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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공급 늘려 집값 잡겠다는 ‘상징적 의지’마저 좌절

중앙일보 2020.07.22 00:48 종합 24면 지면보기

결국 접은 ‘그린벨트 해제’ 후폭풍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염곡사거리에서 위례신도시로 이어지는 헌릉로를 2~3분쯤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로 접어들자마자 탑성마을이 나타났다. 오래된 단독 주택, 낡은 물류창고, 건물 사이의 텃밭 등 서울 외곽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내 전형적인 마을 풍경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서초구 염곡동 관내인 이곳은 1만7000여㎡에 39가구가 사는 ‘집단취락지구’다. 집단취락지구란 그린벨트 안에 주민들이 집단 거주하며 형성된 동네를 말한다.
 

부동산 해결 능력 한계 자인한 꼴
“정책 불신으로 시장 불안” 우려도
“강남 환경만 중요한가” 반발까지
수요 억제 규제 정책의 역풍 지적

하지만 주변은 이미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여 있다. 2010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내곡공공주택지구(4629가구)다. 이 일대는 그린벨트 해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후보지로 꼽히는 곳이다. 마을을 찾은 것은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방침이 오락가락하던 19일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은 “결론 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시큰둥한 답이 돌아왔다.
 
이런 반응은 자동차로 5분쯤 떨어진 서초구 우면동의 송동마을도 비슷했다. 우면산 남쪽 계곡을 따라 길쭉하게 형성된 송동마을 역시 2만여㎡에 40여 가구가 모여있는 집단취락지구다. 역시 도로 건너편에 서초공공주택지구(3304가구)가 들어서 있어 그린벨트 해제 후보지로 꼽히던 곳이다. ‘집단취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는 달리 마을 초입은 고급스러운 단독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길가에 주차된 차량 중에는 고급차가 제법 눈에 띄었다. 한 주민은 “조용한 이 동네가 아파트촌으로 바뀌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2018년 탑성마을·송동마을과 인근 식유촌마을(37가구·2만여㎡) 등 3곳의 집단취락지구를 그린벨트에서 풀어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주민들의 ‘유보적’ 반응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마을을 찾은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벨트 해제 불가’ 선언을 했다. 문 대통령이 주택 공급 방안 발굴을 지시한 이후 18일 동안 이어지던 그린벨트 갑론을박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서울 강남 그린벨트를 한 뼘도 못 건드린 이번 결정 후 만만찮은 후폭풍이 일 조짐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재명·정세균·이낙연·추미애 여권 유력 ‘잠룡’들의 독자 목소리로 ‘권력의 원심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공급 효과보다는 의지 확인 의미
 
해제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던 서울 그린벨트 문제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으로 보존 쪽으로 결론이 났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모습. [연합뉴스]

해제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던 서울 그린벨트 문제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으로 보존 쪽으로 결론이 났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모습. [연합뉴스]

사실 서울 그린벨트 해제는 논란에 비해 공급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서울의 그린벨트 면적은 총 149.13㎢지만, 강북권 그린벨트는 대부분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개발이 어렵다. 서초구(23.88㎢), 강동구(8.17㎢), 강남구(6.09㎢), 송파구(2.63㎢) 등 강남권 그린벨트는 평지가 많아 개발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비닐하우스로 덮인 곳 등을 개발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으나, 보존 가치가 낮은 3등급 이하 그린벨트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서초구 내곡동 가구거리, 서초·강남예비군 훈련장 등 후보지로 언급됐던 곳은 대부분 1, 2등급이다.
 
이런 사실은 국토부 국토환경성평가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탑성마을 주변에서 4, 5등급 땅이 보이지만, 이미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송동마을도 마을 자체는 5등급으로 분류됐지만, 그 주변은 1, 2등급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장 확인 결과 2등급 땅은 각종 조경수를 기르는 농원들이었고, 1등급 땅은 우면산 등성이였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우면산 자락을 파헤칠 경우, 시민들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곳들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그린벨트 가운데 3~5등급 지역을 활용하면 5만 가구 정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이 정도 물량으로 서울 주택 수요에 대응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정부의 공급 의지가 강력하다는 상징적 의미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 기존 국공유지를 통해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서울시 주택시장 안정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린벨트 사수는 서울 이기주의?
 
국토환경성평가지도로 본 탑성마을과 송동마을 일대. 탑성마을 주변은 개발이 끝났고, 송동마을 주변은 보존 가치 높은 녹지 지역임이 확인된다.

국토환경성평가지도로 본 탑성마을과 송동마을 일대. 탑성마을 주변은 개발이 끝났고, 송동마을 주변은 보존 가치 높은 녹지 지역임이 확인된다.

서울 그린벨트에 손대지 않겠다는 결론에 서울-경기도 그린벨트 정책의 형평성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회원 수 115만 명을 보유한 네이버 부동산 카페에는 “서울 그린벨트 사수는 서울의 지역 이기주의 아니냐”는 비난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한 회원은 ‘녹색 허파 보호’라는 정부의 명분에 대해 “그럼 경기도 그린벨트는 허파가 아니라서 파헤쳤나”고 비판했다.
 
이런 불만은 2018년 수도권 공급 대책에서 3기 신도시 방안을 발표할 때부터 1기 신도시 주민을 중심으로 나왔다. 3기 신도시 입지를 보면 이런 목소리가 일리 없지 않다. 3기 신도시 입지는 거의 그린벨트 안이다. 특히 보존 가치가 높은 1~2급지 비중은 ▶남양주 왕숙1지구 52.9% ▶왕숙2지구 44.0% ▶인천 계양지구 92.8% ▶과천지구 64.5% 등에 달한다. 등급을 막론하고 한 뼘의 그린벨트도 훼손 않겠다는 서울시와는 너무 차이가 난다. 환경단체들은 경기도 고양시 창릉 등 5곳의 3기 신도시 조성으로 32.7㎢의 그린벨트가 해제될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시 그린벨트의 5분의 1이 넘는 면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바뀐 입장도 눈길을 끈다. 이재명 지사는 3기 신도시를 위한 경기도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서민 중심의 경기도형 주거정책을 3기 신도시 조성계획에 접목하겠다”며 환영했다. 그랬던 그가 서울시 그린벨트에 대해서는 해제 불가론을 주장한 것이다. 경기도 개발 필요성이 명분일 수는 있으나, 환경 문제만을 놓고 보면 이율배반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서울 시내 강남·강북 차별론마저 일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 대신 주택 공급 부지로 활용하겠다는 군 소유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 지역이다. 국토환경성평가지도 확인 결과, 클럽하우스가 위치한 땅은 5등급으로 분류됐지만, 필드는 보존 가치가 비교적 높은 2등급으로 매겨져 있었다. 2018년에도 정부는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이곳도 그린벨트”라는 서울시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었다.
  
뾰족한 공급책 없다는 신호일 수도
 
혼란스러운 그린벨트 관련 말말말

혼란스러운 그린벨트 관련 말말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환경적으로는 그린벨트 고수가 올바른 선택일지 모르나, 시장에서는 마땅한 주택 공급 대책이 없다는 신호로 읽혀 시장 불안이 가속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은 카드는 유휴부지 확보, 도심 초고밀도 개발 허용,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등이 꼽힌다. 그러나 대개 기시감이 있거나, 실효성이 의심받거나, 투기 우려가 따르는 방안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값을 잡는다면서 수요 억제에 치우쳐 균형 있는 공급책을 고민하지 않은 정부의 자업자득”이라고 말했다. 정책 일관성이나 안정성은 제쳐놓고 정치적 실익 차원에서 부동산 문제에 접근하다 결국 역풍을 맞은 것이 이번 18일간의 그린벨트 해프닝이었다. 부동산 문제 실패로 위기를 맞았던 임기 후반 노무현 정부의 그림자가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그린벨트, 반드시 선(善)이기만 할까
그린벨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그린벨트 해제 반대(60.4%)가 찬성(26.5%)의 두 배가 넘었다. 그린벨트의 가치로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방지가 먼저 꼽힌다. 도시들이 서로 붙어서 발전하는 연담화(連擔化) 현상을 막고,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허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 논거도 만만찮다. 그린벨트가 도시의 자연스러운 확장을 막는 바람에 도시 내부 가용지 고갈로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린벨트를 넘어서 ‘비지(飛地)적 개발’이 이루어지는 ‘스프롤(sprawl) 현상’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서울 그린벨트 바깥 지역인 용인·광주시 등지의 난개발이 대표적 예다. 도시 중심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교통량이 증가하고, 공해도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심지의 용적률을 높이는 등 고밀화가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서울시는 부정적인 입장을 지켜왔다. 일각에서 서울시가 집값을 올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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