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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피해 복구도 안됐는데, 원인 시추기 철거 갈등

중앙일보 2020.07.22 00:03 18면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에 지열발전소 시설물 철거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정석 기자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에 지열발전소 시설물 철거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정석 기자

‘지열발전소 시추기 철거 웬말이냐’ ‘지열발전소 시추봉 철거 결사반대’
 

흥해에 지열발전소…지진 직격탄
피해구제·진상조사 본격화 이전
지진 원인 철거 움직임에 반발
주민 “22일 총궐기…국도 막을수도”

지난 19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도심 곳곳에는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들이 대거 내걸렸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지목된 지열발전소 공사현장의 시추기가 철거 수순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포항 흥해는 지열발전소 공사현장이 위치한 곳이자 지진에 직격탄을 맞은 지역이다. 지진 피해 구제와 진상 조사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시추기가 사라질 조짐을 보이자 흥해 주민들이 앞장서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흥해 주민들은 22일 ‘시민 총궐기대회’도 열기로 했다. 부산에서 포항·영덕·울진을 거쳐 강원도로 이어지는 7번 국도를 차단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한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서 확산되면서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동안 포항 지진의 뒷수습을 둘러싼 갈등은 이면에서 지속돼 왔다. 지난해 12월 가까스로 제정된 ‘포항지진 특별법’도 아직 본격화되지 않아 피해 주민들의 기다림이 길어지고 있다.
 
최근 떠오른 ‘뜨거운 감자’는 지열발전소 시추기 철거 문제다. 지열발전소 공사가 중단된 후 현장에 남은 시설물은 인도네시아 업체가 160만 달러(한화 약 19억2000만원)에 매입했다. 19일 오후 찾아간 지열발전소 공사현장엔 용역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장정 대여섯 명이 현장 인근에 대기하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기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차량 번호를 적거나 서로 상황을 전파하는 등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증거 보존 차원에서 시추기를 철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16일엔 “지열발전소 시설물을 보존해 달라”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에 보존 요청도 했다. 앞서 포항시도 지난 2월 시추기 철거를 미뤄달라고 산업부에 요청했었다. 포항지진특별법에도 포항 지진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료 또는 물건을 보관할 수 있고 그 인멸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범대위 관계자는 “포항 지진을 촉발시킨 중요 시설을 철거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포항시민 모두 힘을 모아 시설물 철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구제를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진 직후부터 이재민들의 임시대피소로 활용돼 온 흥해실내체육관엔 아직 내부에 텐트 221개 동이 그대로 있다. 이들은 모두 1992년 지은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다. 한미장관맨션은 지진 후 정밀안전점검에서 소파(小破) 판정을 받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포항시는 주택 피해를 소파·반파(半破)·전파(全破)로 나눴다. 재난지원금도 전파 900만원, 반파 450만원, 소파 100만원씩 분류해 5만6515건, 643억원을 지급했다.
 
주거 지원은 전파·반파 피해 주민에만 한해 진행됐다. 소파 판정이 난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은 재난지원금뿐이었다. 주민들은 “무너지기 직전인 아파트를 어떻게 100만원으로 고쳐서 사느냐”고 반발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포항지진특별법이 제정돼 피해 구제의 길이 열렸지만, 피해지원금 지급대상자, 지급기준에 대한 법률 개정을 거쳐 오는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피해 신청 접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한편 포항 지진은 2017년 11월 1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북쪽 9㎞ 지점에서 일어났다. 포항지진 정부합동조사단은 지난해 3월 20일 포항 지진의 원인을 지열발전소 건립과정에서 촉발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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