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 제사 없애고 일박이일 가족모임 만들었더니

중앙일보 2020.07.22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0)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후, 우리 형제는 제사를 없애고 일 년에 두 번 공식적인 가족모임을 만들었다. 벌써 20년 전이다. 제사로 인한 우울함과 불편함 대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가족모임을 하며 끈끈한 우애를 다질 수 있어서 좋다. 요즘은 남이 보면 우스운 가족 뉴스로 비공식 모임이 더 잦다. 사는 동안 후회 없이 잘 살다가 가는 것이 먼저 가신 부모님에 대한 예의이고, 삶의 최선이라 생각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는 제사를 없애고 일 년에 두 번 공식적인 가족모임을 만들었다.[사진 Wikimedia Commons]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는 제사를 없애고 일 년에 두 번 공식적인 가족모임을 만들었다.[사진 Wikimedia Commons]

 
사회라는 울타리의 얽히고설킨 뒷담화 소통이 재밌고, 가족과의 대화에서는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게 하고, 그들의 일상을 다듬으면 내 삶의 백과사전이 되기도 한다. 부모님이 떠나고 처음 몇 년은 우리도 남들같이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면 서러웠던 삶의 기억으로 더 우울해질 때가 많았다. 몇 년 후, 하늘에서 지켜볼 부모님 마음이 이런 모습은 아닐 거라며 제사를 없애기로 하고 가족모임으로 변경했다.
 
점점 기다려지는 모임이 되었다. 그러나 늘 화기애애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엔 격한 말로 투덕거릴 때도 있었고, 상대방은 기억도 못 하는 무안한 기억을 꺼내서 서러움을 풀기도 했다.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는 것은 잘 살아 가는 일이다. 지금은 남녀노소 불문, 어떤 문화축제보다 더 즐거운 소재로 1박2일을 기다리는 모임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 나이도 40대에서 어느새 60대 중반이 되었고, 손자가 다섯이나 딸린 할머니가 되었다. 어렸던 조카들도 Y세대 또는 디지털 세대라 불리는 20~30대가 되고, X세대라 하는 40~50대, 베이비붐 세대인 60대, 내 아버지 세대인 80대 작은아버지까지 참여 인원이 20명이 넘는다. 회비는 없는데 빠지면 벌금이 너무 크다. 재밌고 이상한 법이다. 우리 사남매는 그렇게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제 가족을 끌어안고 제 몫을 하며 잘살고 있다. 
 
나는 어느새 60대 중반이 되었고, 손자가 다섯이나 딸린 할머니가 되었다.[사진 pixabay]

나는 어느새 60대 중반이 되었고, 손자가 다섯이나 딸린 할머니가 되었다.[사진 pixabay]

 
모이면 정치에 ‘정’자도 모르지만 제각각 자기 세대의 입장에서 풀어놓는 ‘썰’에 도취되기도 한다. 그 토론의 치열함이 싸움터 같지만 이해도 되고 쏠쏠한 재미도 많다. 또한 부부가 마주 보고는 풀지 못할 문제도 돌려서 하소연하다 보면 저절로 풀린다. 입장 바꿔 생각하게 하고, 답이 없을 것 같은 사건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 거로 탕탕 바닥을 쳐 판사 흉내를 내고 웃으며 화해한다. 어느 땐, 재롱둥이 손자의 장기자랑에 배꼽 빠지게 웃고 뒤집어지기도 한다.
 
8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일상의 대화도 재미있다.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같은 언어를 쓰지만 설명을 해도 이해 안 되는 외계인의 대화다. 가끔은 우리가 자려는 시간에 그들은 사회 활동을 하러 나간다. ‘지금 시간에 어디를?’, ‘일찍 들어와’ 등등 걱정하면 곧바로 ‘라떼꼰대’로 취급된다. 세상 뉴스를 바라보는 해석도 각각 다르다. 세상이 톱니바퀴처럼 쉼 없이 돌아가는 이유다. 나는 A에서 Z에 이어진 세대를 두루 경험해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요즘은 9포 세대를 넘어 다포세대라 할 만큼 누구와도 대화의 벽을 굳게 닫아걸고 사는 일인 세대, 형제가 많다. 사람의 존재는 사회 안에 있을 때 온전해지는 건데, 다 포기하고 살다 보니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고 두려움과 고독 속에 살아간다. 가족이 멀리 있다면 이웃끼리라도 마음을 열면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된다.
 
형제간의 불편한 관계로 친정을 못 가는 지인은 내 남동생의 부인이 보낸 문자를 보며 정말 부러워한다. [사진 pixabay]

형제간의 불편한 관계로 친정을 못 가는 지인은 내 남동생의 부인이 보낸 문자를 보며 정말 부러워한다. [사진 pixabay]

 
이런 소박한 평화를 주도하고 베푸는 이는 남동생의 부인이다. 20년 넘게 장기 집권하지만 늘 고맙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대장이다. 형제간의 불편한 관계로 친정을 못 가는 지인이 그가 보낸 문자를 보며 정말 부러워한다. 매번 받는 단체문자 추신엔 “형님, 주무실 준비 해서 오시는 거 잊지 마세요”라고 적혀있다. 요즘 시대에는 무언가 안 어울리는 그가 자랑스럽다. 진정한 마음부자다. 그녀를 보고 배운 조카들이 결혼해 또 다른 가족을 화합하고 사랑으로 이끌고 있으니 돌고 도는 사랑의 힘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