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인지감수성 권순일 후임 잘 뽑자" 성범죄 판결 검증단 떴다

중앙일보 2020.07.22 05:00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에 분노한 사람들'에 참여한 시민들이 10일 오후 서초역 앞에서 손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분노한 우리가 간다'를 주제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에 분노한 사람들'에 참여한 시민들이 10일 오후 서초역 앞에서 손씨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분노한 우리가 간다'를 주제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성인지감수성'을 최초로 판시한 권순일(61) 대법관의 후임자 선정을 두고 시민들이 대법관 후보 낙천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요 검증 대상은 대법관 예비 후보자 30명의 성범죄 판결과 젠더감수성이다. 
 
여성학 연구자인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초로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말을 판례로 남긴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을 뽑는 자리라 시민들의 인사검증이 필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21일까지 750여회 공유된 해당 글에는 대법관 후보자들이 피고인을 감형해주거나 집행유예로 풀어준 성범죄 판결이 언급된 댓글들이 달렸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손정우 송환 불허에서 시작된 '낙천운동'

대법관 예비 후보자에 대해 시민들의 검증이 시작된 건 지난 6일 세계최대 아동성착취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전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강영수(54)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의 결정 때문이다. 여론이 들끓었고 강 부장판사가 대법관 예비 후보란 사실이 알려지며 '강 부장판사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의 서명자는 21일 오후까지 51만6511명으로 판사 개인과 관련한 청원으로는 참여자가 가장 많다. 권김 위원은 "강영수 판사님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받아 반드시 '커다란 불꽃'으로 돌려드릴 것"이라며 대법관 후보자 낙천운동이 강 부장판사 결정으로 시작됐음을 강조했다.
 
성인지감수성을 판결에 최초로 언급한 권순일 대법관의 모습.[뉴스1]

성인지감수성을 판결에 최초로 언급한 권순일 대법관의 모습.[뉴스1]

과거 성범죄 판결로 비판받는 후보자들  

시민들이 찾아낸 대법관 예비 후보자의 성범죄 판결 이력을 살펴보면 김용석(57)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학생을 성희롱한 이유로 대학교수를 해임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해 비판을 받았다. 권 대법관이 '성인지감수성'을 최초로 언급하며 파기환송한 판결이 김 부장판사의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허부열(58) 수원지방법원장은 2015년 전 여자친구를 칼로 위협하고 수차례 성폭행한 남성과 7세 아이를 성추행한 60대 경비원을 감형해준 이유로, 한규현(56)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동아리 부원을 성폭행한 남성에게 "반성하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며 실형을 집행유예로 감형해준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반면 김종호(53)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013년 성폭력 피해자 인권보호 우수 사례자로 선정돼 '디딤돌상'을 받은 이력이 공개되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6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이재명 경기도지사 상고심 판결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6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이재명 경기도지사 상고심 판결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낙천운동'에 대한 판사들의 엇갈린 시각 

판사들 사이에선 시민들의 '성범죄 판결' 검증과 낙천운동에 대한 대조적인 시각이 교차한다.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대법관 후보자 선정 과정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시민참여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김 위원도 중앙일보에 "대법관 후보 선정에 시민 참여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수도권에 근무하는 판사는 "판결 검증 자체엔 동의하지만 성범죄 판결만으로 대법관 역량을 판단하긴 제한적"이란 입장을 보였다. 대법관 후보들과 비슷한 사법연수원 기수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한국사회에서 성범죄를 바라보는 인식은 변화해왔다. 과거 판결을 지금의 잣대로 비난하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알린 여성 활동가들의 모임인 edn(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1]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알린 여성 활동가들의 모임인 edn(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 사법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1]

"법원 룰 바뀌기 어렵다" 냉소적 시각도 

시민들의 낙천운동이 대법관 후보 선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란 냉소적인 평가도 나온다. 대법관 후보 선정엔 법원 나름의 '룰'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엔 ▶후보자의 성별과 ▶출신 고향 및 대학▶이념 성향과 과거 판결 ▶청문회 통과 가능성 ▶법원 내에서의 정치 역학 등이 포함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되거나 이름이 오르내린 후보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23일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최종 후보 3~4인에 오를 후보자로, 올해 초 조희대 전 대법관 후임자 제청 당시 최종 후보에 올랐던 윤준(59)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천대엽(56) 서울고법부장판사을 거론하고 있다. 
 
여성학 연구가 권김현영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관 후보 검증을 제안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여성학 연구가 권김현영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관 후보 검증을 제안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천대엽, 이흥구, 김우진 등 거론  

국가보안법 위반자 중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서울대 운동권 출신 이흥구(57)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김우진(56) 사법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에서 활동했던 김흥준(59) 남부지방법원장 등도 언급된다. 외부 학계 출신 예비 후보 중엔 문재인 대통령과『검찰을 생각한다』를 집필한 김인회(56)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