를 설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일기장에 꼽아 놓은 편지, 그리고 아버지가 작성해 언니에게 건네준 편지의 일부. [사진 푸르미]

아버지 일기장에 꼽아 놓은 편지, 그리고 아버지가 작성해 언니에게 건네준 편지의 일부. [사진 푸르미]

 
서로 쉬쉬하며 결국 나에게 전달되어 온 글을 읽는데 기운이 빠졌다. 절절한 아버지의 심경이 느껴져 과연 내가 아버지 삶을 위한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인가 고민되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떠올랐다. 어머니는 완치된 줄 알았던 유방암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받느라 고생하셨고, 이후 뼈와 임파선, 그리고 폐까지 계속 전이되었다.
 
마지막 폐 수술 때는 위치도 까다롭고 체력이 약해진 상태라 수술을 꼭 권하지 않는다는 의료진 조언이 있었지만 수술을 강행했다. 결국 어머니는 의료진 실수와 갈비뼈를 자른 후유증으로 1년가량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나는 만약 암에 걸리더라도 절대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갈등은 깊어졌고, 속절없이 입원 날짜는 다가왔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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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푸르미 공무원 필진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 아버지와 10년째 동거 중인 20년 차 공무원. 26년간 암 투병 끝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했다. 팔순을 넘어서며 체력과 인지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아버지를 보며 ‘이 평화로운 동거가 언젠가 깨지겠지’ 하는 불안을 느낀다. 그 마음은 감춘 채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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