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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맥주·한국쌀 물물교환" 이인영 아이디어가 놓친 팩트

중앙일보 2020.07.21 16:38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뉴스1]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뉴스1]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창의적인' 남북교역 방안으로 제시한 '북한 대동강맥주-한국 쌀의 현물교환'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비롯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지적이다.

'벌크캐시', '물자제재' 피한 대북제재 우회
"문제는 운송" 트럭·항공기·선박 제재대상
대규모 외화자금 원하는 北 반응도 '변수'

 
이 후보자는 21일 약식기자회견에서 '창의적 교류해법'의 사례로 북한의 대동강 맥주와 백두산 물을 한국의 쌀과 약품 등으로 물물교환하는 방안을 들었다. 이 후보자는 이같은 형태의 물물교환이 ▲벌크 캐시(대규모 현금)가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아 대북 제재를 우회할 수 있다는 점 ▲제시한 4가지 품목이 과거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이 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제는 운송"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럭을 이용한 육로 반입은 불가능하며, 선박 및 항공기를 통한 운송은 미국의 독자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럭으로 물자를 주고받으려면 비무장지대(DMZ)를 넘어야 하는데,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트럭의 DMZ 출입 허가를 내줄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대북 타미플루 지원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초 북한에서 독감이 유행하자 정부는 타미플루 20만명 분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미 워킹그룹 협의를 통해 제재 면제 허가까지 받았지만, 정작 타미플루를 북한으로 보내려던 순간 약품을 운반하는 트럭도 제재 대상이 될 지가 논란이 됐다. 결국 발끈한 북한은 아예 타미플루 수령을 거부했다.  
 
2018년 말 북한에 지원키로 한 타미플루 20만명 분이 트럭에 실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고 있다. 이 타미플루는 한미 워킹그룹 협의를 통해 지원 허가를 받았으나, 타미플루를 실은 트럭이 대북 제재 대상인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결국 무산됐다. [중앙포토]

2018년 말 북한에 지원키로 한 타미플루 20만명 분이 트럭에 실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고 있다. 이 타미플루는 한미 워킹그룹 협의를 통해 지원 허가를 받았으나, 타미플루를 실은 트럭이 대북 제재 대상인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결국 무산됐다. [중앙포토]

 
선박 및 항공기를 통한 운송 또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인해 막혀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독자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북한에 취항하거나 기항한 제3국의 선박 및 항공기는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최후의 수단으로 중국 또는 러시아를 통해 물품을 주고받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경유한 대북 운송이 대북제재 위반으로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재로썬 북한이 이같은 물물교환 방식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이같은 물물교환식 교역과 보상은 과거 공개·비공개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외화 통치자금 고갈에 시달리는 북한은 쌀이나 약품이 아닌 대규모 현금 유입을 원하는 상황이라, 북한이 이에 반응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이 후보자가 거론한 한국의 쌀과 약품은 북한이 굳이 물물교환을 하지 않아도 유엔 안보리에 '인도적 지원' 목적으로 제재 면제 허가를 받으면 무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품목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6월 북한의 식량난 해소를 위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에 쌀 5만톤을 지원
하려 했으나,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빌미로 식량지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무산된 바 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우선 테크니컬(기술적)하게 본다면 아주 불가능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북한이 이 같은 제안을 받을지는 또 다른 정치적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와 대북 제재 협의 관련 주무 부처인 외교부도 이 후보자의 이같은 아이디어에 신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통일부는 이 후보자가 제안한 물물교환 방식의 실현 가능성과  통일부 차원의 검토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후보자가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이라고 답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대북 제재에 유엔 안보리 제재가 있고 각국의 독자 제재가 있는데, 적용되는 사안과 안 되는 사안이 있다"며 "관련 당국 간에 제재 메커니즘과 관련해 소통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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