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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홍콩보다 탈한국이 더 걱정···6000명 생계 걸린 곳 짐 싼다

중앙일보 2020.07.22 05:00 종합 4면 지면보기
자동차부품사 한국게이츠 직원들의 폐업 반발 집회. 뉴스1

자동차부품사 한국게이츠 직원들의 폐업 반발 집회. 뉴스1

대구 달성군에 있는 공장 직원 147명은 이달 말이 되면 직장을 잃게 된다. 이곳에서 자동차 부품용 벨트를 만드는 한국게이츠가 문을 닫기 때문이다. 한국게이츠는 미국 게이츠(51%)와 일본 닛타(49%)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외국인투자기업이다.
 

법인세 싱가포르 1.5배 소득세 2배
외국인 투자 작년보다 35% 줄어

24시간 돌아가는 글로벌 금융사
“주52시간 지키며 일하기 불가능”

대구시는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가 폐업하면 직원뿐 아니라 협력사와 그 가족 등 시민 6000명의 생계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주 권영진 대구시장이 미국 게이츠 본사에 “철수 결정을 다시 생각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지만, 아직 소식이 없는 상태다. 이 회사 직원들은 “중앙정부가 철수를 막아달라”며 청와대 앞 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게이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따른 경제 여파가 영향을 줬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철수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자동차 시장에서 사업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글로벌 사업 환경을 계속 검토해왔다”며 “중대한 사안이어서 (미국) 본사에서도 수많은 선택지와 대안을 고려하며 최대한 신중하게 검토해왔으나, 유감스럽게도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미국 게이츠는 중국에서 생산한 같은 제품을 현대차에 계속 납품할 예정이다. 한국서 철수한 뒤 생산지를 중국으로 옮기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건비를 절감하고 노동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서 철수하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게이츠의 지난해 평균 급여는 5000만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부품사 한국게이츠 직원들의 폐업 반대 집회. 뉴스1

자동차부품사 한국게이츠 직원들의 폐업 반대 집회. 뉴스1

김태운 대구시 일자리투자국장은 “공장 잔류 조건으로 대구시 차원에서 게이츠 측에 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인지도 논의하고 있다”며 “다만 게이츠의 의사 결정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직접투자 지난해보다 34.6% 줄어 

지난 1일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탈 홍콩’ 움직임이 시작됐다. 주변 나라들의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한국은 한국게이츠 사례에서 보듯이 오히려 외국인 투자 유출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실제 올해 2분기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FDI)는 43억85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67억 달러)보다 34.6%나 줄었다.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OECD 평균 FDI 금액이 지난해보다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은 그 수치를 넘어선 것이다.
 
제조업 뿐 아니다. 홍콩이 강세인 금융업을 한국으로 끌어오는 것은 더 요원한 실정이다. 지난 1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금융중심지 전략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금융규제는 투명성을 제고하겠다. 다만 금융허브만을 위한 세제와 고용제도 개편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제와 세제 등은 손대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1년 전보다 34.6% 감소한 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1년 전보다 34.6% 감소한 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가장 큰 걸림돌, 주 52시간제" 

주 52시간제는 기업 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지난 2월 외국계 금융사 대표들은 은성수 위원장을 만나 “외국계 금융사 직원이 해외지점과의 업무협조 등으로 근무시간 외 업무가 불가피한 경우엔 주 52시간 근무 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건의했다. 이후 기획재정부가 금융허브 추진을 위해 실시한 수요조사에서도 외국계 금융사들은 “주 52시간제를 지키며 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부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높은 세율도 한국행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법인세를 보면 한국은 최고세율이 25%로 싱가포르(17%)ㆍ홍콩(16.5%)보다 높다. 소득세율에 대한 지적도 있다. 홍콩은 현재까지 개인소득세율이 최고 15%다. 중국 정부가 최근 홍콩에도 본토의 소득세율(최고 45%)을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고소득 엘리트 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거란 예상이 나오지만, 이동 후보지로 주로 꼽히는 곳은 최고세율이 22%인 싱가포르다. 한국도 근로소득세율이 최고 42%(5억원 초과)에 달하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홍콩법인장을 지낸 박기순 전 중국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중국 부자들이 그간 홍콩으로 갔던 이유는 소득세 때문”이라며 “한국이 이들을 영입하려면 소득세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소득세도 한국 경쟁력 떨어져 

한국은 2009년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고 금융중심지 신설기업엔 법인세ㆍ소득세를 3년간 100% 면제해주겠다고 했지만, 이 제도는 서울엔 무용지물이다. 법에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안의 금융중심지는 제외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때도 안전 문제를 의식한 BMWㆍ씨티그룹ㆍ루프트한자와 사모펀드 등이 일본 본부를 철수했지만, 이들 중 한국으로 옮긴 업체는 없다.  
홍콩 주변국 법인세율 비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홍콩 주변국 법인세율 비교.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상호모순적인 금융중심지 제도를 이참에 과감한 경제금융 특구 추가 지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글로벌 기업들의 탈홍콩) 기회를 잡으려면 단순한 금융규제 정비 정도로는 안 되고 싱가포르ㆍ일본 못지않은 과감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순 전 소장은 “서울 여의도를 금융특구로 지정할 수 있지만, 외국인이 살만한 거주지가 없다”며 “외국인 학교부터 보강해 장기적인 기반시설 구축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도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투자와 고용창출 등 긍정적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며 “세제 혜택, 외국인 학교 등 생활 편의, 주요 시설 접근성 강화 등이 갖춰진 특구를 통해 자본을 유치하면 제조업 위주인 한국 경제를 금융업과 접목해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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