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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볼턴은 틀렸고 비건이 맞다

중앙일보 2020.07.22 00:58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은 그가 네오콘(미국 신보수주의)의 열렬한 추종자였음을 자세히 보여준다. 네오콘은 도덕적으로 악한 타국 정권과는 협력보다 대립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정권 교체를 추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압도적인 군사력 사용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래들리 톰슨은 이를 “플라톤적 이상을 마키아벨리적 수단으로 성취하려는 사고”라 불렀다. 도덕적 단순함과 군사력의 위험스러운 결합이 현실에선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기 일쑤라는 뜻이다. 사실 네오콘 외교는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볼턴은 이에 기반한 대북정책을 밀어붙이려 했다.
 

네오콘 외교는 성공한 적 없고
볼턴의 비핵화 방안은 비현실적
역효과 내는 경협 우선론 대신
비건의 실용적 방안을 다듬어야

네오콘은 소련 붕괴를 자신들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운다. 그 조언대로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 ‘스타 워즈(Star Wars)’라는 군비 경쟁을 의도적으로 벌여 소련을 무너뜨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프로퍼갠더에 가깝다. 서방 학계는 소련 말기 국방비 지출이 그 이전에 비해 총국민소득 대비 1~2% 포인트 증가에 그친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보관소 자료도 이를 지지한다. 소련 정권은 겉으론 ‘스타 워즈’에 대응하여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리는 척했지만 실제는 이전에 해오던 군사력 증강을 지속했을 뿐이었다. 네오콘은 학계 정설을 무시하고 소련 붕괴를 자신들의 공(功)으로 가로챘다.
 
이라크와 리비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도 성공으로 보기 어렵다. 수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독재자는 오래 전 제거됐지만 이라크와 리비아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순으로 5위와 8위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볼턴은 회고록에서 카다피 정권의 몰락은 네오콘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카다피가 국제사회의 제재에 못 이겨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한지 8년 후 시민 항거로 죽었기 때문에 제재와 정권 붕괴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지만 볼턴 스스로 카다피 정권은 외적 압력이 아니라 내부 요인 때문에 무너졌다고 인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론 네오콘 주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네오콘 대북정책은 비현실적이다. 하노이 회담 전부터 볼턴은 먼저 북한의 핵·미사일 신고와 국제사회의 검증이 있어야 하며, 그 후 실제 비핵화를 시작하고 이것이 완료된 다음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빅딜이 이루어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군사적 옵션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제재가 완벽히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당시 이 조건 중 어느 것도 만족되지 않았으며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어 향후엔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도 군사적 옵션에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의 정책은 볼턴과 대조적이다. 그는 현실적·실용적으로 비핵화에 접근한다. 미국 정치와 미·중 관계, 제재 효과 및 한반도 미래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렵다. 이 접근법의 골격은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를 정의하고 그 로드맵에 합의한 상태에서 단계적으로 ‘행동 대 행동’을 교환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방안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핵 신고도 로드맵 초기에 한꺼번에 하지 않고 시설·무기·물질 등으로 나누어 유연하게 진행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제재를 해제하는 순서가 잘못되면 남아 있는 비핵화를 추동할 수 없다. 만약 영변 핵시설 하나만 없앤 상태에서 비핵화가 멈추게 되면 북한은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된다. 이 가능성은 중국이 집행하는 제재를 먼저 해제할 경우에 더 커진다. 중국은 마음먹으면 제재가 해제된 틈을 대문처럼 활짝 열어 북한이 마음대로 외화를 벌게 할 수도 있다. 스냅 백 조항을 넣는다 해도 지금의 미·중 관계를 고려할 때 무너진 제재를 복구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한·미가 함께 이 디테일을 만들어야 할 때다. 남북경협이 필요하다면 왜 이것이 비핵화에 도움 되는지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단계적 비핵화의 초기에 어떤 경협이 들어가야 하며, 이것이 불가역적 비핵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논리적, 실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북한경제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을 개발하고 이를 비핵화와 연동시킬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북한이 비핵화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을 구체화하고 극대화해서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런 시점에 한미워킹그룹을 없애고 비핵화보다 경협을 우선하자는 주장은 역효과만 낼 뿐이다. 한국마저 믿을 수 없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북미회담 개최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북한에 제시할 옵션이 제한돼 성과를 내기 어렵고, 딜이 이루어져도 그 후과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또는 지금 미 대통령의 성정을 고려할 때 자국 이익만 챙기고 한국의 안보를 헐값 처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시기, 우리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신중함과 실력이다. 무모함과 무지는 나라를 나락에 빠뜨릴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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